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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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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때,

콤팩트한 사이즈와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디자인을 봤는데,

큰 유리창에 구름이 비춰져 있고

그 사이에 '변호사 천수이' 라는

입간판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천수이 변호사는,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변호사' 의 모습은 어떤가.

늘 전화를 받느라 바쁘고, 멋드러진 정장을 입고,

사무적인 태도로 잘 갖춰져 있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일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단호하고 강단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일터가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초라한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고 서술한다.

'무료법률상담' 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있는,

칸막이 안의 공간이 그녀의 일터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것이 서툴었고 그저 배웠던 말만

반복해야 했던 미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한다.

그리고 전쟁터와 같은 일상의 연속에 처한,

변호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변호사는 피의자의 입장을 변호하고,

법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실리만을 따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떤 사건이 판결 되어야 함에 있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일에

'다정함', '사랑' 같은 것들이 끼어드는 것은

낭만적인 것이며 불필요한 요소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진실은 윤리적인 영역이며,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진실' 로서 믿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가슴깊이 와닿았다.

천수이 변호사는 직접 겪은 사례들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자신을 방문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녀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저마다 그들의 직업에 따라 짙게 배어있는 향을 묘사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그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저자의 업무는 전문 분야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남녀노소 경중을 따지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왔다.

그리고 법에 관련된 지식적인 이야기보다,

내담자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변호사로서 자신이 모든 일을 해결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을 법에 앞서서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지금도 칸막이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냄새나는

천수이 변호사님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

영화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책 속에서 이 영화를 언급하는데,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기 쉽다.

법의 보호 아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사랑과 존중이 먼저가 되어야

법도 사람을 지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이처럼 친절하게 풀어준 글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평소에,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더군다나, 법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고

변호사는 딱딱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줬다.

오랜만에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따뜻한 에세이를 읽게 되서 좋았다.


이제는 증거가 없어 밝혀지지 못한 진실도 존재한다는걸 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나라도 먼저 믿어주기로 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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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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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게시물은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스릴러와 SF의 결합, 게다가 평소 관심있던 신학에 대해

풍부하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의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그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비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 의 축과 어찌보면,

동떨어진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이 책은, 크게는 최우혁이라는 인물의 서사로 흐른다.

서른네살의 최우혁, 당장 자기 입에 풀칠할 능력도 없다.

김형의 소개로 학원에서 논술학원 보조강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노름으로 날린 빚더미를 갚아나가야 하는 신세고,

앞으로 남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걸 알면서도

다시 도박이라는 환락과 쾌락의 늪에

언제 빠져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유혹' 에 취약한 인간이, 한 번 그 맛을 본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삶의 의미도 없는 한 개인이

믿을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사건들을 겪고,

깨달음을 얻고 갱생해나가는 이야기다.

이렇게 큰 뿌리로 보면 모험기이자

우혁의 성장 소설로 볼 수 있다.

-

최우혁의 인생을 뒤흔드는, '이도유' 가 등장한다.

우혁은 계곡에서 물에 휩쓸려 죽을 뻔 한다.

그때 우혁은 기적처럼 살아난다. 이도유가 살려준 덕분에.

우혁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던

도유가 눈 앞에 등장하자 당황한다.

그는 재림예수가 되어 목숨의 위협을 받고

그의 교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있다.

우혁에게 도유를 돕는 일은, 신의 계시와 같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도유의 도주를 돕는 우혁의 속마음


우혁은 자신이 엄청난 일에 휩싸인 것을 감지한다.

이도유의 등장은,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세상에 대한

환멸과 멸시에 더해, 그리고 이방인과 같은 자신의 인생에

그래도 살아갈만한 무언의 이유와 가치를 찾아줄 것만 같았다.

그의 목숨을 구했던 것처럼, 그를 구한 끝에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조강현 시점의 서사 전개


조강현은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도가 되었지만,

신에 대한 원망과 집념 속엔 여전히 불신이 있으며 방황했다.

그때 조강현은 이도유를 만나 삶의 이유를 얻게 된다.

그는 이도유를 메시아라고 믿었다. 이도유는 심판의 날을 점지했다.

그 날을 위해 살아갔다. 하지만, 종말은 예정된 날에 일어나지 않았다.

조강현은, 도주한 이도유를 찾아 그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믿는다.


사건에 대한 우혁의 묘사


한 소년에 의해 종말의 날이 결정되고,

목숨을 빚지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목숨에 경중을 따지는 것과, 무언가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세상.

