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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ㅣ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평점 :
SF문외한인 내가 그것도 이름도 생소한 러시아 작가의 SF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요즘 러시아 문학 작품에
꽂혀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대충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에 방문했는데 그 방문기간이라는 게 뭐낙에 순식간이었나보다.
[V]에서처럼 인간의 탈을 쓰고 지구인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방송을 한 것도 아니고, [배틀스타 갈락티카]에서처럼 인류의 조상이 된 것도
아니다. 이 친구들은 지구의 여섯 곳에 자기들이 왔다갔다는 흔적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여섯 군데, 소위 구역이라는 곳은 기존
물리학으로 설명이 안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고 구역을 관리하려는 당국과 그에 맞서서 구역에 남겨져있는 물건들(외계생명체가 버리고 간 물건들)을
차지하려는 소위 스토커들의 이야기다.
전체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의 첫 부분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발렌타인 필먼 박사의 인터뷰 내용이 서문격으로
짤막하게 소개되고 있다.
구역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방문자의 정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왜 그렇게 잠깐 머물렀는지, 그 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우주의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분명히 알게 됐다는 게
중요하지요.
이 부분을 읽고 바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려나. 해왕성 궤도 밖에서
보이저2호가 지구를 향해 찍은 사진 한 장. 이 광활한 우주에서 조그맣게 빛을 내고 있는 이 지구별이 혼자가 아니라는 필먼 박사의 소감에 과연
어떤 외계생명체가 여섯 곳의 구역에 다녀갔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본격적으로 소설로 들어가면 세 챕터(1, 2, 4)는 전문 스토커 레드릭 슈하트의 이야기가 시기별로 이어지고, 한
챕터(3)는 소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누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3챕터에서의 누넌과 필먼 박사가 나누는 대화가 소설의 제목을 설명해주는
핵심이라고 본다.
필먼 박사는 여러 가지 가정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로서, 구역은 외계생명체가 잠깐 피크닉을 다녀간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교외로 나가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면서 음식물이나 기타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혹은 흘리고 오는 것처럼. 인간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동물들이 이해할 수 없듯이 구역에 버려진 물건들도 우리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먼은 그럼 우리 인간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렇다. 지역, 종교, 이념 등등의 각종 분쟁들이 끊임없이 자행되는 지구도 우주 전체에서는 조그만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스토커 활동으로 감옥에도 다녀오고 후유증으로 인한 유전적인 변형도 자녀에게 전이되는 슈하트는 현금 50만을 약속받고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전설로 전해져오는 금빛 구체를 찾아 마지막(?)으로 구역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구리빛 구체를 바라보며 소원인 듯 소원 아닌
마지막 멘트가 공허한 메아리로 소설을 끝맺고 있다.
SF소설은 거의 읽어본 적이 없고, SF영화들만 더러 보아 왔기에 소재 자체가 기존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것들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하겠다. 많은 영화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로 본 [스타게이트]가 떠오른다.
동명의 영화가 대흥행되어서 TV드라마 시리즈물로 여러 시즌으로 방영된 [스타게이트]는 각 편 마다 새로운 외계행성으로
가서 그 곳의 생명체들과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지는데, 인류에 호의적인 행성도 있고 적대적인 행성도 있고 그리고 전혀 인류가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보여지는 외계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도 있다. 어떤 알 수 없는 물질들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드라마가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이 우주 어딘가에 인류와 비슷한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 조그만 지구별에서 우리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이려나...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기분 상한 채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이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자기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