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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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4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차례에 놀랐다.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수 많은 짧은 글들의 묶음이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각각의 짧은 글들은 주인공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길을 걸으며 주변의 들꽃, 풀벌레, 돌멩이들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길의 시작과 끝에 할머니라는 길잡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119쪽) 글쓴이의 '출신'에 대한 탐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오스코루샤'라는 외떨어진 산속 마을에서 듣는 할머니와 노인들의 이야기는 진실과 환상이 뒤섞여 듣는 이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실과 기억은 다르다. 그렇지만 '청소년 릴레이 경주 대회'(316쪽)에서 기억 속 통나무 막대가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느꼈던 자긍심,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나무'로 만들었든 '유리'로 만들었든 간에 변하지 않는 가치이다. 오히려 환상은 그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줄 따름이다.

이 책의 제목인 '출신'을 이야기를 읽는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내게 처음으로 아말감 충전을 시술한 하이마트 박사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15쪽) '출신'에 대한 물음은 '정체성'에 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출신'에 대한 물음에 이어지는 책 한 권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가족과 친구, 그들과 함께했던 장소에 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 동유럽과 먼 한국의 독자로서 이 책을 만나고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을 때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짧아 책을 읽으면서 유고슬라비아에 대하여,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처음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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