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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첫 문장을 뭐라고 써야 할지,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고,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고민했으며, 실은 이미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고민 중이다. 대개는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느낌이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글쎄... '아, 좋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외에는 달리 단어, 표현, 문장으로 만들어낼 말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작가 16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 오에 겐자부로, 토니 모리슨, 다리오 포, 오르한 파묵, 도리스 레싱, 월레 소잉카, 나딘 고디머, 가오싱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귄터 글라스, 나기브 마푸즈, V. S. 네이폴, 임레 케르테스, 데릭 월콧,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와의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느낌까지 꽤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을, 글을,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많은, 깊은, 진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가슴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떠올렸을까,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룰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읽을 때 자주 하는 생각이고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경외감을 품는 이유다.

 

이 책에서 만난 작가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진지한 사회적 문제들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그들은 강하고,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뭐, 그러니 '노벨문학상'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했겠지만.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내가 미리 읽어 알고 있던 사람은 도리스 레싱밖에 없다. 그것도 단 하나, <다섯째 아이>와 <런던 스케치>를 읽은 게 다인데, 사실 <런던 스케치>는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고 <다섯째 아이>가 너무 좋고 충격적이라 그 외의 작품들에는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는 요상하다면 요상한 변명을 해본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감당할 수 없는 회색으로 차오르는 느낌이라거나,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 기분이 나빠 중간에 꺼버리면서도 또 다음 영화가 나오면 찾아 보게 된다거나 하는 것보다 좀 더 센 기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래서 앞의 두 사람 작품은 계속 보게 되지만,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겁' 비슷한 게 나서 보관함에 잔뜩 담아두기만 하고 더 이상 읽어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더 심지어, 16인의 작가 중에는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다수였다.

 

글쟁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회 문제를, 우리들이 외면하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지에 대해 듣는 건 내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들의 성숙함이 좋았고, 해박함이 좋았으며, 그저 나와 같은 한 인간일 뿐임을 알게 한 나약함은 더욱 좋았다(도리스 레싱의 집이 예상 외로 너무나 지저분했던 것, 노벨평화상을 받은 작가들이 공석에서 주먹다짐을 하며 싸운 후 지금껏 절교한 채로 지내오고 있다는 것 등).

그래서 이 책을 읽은 걸 계기로 그들의 작품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보자는, 나름의 계획도 세웠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친한 선배의 아빠가 돌아가셨다. 마침 나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오에 겐자부로 편을 읽고 있었고,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이, 최근 너무나 큰 일들을 차례로 치러내고 있는 선배를 위로하기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선배는 무척 큰 위안을 받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그 말은 그녀가 아닌 나 자신에게 던진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읽고 그녀에게 전하고, 반복해서 읽으며 위로받은 건 사실 나였으니까. 그렇기에 적어도 '역시 글은, 우리를 위로해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는 점에서만이라도 이 책은 내게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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