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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평점 :
기리야마본진 신상목 사장님의 두 번째 저서입니다. 월간조선에 <일본物語(모노가타리)> 연재글을 자료로 해서 엮은 한국인들은 잘 모르기 쉬운 에도시대 사회문화사네요. 저는 페이스북에 일부 원고들을 맛보기로 포스팅해주실 때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출판을 기다렸던 책입니다. 요즘처럼 감정적인 반일주의가 극심한 시점이라 더 반갑고, 출간 직후 판매량이 많아서 흐뭇하군요.
예를 들어 신슈미소(아이치현)와 센다이미소라는 필수 식재료시장을 놓고 벌어진 기술혁신과 증대된 소비자 효용의 구체적인 실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막부에 대한 일정한 의무만 이행하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릴 수 있었던(심지어 자역 화폐 발행까지 ㅎㄷㄷ) 각 번들 사이의 경쟁이 보다 근대에 가까운 사회를 만든 것이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일본의 시대구분을 따라서 한국사학계에서도 조선시대를 '근세'로 분류하긴 하지만 낙성대학파의 실증연구에 판판히 깨져나가는 국사학계의 사회경제사 선행연구들을 떠올리면 일본과 같이 근세를 겪었다고 말하는 건 국뽕이라 생각합니다. 일본한테 뒤쳐졌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고요.
전세계의 인류가 AD 1세기 무렵 로마시민권자들이 누리던 삶의 평균적인 수준을 다시 회복한게 (그것도 유럽에 한해서)14세기 이후라고 하니까요.(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사회발전지수 참조)
이 책의 목차에 등장하는 에도의 탄생, 참근교대제, 목판출판문화, 뉴스와 광고의 원형, 이노 할아버지의 지도, 서양언어 사전 편찬, 도자기 등등의 일일이 언급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페이스북에 연재하시지 않았던 부분도 많고요.
신사장님을 통해서 <해체신서>의 위대함에 대해 듣고나서 몇 달 후에 아키타현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첨부한 사진들처럼 에도시대 사무라이 마을 가쿠노다테(1620년대 조성)의 청류가에서 사본을 보니 더 그 느낌이 더 각별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의 수탈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서세동점의 시대에 악착같이 대응했던 에도시대 일본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도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신사장님은 끝부분인 제17장과 18장에서 화폐제도와 에도시대 체제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동시대 서양이 아닌 다른 지역 국가들 모두 같은 실정이었습니다. 즉, 일본이 웅덩이의 최강자인 악어로 진화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악어가 된 원인이 꼭 에도시대에서 기인할 필요는 없지만요.)
신사장님의 첫 책 <일본은 악어다>도 재미있게 읽었던 입장에서는 에도시대부터 동양에서 독보적으로 앞서나갔고 전후에 경제적 부흥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웅덩이 안에서만 최강자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한 말씀들을 기대했거든요. 예를 들어 일본의 월등한 관광인프라와 오퍼레이션 수준때문에 해외여행을
점점 더 가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향으로 인한 국제적인 인적 교류에서의 상대적
소외라던가 말이죠.(다음 번 책 소재로 남겨두셨을 수도 있죠.)
외교관, 국비유학생, 중앙부처의 과장급 공무원, 우동 장인(쇼쿠닌), 여러
명을 고용 중인 사업체의 대표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우리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시는 분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에게 비춰주는 거울같은 소중한 책이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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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동에 필요한 교통망, 숙박시설, 치안, 희구의 대상이 되는 명소 명물, 유희 또는 도락거리가 존재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일시적이나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의 시간과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전근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행 대중화의 조건이 충족되고 제약이 제거되었다. 일본은 18세기 중엽에 이미 연간 100만이 넘는 여행객들이 전국을 누비는 세계 최고의 여행천국이었다.
일본 정부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 현지에서 '기립공상회사'라는 반관반민 성격의 무역회사를 급조하여 보증서를 발급하였다. 급조된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회사 형태 조직의 유용성을 체험한 관계자들은 이듬해 도쿄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공예품과 미술품을 위주로 일본 물산을 해외에 수출하는 업무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일본식 무역진흥공사(JETRO)의 원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