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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과 시 ㅣ 일상시화 2
박소란 지음 / 아침달 / 2024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910/pimg_7424882334427756.jpg)
나에게는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선 정류장마다 누가 올라타고 내리는지 본다. 이동 중일 땐 창밖이나 승객들의 뒤통수를 보며 멍 때린다. 그래서 나는 뒷자리나 가장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실내에선 전체적인 인테리어 분위기와 흘러나오는 노래, 배치된 가구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바깥의 풍경을 본다. 그 공간과 사람들은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보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거리를 걸을 땐 주로 어떤 건물이 있는지 살핀다. 가게의 이름이나 높이, 다른 건물과의 생김새 차이 같은 것을 말이다. 간혹 통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가 보이면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얼 하나 궁금해서 한 번씩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왜 자꾸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궁금해서 보는 건 아니다. 궁금해지기 전에 이미 고개가 돌아가 있다. 고개가 돌아간 다음에 궁금해지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은 너무 따스한 것이다. 모두 웃고 있는 것이다. 조금의 결락도 없는 것처럼. 꼭 그런 것도 아닐 테지만." (p.18)
"지나치게 생생한 것들이라. 구체적인 존재들이라." (p. 30)
"빌딩은 이상하다. 이미 충분히 익숙하지만 막상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마음인지……. 그게 꼭 사람 같다. 나 같다." (p. 30)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이 익숙한 화두를 수시로 되뇌는 것. 도시에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일까. 도시의 빌딩 안에서 살림을 꾸리고 자신을 돌본다는 건." (p.46)
내가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책 속에서 발견했다. 드디어 알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삶이고, 삶이 아닌 게 하나도 없어서, 내 삶도 삶 같았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다들 살아 있어서 이렇게 우리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구나.
박소란 시인이 말하는 빌딩은 말 그대로 빌딩이기도 하겠지만, 내겐 '한 사람'의 다른 말로 다가왔다.
빌딩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빌딩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나선 이 책이 마치 작고 얇은 빌딩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 있는 여러 공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 기분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각각의 이야기를 보았다.
맞은편에 빌딩이 세워진 공원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다 집에 돌아온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