하지만 누군가 정당한 값을 치러 구해야 할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질량과 정량을 따지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국에는 똑같이 태어나 죽는 목숨이라면 말이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죽음을 목도하고

부활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문제의식에 직면한다.

판타지적 장르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우리 현실 사회가 담고 있는 문제와 닿아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를 요목조목 뜯어보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 되며, 규모와 효율,

성장만이 부각될 뿐인 기계적인 사회.

우혁에게 기회를 주는 이유를 설명하는 김형


믿음, 소망, 사랑.

김형은 우혁에게 기회를 주고,

믿어보려 한 이유를 말한다.

그것을 신학의 출발점과 동일시하고 있다.

점차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태어난 것에 의미를 찾고, 어떻게 살아가며

신념을 갖고 행동할 것인지 규정 짓게 된다.

결국은 그것이 신학을 만들게 된다는 것.



조세희 시점의 서사 전개_가족의 묘사


조강현의 딸, 조세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부분이다.

조세희의 가족 구성원,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


<피와 기름> 은 피와 기름 위에 세워진 세상을 그린다.

그것은 철저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기반으로 한다.

매대 위에서 저마다의 선택을 기다리며 진열된 소스들처럼.

우리는 선택되기를, 쓰임받기를 바라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죽음이, 종말이 과연 구원이 될지, 파괴가 될지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갖는지 형태도 다양하다.

사람이,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누구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다양하고,

실존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단요' 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그의 섬세하고 유려한 묘사와 문체 덕분에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을 인물과 함께

생생하게 겪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이나 홀린것처럼, 푹 빠져들었다.

책을 덮고도 한참이나 여운을 곱씹어본다.

기독교를 믿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하나님에게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절대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

신앙적 가치를 쫓는다는 것은, 그래서 어찌보면

실현하기 어렵지만 더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구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할지 모른다.

김형이 우혁에게 건넨 믿음, 소망, 사랑의 마음처럼.

우혁이 끝내, 김형의 신의를 져버리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을 개척해갈 의지를 얻게된 것처럼.

이 책을 읽기 전에 누군가

"만약 네가 세상을 끝장낼 수 있다면 그러고 싶으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망설임없이

그러고 싶다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그 질문을 해본다.

내가 감독이 된다면, 종말의 날을 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론은, 내게 맡겨진 수많은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그 끝을 내 손으로 끝맺고 싶지는 않다는 것.

누군가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끝내게 될지라도.

어짜피 끝이 정해져 있는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태어난 상황에서 개척해가야 하는게 숙명이라면,

그것에 맞서서 대항할 방식을 찾아보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우혁은 말미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된다. 이제 뭘 하고 살지에 대한 답은,

아이들을 대하는 일을 하는 것, 세상에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모두가 유아기를 거쳐 성인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유약하게 흔들리며, 욕심내며, 상처받고

아파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년의 모습을 한 재림예수, '이도유' 처럼.

어떠한 능력을 갖던 우리 안의 본성은 유아적인 모습과

성숙한 모습, 양면의 모습을 겸비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을 선택하고,

그것에 대한 신념을 갖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개개인의 몫.

그러면서도 늘 한편으로는 잊지 않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태도로 가꾸어나갈 것인지,

누군가의 피와 기름 위에 만들어진 것인지 말이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지난 2,000년간 심판이 오지 않은 것처럼

그날은 여전히 미뤄지고만 있다.

무관심할 정도의 관용과 자비로.

아니, 이것조차 모르겠다.

지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태도야말로

최고의 형벌일 수 있다.

세상은 이미 그리고 아직 지옥 같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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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인류로 남기까지
김래온 지음 / 포레스트 웨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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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를 고민해본 적이 있나.

만약 단 한번이라도 있다면, 이 책은 기꺼이 인류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인류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과 사유가 담겨있다.

김래온 작가는 인류에게 닥칠 위협에 대한 경고와 미래 세계를,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파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목차는

'종의 기원',

'홍, 피랑, 알노'

'에필로그'

'작가의 말'

순서로 구성되어있다.

'종의 기원' 은 문화재 보존파와 반대파의 대립으로 인해

인류가 멸명하고 구인류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그리고 '홍,피랑,알노' 는 신인류의 탄생과 결합과정, 그리고

구인류의 잔재를 없애려는 신인류의 욕망, 그리고 신인류 간의

대립으로 인한 파멸과 바이러스로 인한 모든 인류의 멸망의

과정까지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에필로그' 는 신인류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재플린' 과 '메리' 의

대화로 구성되어있다. 이때 알노와 메리의 대화로 결말을 맺는다.

