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도시 안에서 재앙의 휘파람 소리에 답하는 소리 같았다. 정확히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발아래 펼쳐진 도시와 그 도시가 만들어 낸 닫힌 세상 그리고 이 어두운 밤에 그 도시가 억누르고 있는 무시무시한 절규를 놀라우리만치 또렷하게 감지해 낼 수 있었다.(205/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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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적 관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를 테면 우울한 투쟁과도 같은 것,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지배한 그 투쟁을 계속 추적할 수 있었다.(180/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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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이 무용지물이 되면 사람들은 동정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자신의 양심이 서서히 눈을 감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의사는 짓누르는 듯한 이 하루하루로부터 유일한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 그는 그로 인해 자신의 일이 수월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뻤다.(179/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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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그런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결코 아닙니다. 실존주의는 차라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점입니다. 즉 신이 실존한다고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신의 실존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설령 인간 바로 그 자신이 신의 실존에 대한 유효한 증거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낙관론이자 행동의 독트린입니다. (87~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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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으로부터 모든 결과를 끄집어내려는 노력과다른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는 결코 인간을 절망속으로 밀어 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만약 사람들이 모든 비신앙의 태도를 절망이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으로서의 실존주의는 근원적인 절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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