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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그의 멋진 음악회 그러그 시리즈 6
테드 프라이어 글,그림, 이영란 옮김 / 세용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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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만난 그러그는 좀 낯선 외모였습니다.
마치 원시부족의 볏집으로 둘러쌓인 움막같기도한 얼굴에 길쭉하고 큰코의 단순한 생김새는 아이들이 익히 보아오던 짱구나 뿡뿡이,뽀로로의 그것과는 또 새로운 것이었으니까요.
그러그라는 이 독특한 캐릭터는 작가 테드프라이어가 자신의 아이에게 읽힐 동화책을 직접 만들면서 탄생했다고합니다.
아마 이책 그러그 시리즈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주고싶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와 모험의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읽은 그러그의 멋진음악회에서는 창의력이 뛰어난 그러그의 모습을 볼수있었습니다.
소포로 북을 하나 선물받으면서, 그러그는 북 말고 다른 악기들도 한번 연주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수있는 재료들을 모아다가 그러그만의 악기를 만들어봅니다.
그렇게 신나는 하루를 보낸 그러그는 그날밤 꿈에서 유명한 악단의 단장이 되는 꿈을 꿉니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때는 백지 상태라고하죠. 어떤 밑그림도 그려지지않은 하얀 도화지처럼 무한한 꿈과 가능성이 열려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싶습니다.
때문에 아직 사물에 대한 뚜렷한 인식능력을 갖지 않은 아이들이야말로 훌륭한 발명가가될수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요.
나뭇가지와 냄비, 깡통과 실을 이어서 훌륭한 악기를 만들어내는 그러그 처럼요!
그리고 그안에서 큰 꿈을 키워나가는 그러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금의 아이들은 과연 그러그처럼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속에 꿈꾸며 자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가 꾸는 꿈의 크기를 제한하는것같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것들을 즉시 구해주고, 사줄수 있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인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달리보면 그건 아이의 사고를 제한할수 있다는 면에서 해악이 될수도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돈으로 살수있는 것들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갖고있던 무궁무진한 창의력들은 빛을 잃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론은 우리 꼬마들에게는 굳이 멋진 완제품의 장난감 보다는 그러그처럼 주변의 사물을 보면서 자유로운 생각을 통해 놀이와 꿈을 즐길수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부모의 관심인거죠.

그러그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악기를 연주하는 의성어 의태어를 읽으며 귀가 즐거워지는 음악같은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반복해서 읽으며 그러그를 흉내내보는것도 재밌을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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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솔솔 나서 생각에 대한 생각이야기 2
노석미 글.그림 / 장영(황제펭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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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기분좋아지는 책입니다. 마치 아이가 그리고 만든 동화책인것도같고 포스터칼라로 정성스럽게 한자한자 글자를 칠했지만 삐뚤삐둘 할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의 미술시간이 떠올라 무척 아련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죠.
처음 드는생각이 ' 이 동화책은 얼마만큼의 깊이를 담고 있을까? ' 였습니다. 사소한 동화같은데 의외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전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저에게 시무룩하게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 엄마 우리반에 누구누구는 예뻐서 모두들 걔를 좋아해, 나도 걔처럼 예뻤으면 좋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역시 성장과정에서 아니면 살아가면서 타인을 향한 부러움을 한번쯤은 느껴보았을겁니다.
그게 외모가 되었든, 어떤 물질적인것이 되었든, 관계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때 어떤말을 해줘야할지 잠시 당황하다가 물어보았죠.
나: 그친구는 어디가 예쁜데?
아이: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길고, 노래도 잘하고..
나: 얼굴이 예쁜건 어떤거야? 엄마눈에는 너가 세상에서 가장 이쁜데?
아이: 나는 눈이 이렇게 생겼는데 걔는 눈이 요렇게 생겨서 이쁘단 말이야.
나: 그건 다르게 생긴거지, 이렇게 생기면 밉고 저렇게 생기면 예쁘다는 기준은 없어~~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는 그애가 이쁘겠지만, 엄마눈에는 너만큼 이쁜아이를 본적이 없다는거지

그제야 아이가 씨익 웃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동화를 읽으며 절대성과 상대성에 초점을 맞춰서 아이에게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멀리서도 환하게 보이고, 향기마저도 좋은 백합은 스스로를 가장 멋진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거라는 기대가 큰 실망감으로 이어지게되죠.
그리고 꿀벌처럼 백합을 좋아하는 곤충도 있지만, 이름모를 작은꽃을 좋아하는 노린재가 있는것처럼
세상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는것같습니다. 모두 상대적일수 밖에 없죠.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은 아름답다!
다만 그 역할이 다를뿐, 그 가치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상대적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또 우리는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차별없는 시선을 가져야하고, 자신에게 있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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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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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수많은 해석들중 이 소설 속에 담긴 세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쯤 놓여있는 걸까.

그들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도 그저그렇고 그런 구태의연한 신파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난 이 세사람중 어느 한사람도 나와 동일시 되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보다는 소설을 읽을수록 자꾸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온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노라라는 여자에게 화가 났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긴 시간의 고통을 외면한채 한 몇년 연락두절했다가 어느날 문득 나타나는 노라가 참 미웠다.

너무도 일방적인 사랑.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블레리오와도 머피와도 감정교류가 느껴지지않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건 어쩌면 불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가 할수있는 일종의 사랑법, 사랑을 갈망하지만 늘 방어기제가 앞서는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던거다.

오히려 블레리오나 머피중 누군가 더 세게 더 강하게 꽉 그녀가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사랑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라는 왜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걸까.

