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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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돌아다님, 오래된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일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초판이 나온 지 이십여년이 되어 가는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이지만 오랜 공백 끝에 제6권이 '인생도처유상수'라는 알듯 말듯한 부제를 달고 나왔다.

무엇보다도 우뚝 솟은 황매산을 배경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영암사터 쌍사자 석등의 모습이 시선을 이끈다. 그 오랜 세월을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나갔지만 그래서인지 더 애잔하고 더 정감이 가는 느낌이다. 석등과 석탑이 지닌 조형미도 말할 것이 없겠거니와 그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황매산을 차경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인지 책에 소개되어 있는 몇몇 곳은 이미 다녀온 곳이라 책의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을 먼저 읽고 문화재를 답사했더라면 좀더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문화재를 찾아 떠나는 다음번 여행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6권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경복궁에 관한 내용들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 소개를 했던 지라 머리에 잘 들어왔다. 경복궁은 물론이고 창덕궁, 덕수궁 등 시내 한복판에 고궁들을 보물처럼 품고 있는 서울사람들이 참 부러운 대목이다. 언제고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고 몇백년 전 과거로 떠나 그 숨결을 다시 느껴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행운일 것이다.

몇해 전 북경 자금성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작가 유홍준이 지적했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자금성의 그 엄청난 규모와 화려하고도 위압적인 외양에 매료되곤 한다. 그리고는 우리네 궁궐의 아담함과 비교하며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작가 유홍준은 "자금성에 비하면 뒷간 밖에 안된다"는 식의 자기비하가 안타까웠으리라. 역사적으로 중국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아왔고 조선시대에는 소중화 사상이니 하는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과거가 있으니 어찌보면 그것은 피하기 어려운 응보일 수도 있겠다.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놓은 축소판이라는 이야기도 그렇게 지어진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건축물이라는 것이 비단 규모와 외양에만 치중해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경복궁은 중국의 자금성보다 25년 먼저 지어졌으니 자금성이 경복궁을 닮았다면 그것이 맞는 말이다. 경복궁은 자금성의 60% 규모에 불과하지만 공간배치나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은 차경의 미학은 감히 자금성이 넘볼 수 없는 위대함이 숨어있는 것이다.

지난해 늦가을 경복궁을 찾았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저 밖에서 둘러보는 데 그쳤던 아쉬움이 컸었는데 미리 공부 좀 하고 와서 보고 가라는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위안해 본다. 다음에 갈 때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뿐만 아니라 '궁궐의 현판과 주련', '궁궐의 우리 나무'와 같은 책들도 함께 구해봐야 할 것 같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6권에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충남, 전남과 경상도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미 가 본 곳들에는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미처 가보지 못한 곳들에는 무한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준다.특히나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전남 순천 선암사와 충남 부여 무량사를 책에서 다시 보면서는 그곳들을 홀로 거닐었던 기억이 떠올라 두근거림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인생도처유상수요, 전국도처유명승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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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숲을 거닐다 - 가을 1 108 사찰 생태기행 1
김재일 지음 / 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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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이름난 사찰들을 찾아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절이 좋은 이유는 오래된 절집이 주는 안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에 이르는 아름답고 풍성한 숲길이 주는 상쾌함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명한 절집을 소개하는 책들을 검색해 보다 눈에 띈 것이 바로 '산사의 숲을 거닐다' 라는 이름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사찰생태연구가라는 다소 생소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 대표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찾아다닌 수많은 산사의 숲 가운데 108 군데를 고르고 골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 이 책은 단순히 절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연을 사랑하고 산사의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경상도로부터 시작해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까지 웬만한 사찰들은 가 보았습니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사찰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깊은 산중에 있는 절들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시주를 받아 새로 당우를 짓고, 길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절을 둘러싸고 있던 숲들도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 사찰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들도 물론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가급적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본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김재일 대표에 대해서는 그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 책에 담겨있는 글에는 다양한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산사의 숲을 지키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고 손수 찍은 사진들은 정갈하고도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책을 펴낼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을 무수히 방문하며 관찰하고 기록했던 그의 노력은 실로 위대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차도 없고, 차를 갖게 될까 봐 운전도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108개의 사찰 대부분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차를 이용하면 좀더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닐 수는 있겠지만 또 많은 것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두 발로 걸으며 찬찬히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자연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말에 공감이 가고도 남습니다.

