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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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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면 아득하기만 하다. 어떻게 그 시간이 다 지나고 지금이 왔을까. 가끔 멍하니 있다 보면 어제가 수험 생활을 하던 때 같고, 시험을 망쳐서 울었던 날 같고, 찍은 문제를 다 맞혀 의외로 점수가 잘 나왔던 날 같다. 매일매일의 기분이 공부에 달려 있었다. 내가 특별하게 공부를 잘했다거나 열심히 해서라기보단 그때 나를 달려 나가게 하는 것이자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게 공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공간인 학교가, 그곳에서의 일이 나를 만들고 바꾸고 멈추게 했다. 집에서 아무리 행복한 일이 있었더라도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날은 망한 날. 집에서 우울해도 학교에서 즐거웠다면 나름 괜찮은 날. 사실은 학교랑 공부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하고 싶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알아서 찾고 싶었다. 싫을 땐 싫다고 하고 싶었고 좋을 땐 좋다고 하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학창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준다고 하면,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내가 이전보다 더욱 '나'다운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아지진 못해도 최소한 그때보다 더 후회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만약 학창 시절에 돌아가게 해 준다는 제안에 이 짧은 소설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이 현실이 되어 다른 교육 현장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조건까지 붙는다면, 다른 환경 속에서의 나라면, 과거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 와서 내가 보낸 시간을 후회해 봤자 나는 그때가 아닌 지금에 있을 뿐이다. 앞으로의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할 순 있어도 과거의 나를 바꿀 순 없다. 갑자기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 된다거나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이 생겨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닌 이상. 어쨌든. 그런데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할까? 이미 다 지나갔는데 무슨 소용이냐는 말뿐이어야 할까? 그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지나온 시간을 똑같이 겪을 존재들에게 무관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만큼, 좋은 걸 더 좋게 만들기 어렵다면 적어도 안 좋은 건 덜 안 좋게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게 결국 내가 나를 후회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 지금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행복해지는 일을 해." (225쪽)
이 대사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거나 수험생의 자세가 아니라거나 단지 소설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하고 싶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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