이때, 알노는 메리에게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가자고 말한다.

이것은 결국, 살아남은 인류의 욕망이 또 다른 파괴와 결핍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을 암시한다.

아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과 장면들을

따로 정리해보았다.



'종의 기원'_세 번째 생존자가 첫 번째 생존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종의 기원'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문화재를 혐오했지만, 폭력의 사태가 심각해지자

세 번째 생존자가 첫 번째 생존자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생존을 했지만 다른 신념을 갖게 된 두 사람.

그러면서 문화재 반대파, 보호파로 갈리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의 만남은, 문화재가 파괴되는 것이

실상 인류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심각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종의 기원'_짐승으로 전락하고 만 인류에 대한 묘사


자신들의 손으로 모든 문화재를 파괴하고

산으로 도피해버린 첫 번째 생존자와 그의 딸.

딸이 짐승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멸망했고 그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의 기원'_인류의 멸망 앞에 선 첫 번째 생존자의 고뇌

인류가 쌓아올린 문화 유산.

그것을 그들 손으로 직접 파괴해

결국은 파멸에 이른 인류에 대해

깊은 상실감을 느낀 첫 번째 생존자.

그는 문화재에 깔려 자신의 가족을 잃고,

또 다른 가족을 얻지만, 그렇게 얻은 자신의 딸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유산마저 파괴해버리고 만다.

인류는 모든 정체성을 잃고,

짐승과 다를바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홍,피랑,알노'_구인류와 신인류의 대립을 보여주는 장면


신인류가 구인류를 억압하고 핍박하지만, 결국

두 인류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류를 지배하려는 싸움이 무의미한 것임이

이들의 대화를 통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홍,피랑,알노'_ 신인류 멸망의 원인이 된 내부 분열

신인류 내부에 일어난 분열이

결국 모두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신인류 역시 그들의 뒤틀린 욕망과 대립으로 인해

구인류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종말의 길을 걷는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숙명처럼.


이 책은 '인류가 인류로 남기까지' 의 제목처럼,

인류가 인류로 남기 위한 치열한 여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치열함은, 과연 정말 인류를 위한 치열함일까.

그들이 '생존' 하기 위해, 파괴를 기꺼이 일삼는 모습은

인류가 결국 '종말' 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아이러니를 낳는다.

결국, 인류는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또 파괴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타고난 숙명이라면, 과연 그것을

어떤 태도로,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맞는 것일까.

그것은 이 책을 접하는 독자가 결정할 몫이라 생각한다.

작가가 던져준 메세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작품이 던져주는 경고 메세지는 분명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를 살면서, 인류의 존재 의미를 고민할 일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분명 사유한다는 것은 '살아간다' 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가치를 깨달아야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 책의 가제가 '혐오의 시대' 였다고

작가는 말미에 적어두었다.

인류는 분명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제목을 바꿨다.

'혐오의 시대' 로 시대를 단정짓기 보다,

'인류가 인류로 남기까지' 끝없이 발버둥치는 것을

향한 작가의 애증어린 헌사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더욱 책 제목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작품의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오랜만에 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을 만나,

너무나 감사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책을 접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분명히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인류는 자신들을 괴롭히던 잔재가 주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괴로움에서 정말 벗어났느냐고.

우리는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

잔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 이제 인류는

한 차례 진화하였는가, 답을 알고 싶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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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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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서평단으로 책을 받아 도서를 읽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때, 작가님의 따스한 자필글이

동봉되어 있어서 읽기 전부터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책을 다 읽고 편지를 한번 더 읽었다.

책을 통해 '그래도 괜찮다' 는 말을 건네고 싶었던,

작가님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디지몬 어드벤처' 만화가 떠올랐다.

어느날 갑자기 다른 세계로 떨어지게 된 아이들.

디지몬 세계로 떨어진 아이들은

그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모험을 떠난다.

나는 어릴적 그 만화를 보면서 상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다른 규칙과 질서로

돌아가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저 너머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는 판타지이면서도

현실적인 일상, 그리고 우리의 삶과 닿아있는 지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더욱 몰입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평행우주처럼 이어져있고

티비를 통해 그곳을 드나들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누구나 선택을 후회해본 경험이 있다.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 쉽게들 말한다.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나약해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선택들로 지금을 살고,

지금은 불완전하고 후회로 가득하며

실패투성이일 수 있다.

엄마의 지금은 그랬다.