저의 사찰 여행 역시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김재일 대표처럼 생태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한 것은 아니라 전문적인 글과 사진을 남기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간의, 그리고 앞으로의 행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헛된 욕심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고요한 아침에 고요한 산사의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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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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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들 쉽게 운명이란 말을 하곤 한다.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이렇게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운명이란 단어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운명은 우리들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운명이란 말은 인간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펴냈다. 요즘 그는 차기 대권주자의 한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언론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이어 선호도 3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문재인 이사장은 법조인으로 출발해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는 다른 사회 운동가의 길을 걸어왔고, 정치판에 뛰어들 의사를 내비추고 있지도 않다. 그런 그가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분명 문재인 이사장 본인 의사로 정치판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국민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일부 정치 평론가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강력한 '권력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차세대 정치 지도자 후보군에 올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평한 바도 있지만 향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야권 통합, 또는 연대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 또한 그가 책에서 밝혔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운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재인의 운명'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이 1982년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 동업자로 만나 이후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이후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으로 인연을 이어 왔던 과정을 담담히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 문재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 이라는 책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성공은 성공대로, 뼈아픈 좌절은 좌절대로 있는 그대로 복기해야 하노라고."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며 그 과정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고 조용하지만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쓴 회고록 : http://kangks72.tistory.com/938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변호사 문재인이 부산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문재인 이사장의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어도 명예와 부가 보장된 안락하고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운명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테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하나는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법장스님이 남기셨다는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는 말이다. 짧은 말이지만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여운이 오래동안 남아 있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 물을 보라 다시 맑아지며 / 먼 길을 가지 않는가 /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한 도종환 시인의 '멀리 가는 물'이라는 시도 가슴 뭉클하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보면서 지금의 나도 이미 더럽혀져 멈추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와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고 멀리 가는 물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보게 됐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러가는, 비록 작고 하찮은 물줄기일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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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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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고 하면 따분하거나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긴 하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백제의 사비 천도는 몇년, 신라의 삼국통일은 몇년, 갑오경장은 몇년..이렇게 주입식 국사 교육으로 암기만 하다 보니 그런게 아닐까 싶다. 사실 역사라는 건 우리가 이 땅에 오기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가 어릴 적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들었던 재미난 옛날 이야기들이 모두 역사일 것이다. 물론 힘없는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가 역사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다. 우리가 세계사나 국사라는 과목으로 배워왔던 역사는 힘있는 권력자나 제왕들의 이야기, 그리고 끊임없는 정복과 수탈의 과정이었으니까.

역사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덕일의 역사 사랑이라는 책은 독특하다. 어떤 특정의 주제에 대해 심도깊은 주장을 펴는 책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크게 여섯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각각의 글들은 독립적이다. 아마도 어느 신문이나 잡지에 고정 칼럼으로 연재하던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편히 역사 에세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겠다. '사랑'이란 단어는 우리 전통 주거공간 중 하나인 사랑(舍廊)을 뜻함이지만 우리 역사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가져 달라는 저자의 숨은 뜻도 들어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 책이 출간된 때가 2007년이었으니 동북공정과 관련한 국내의 역사의식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분량은 340페이지가 넘지만 읽기에 부담이 없는 포맷이다보니 하루 반나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역사에 왜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때 화려했던 대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지난했던 고통의 시대를 불러온 선조들을 비난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거울처럼 반면교사로 삼아 그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를 제대로 판단하고, 다가올 미래에는 굴종과 회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수백년전 과거의 과오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오히려 수백, 수천년전의 사회 시스템이, 그때의 지도자들이 현세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영겁의 세월동안 인류는 끝없는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통해 과거에는 꿈꾸기 어려웠던 혁명적인 세상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당연히 의식의 진보 또한 뒤따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이 책은 역사의 거울을 통해 바라본 우리 삶의 자화상이자, 이덕일의 세공된 문장으로 그려낸 현재의 미래의 나침반이다. 겹겹의 역사 갈피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흥미진진한 사건과 인물들을 만나는 기쁨,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 에세이의 정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책 소개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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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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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책들을 몇권이나 사 모았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처음으로 펴 든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순서대로 한다면 세계 각국의 오지를 다녀온 이야기들을 먼저 읽는 게 맞겠지만 우리 땅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내게는 왠지 이 책에의 끌림이 확실히 더 강했던 것 같다.

사실 한비야 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세계의 오지들을 탐험하고, 국제 NGO 단체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정도.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무릎팍 도사'라는 TV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가 들려줬던 경험들은 꽤나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줬던 것 같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한비야가 전라남도 땅끝 해남에서 동쪽 육지의 끝(현재 우리가 발로 닿을 수 있는)인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800km의 거리를 1999년 3월 2일부터 4월 26일까지 49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우리 땅 구석구석의 숨겨진 풍경들은 늘 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늘 허투루 지나쳤던 것들이기도 하다.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우리땅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을 즐기곤 한다. 살다보면 내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일이란 걸 느끼게 된다. 때로는 시간이 부족하고, 때로는 차비나 기름값이 부족하거나, 결정적으로 건강이 허락되지 않는 억울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돈이 없으면 또 없는대로 많이 다니고, 그 속에서 많이 느껴봐야 한다. 늘 대하게 되는 풍경, 만나는 사람들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누군가 말했듯 '세상은 넓고' 보고 느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새로운 곳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나를 좀더 강하게 단련시키고, 또한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비타민과도 같다.

한때 자전거 전국 일주를 꿈꿔 본 적은 있었지만 도보로 우리나라를 종단해 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녀린 여자 몸으로 그 멀고 힘든 여정을 소화해 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일단 몸으로 부딫치며 이뤄낸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늘 생각에만 머물고, 주저하다 시간만 보내는 사람에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이 무얼까를 생각해 본다.

한비야가 우리 땅을 두 발로 걸었던 1999년 3월에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봤다. 세상에 나갈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IMF 사태의 직격탄을 받은 그때의 나는, 돌아보면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조차 없었던 것 같다. 뭘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말그대로 '밥벌이의 고민'이 사고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리라.

무려 십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지금. 그때 한비야가 밟았던 땅들과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내가 걷게 될 이 땅의 풍경들도 그리되겠지. 그 땅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고 골프장으로, 도로로 바뀌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그 여행의 출발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

어제는 모처럼 의성 고운사에 들렀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광덕당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풍만한 젖가슴같은 등운산과 그 위를 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우리네 인생이 또 저 구름처럼 덧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남은 인생은 덧없는 구름이 아니라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산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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