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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고양이 - 고양이를 사랑한 젊은 예술가를 만나다
고경원 글.사진 / 아트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공허감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을 때 도서관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책, 무엇인가 예술적 아우라가 솔솔 풍기는 제목에서 딱 끌렸다. ‘작업실’과 ‘고양이’의 조합이라니,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금속공예가, 사진가, 화가, 도예가, 인형작가, 설치미술가, 조각가 등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거나 고양이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15명의 예술가들의 일상을 취재하여 묶어낸 책이다. 작업실 풍경도, 작품 활동의 소재나 주제도, 작가와 고양이의 관계도 모두 달라서 보고 읽는 재미가 있다.
단상 1. 가장 눈 여겨 보았던 작업실 풍경.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디든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업실은 집 근처 따로 마련된 작업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의 방, 작가의 생활공간인 길거리 등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작가의 경우, 생활공간이 곧 창작공간인 경우도 있는데, 어쨌건 이들의 작업실은 예술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부러웠다. 예전부터 근사한 작업실을 갖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가장 부러운 것은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에 미학적인 숨결을 불어넣은 작가들의 정신세계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불안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삶을 죽이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게 싫어하는 불안을 누가 당신에게 주었는가?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다면 불안은 평생 당신을 따라 다니며 삶을 망칠 것이다.”
- “고양이 스승님의 말씀”, 64쪽 -
책에 실린 작업실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계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이 이렇게 공허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것은 자본주의적 불안/욕망 때문인 듯. 이 책은 그것을 돌아보게 했다.
단상 2.
작가들이 고양이에 매료된 동기,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 세계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의 결이 다양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5명의 고양이 작가들 중 여성들이 많다는 것. 이 책에 소개된 4명의 남성 작가들 역시 규범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있거나 그것에서 자유로운 영혼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즐겼던 인형놀이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유재선, 신문배달을 생업으로 하는 생활사진가 김하연, 무료함을 견딜 수 없어 떠난 인도 여행지에서 무심한 듯 여유로운 고양이에 매료된 작가 박활민, 위트와 재치로 가득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
이들 모두 한국 사회의 ‘남자 어른’ 캐릭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이들이 고양이라는 동물에서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소주 작가의 작품 「달리는 예술버스」가 마음에 든다. 내 작업실에 걸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