어떤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의 나였다면 분명 노라를 부러워 했을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때론 기쁨에 들뜨게도 때론 아프게도 할수 있는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20대를 지나는 동안 노라보다는 사빈의 입장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기쁨은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결국 노라의 만족은 끝이 없고, 모든것들이 파국으로 치닿는 가운데 그녀 마저도 스스로를 무너뜨린 꼴이 되지 않는가.

내생각에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 소설의 제목 '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에 모두 나타나 있는것같다.

어쩌면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룸데일, 노라 이 세사람이 욕망했던건 서로에 대한 사랑이 아닌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한게 아닐까 싶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오히려 더 허하고 쓸쓸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짧은 인생속에 너무나 큰 파국을 가져다 준다는걸 이 소설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보통 책 한권을 잡으면 일주일 이내에 읽었던 반면, 이책은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것 같다.

줄거리 보다는 파트리크 라페르 라는 작가의 글솜씨,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유독 마음에 와닿아 한줄 한줄 가슴으로 느끼며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던것같다.

줄거리만 건진다면 단 몇줄에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무척 쓸쓸하게 재생산 될수 있었던건 작가의 글솜씨 덕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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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신 1 - 그들, 여신을 사랑하다, 개정판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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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은 과연 소설인가?

 

나는 항상 역사소설을 읽을 때 마다 그런 의구심을 갖는다

특히나 이번 소설처럼 알 듯 모를 듯한 명확히 밝혀 지지 않은 역사적 사료에 의거한 소설들은 특히나 그렇고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역사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탄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즐거운 독서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소설은 기존의 그런 역사 소설에서 역사인지 소설인지에 관해 대충 넘어가는 대부분 작가들의 그런 태도를 염두해 둔 듯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히미코의 전기가 아니고 소설이라고 밝히며 나는 역사가가 아니라 소설가라는 점을 굳이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작가가 말한다고 한 들 이야기에 빠진 독자들이 그것을 구분하며 읽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설은 사실 역사적 사료 보다는 신화나 전설을 서술한 일본 고대사의 사료를 바탕으로 써진 것과 매번 일본이 주장하는 백제가 사실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이라는 일본이 주장하는 고대사에 대해 정면으로 배치되는 히미코라는 인물을 통해 백제와 고대 일본 사회와 문화를 소개한 점에서 특별했다

게다가 백제에서 건너간 히미코라는 인물이 일본을 쥐락펴락 했을 거라는 독자의 예상과 달리 사실 이 소설은 한 미천한 인물이 온갖 역경과 암투 속에서 생의 사투를 벌이는 그야말로 작가 말대로 한 여자에 대한 성장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남성 작가들의 역사 소설이 커다란 역사의 흐름에 맥을 두었다면 이 역사소설 아닌 역사소설은 역시나 한 여성의 생을 다루며 써내려 간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거대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중점을 두는 남성작가의 작품보다 사소한 읽은 재미가 있었다

 

특히 나는 어려서부터 왕이 되어야한다는 신념하에 사랑도 버린 히미코 보다는 사랑을 위해 왕의 자리마저도 내어 주며 히미코를 위해 희생한 와타나베라는 인물에 더욱 흥미가 갔고 흔한 역사소설에서 등장하는 성별에 따른 인물과 사건의 전개에 정반대로 히미코에겐 남성성을 와타나베에겐 여성성을 부과 하여 전개한 점이 역시나 남성적 역사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또 이 책은 내게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에 사랑을 포기하는 여성이 과연 존재할까하는 생각과 여성의 시각에서 보는 권력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작가가 기존에 발표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작품을 이번에 작가의 작품이 원작이 된 드라마를 등에 업고 인기에 편승해 다시 출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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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아침
한희수 지음 / 은(도서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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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작가에게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도대체 작가는 이런 소설을 왜 쓰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지만 한편의 예술 작품이라는 문학적 시각에서 평가하면

과연 이런 소설도 작품으로서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마치 과거 간통죄로 경찰에 신고된 불륜 남녀의 조서 혹은 진술서를 보는 듯 내내 배영우와 강지영의 성관계를 언급하는 동시에 그들의 행동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한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잣대를 같이 들이대 보자는 듯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심한 평가를 한건 아닐까?

하지만 작품이 3분 2가 넘겨서 실제로 징계처분 통보서까지 소설에 등장 시키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읽는 내내 보편적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기 보다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개인이 한풀이 삼아 쓰거나 그 불편한 심기를 누군가 대신해 소설로 발표함으로서 해소하기 위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개인의 한풀이도 당연히 문학으로서 가치와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행간의 의미를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등장인물들에게 윤리적 도덕적 인간의 잣대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해보고자 하고 사건의 전개나 이야기 등 소설이 가져야 하는 독자의 읽은 재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점에 정말 짜증스러웠다

 

그 뿐 아니라 작가가 서술하는 소설 속에서 한국 신학교와 그 신학교를 다니는 교수 및 학생들의 사고는 너무나 전근대적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여 정말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되었다

 

나는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특별한 교양이나 지적 습득을 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 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남는 시간에 누구나 하는 가벼운 취미활동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니까.. 그러나 문학 혹은 예술로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생각은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들이 독자에게 지식과 교양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소설에서 교양과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소설을 읽으려 시간을 투자한 만큼 그 독자에 대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으로 인해 독자가 작은 센스정도는 얻을 수 있도록 독자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끝까지 상상력은커녕 흔한 일상에서 발생하는 남녀관계, 직위의 고저에 따른 권력관계를 시간에 따라 지루하고 단순하게 서술하고 계속 반복되며 각 인물간의 차이나 캐릭터가 전혀 녹아들지 않은 지루한 대사와 지문의 반복만 계속 될 뿐 각 인물의 캐릭터나 심리적 변화에 따른 소위 기승전결에 대한 이야기의 변화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다시금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끝까지 읽어 내기가 고통스러웠고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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