그래서 티비를 통해 다른 세계에 가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시작한다.

이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과 다르게,

그곳에서는 너무나 반듯하게 일을 하고 사랑도 한다.

하지만, 그 세계에 희진이 없어서 그 곳에 이주해서

사는 걸 선택하지 못한다.

희진은 그런 엄마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을 뻔 했다가

문득 깨닫는다. 엄마를 향한 애정의 크기만큼

자신의 선택과 존중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다.

티비만 보는 것 같던 엄마가 사실은 취직을 해서

모니터링 일을 하고 있던 것처럼,

늘 밝아보여서 그럴일 없다고 생각한 윤아가

마음의 병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했던 것처럼,

우리가 보는 세계가 상대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엄마를 향한 희진의 복합적인 감정,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사춘기 시절과 닮아있다.

그래서 더욱 희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 뿐 아니라,

그들의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필독으로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고,

나 역시 지금은 성인의 나이지만 어린 나이에 좀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처가 내겐 너무 크고,

내 아픔과 외로움만이 너무 커서

상대방을 돌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특히 그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라면 더더욱 그렇다.

너무 당연하지만, 쉽게 잊을 수 있는 소중한 마음

그 마음을 일깨워준, 돌아보게 해준 창비 출판사와

전수경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엄마가 찾아낸 세계가 수십 개가 넘거든.

그런데 어디에도 너는 없더라. 너는 오직 여기에만 있어.

이 세계에만 존재해.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이유야.

이 세계는 나에게 가혹하고 매정했지만, 그래서 너무 무섭지만 떠날 수가 없어.

네가 여기 있으니까. 희진아, 너는 엄마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야.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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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맨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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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필로우맨' 은 이미 연극으로 흥행한 작품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원작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해당 작품을 올린 건 2007년, 
그 당시 최민식 배우가 주연을 맡아 연기했는데
글이 좋다고 극찬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단언컨데, 내가 읽었던 희곡 중에 가장 강렬했다. 
어느 서스펜스보다도 흥미진진하고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아서 꼭 한 번 기회가 된다면
배역을 맡아 연기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이 희곡에서 '이야기' 는 커다란 담론으로 작용한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화를 좋아한다.
어린시절, 누구나 예쁘고 아름다운 동화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이야기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각색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의 원작도, 
다소 잔인하고, 사실은 좀 더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여기 잔혹동화. 
아니. 정확히는 우화를 즐겨쓰는 아이
'카투리안' 이 있다. 

카투리안은 이야기를 즐겨 쓴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대상은 늘 '어린아이' 이다. 
카투리안은,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심문을 받는다. 

카투리안은 자신은 이야기를 썼을 뿐이고,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한다. 
형사는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카투리안의 이야기에 나오는 범죄 수법이 이용된 것을
증거로 카투리안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카투리안과 투폴스키의 주장은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그만큼 더욱 더 명확하고 섬세하게 전개된다

투폴스키는 자비없이 카투리안을 몰아간다.
하지만 카투리안은 지지 않고 되받아친다.
 
카투리안이 심문을 받는 현장이 
눈 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구현된다.
그는 왜 비극적인 이야기를 썼을까.
읽으면서 계속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카투리안을 이해하게 된다.
'어른에 의해 희생된 아이'
카투리안의 지속적인 세계관을 이룬
이 주제는 커다란 상징성을 지닌다. 
 
카투리안의 세상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가 상상한 세계 속 아이가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펼쳐진다.
더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서,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카투리안에게는 사랑하는 형이 한 명 있다. 
카투리안은 형에게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 대화는,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대화이다.
마이클은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필로우맨' 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필로우맨은 푹신푹신하고,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운다.
하지만 아이들이 비극적 운명을 맞닥뜨리기 전에 
아이들을 죽게 만든다.
카투리안은,  
필로우맨이다.
카투리안은 자전적 이야기를 우화로 담아냈다. 
진실을 들여다보면 카투리안을 필로우맨으로 
만든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희곡.
그것을 경계함과 동시에, 오히려 비극적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전개가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마틴 맥도나'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희곡을 만나서,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소년병 역할을
고민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우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고,
희곡을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입문하기 좋은 작품이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나처럼 이 이야기에 어느 순간 
어느순간 푹 빠져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머리는 원형 베개였어
그리고 머리에는 단추로 만든 두 눈과 미소 짓는 커다란 입이 있었는데,항상 미소를 짓고 있어서, 항상 이빨이 드러났어.
이빨도 베개로 만들어졌어. 작고 하얀 베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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