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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얼마 전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봤다. 가족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던 주인공에게 뜻하지 않는 가혹한 노예 생활이 시작되었다. 흑인이라는 피부색깔로 인해 노예시장에 팔려간 것이다. 주인공에게 불어 닥친 암흑의 시간을, 생명부지의 목숨을 극복하는 게 이 영화의 주요 테마다. 주인공은 이 절망의 시간을, 아니 슬픔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울림이 있었다. 보통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때 감정 기복이 심하다. 아침과 저녁, 감정의 편차가 하루에도 롤로코스트를 타듯 출렁거린다. 삶의 피곤에 지쳐 허우적대는 우리네 인생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샐러리맨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에게서, 일자리를 기웃거리는 청년들에게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까. 감정이 다 소진되어 흔적이나 남아 있을까. 내가 느끼는 감정과 타인이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왜 다를까. 나는 감정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그 실체가 궁금했다.
질문에 대한 해답이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명쾌하게 들어 있었다. 문장 속에 숨어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장미처럼 매혹적이고 흡인력이 있었다. 철학자답게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고, 풀기 어려운 숙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때 느끼는 속 시원함과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는 센스가 덧보였다. 또한, 스피노자가 정의한 48개의 감정에 적절한 서적을 대입해서 친근감 있게 다가가도록 가이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역시, 강신주의 글은 달콤 쌉쌀하다. 매력이 넘친다. 작가는 감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기쁨의 감정과 슬픔의 감정으로. 연민과 반감은 슬픔의 감정에, 박애와 자긍심은 기쁨의 감정에 속한다. 많은 부분이 구구절절 공감이 갔다.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름 생각해보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본다.
먼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감이 가는 감정이 있었다. 1장, ‘비루함’에서는 노예 신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비루하게 사는 것인지, 주인의식이 결여된 삶이 얼마나 암울한 것이지를 시사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이와 비슷하다. 과거 노예 신분처럼 뚜렷하게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엄연히 계급사회가 존재하고, ‘갑을병정’의 관계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10장, ‘박애’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애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프랑스 혁명의 3대정신이 ‘사랑’,‘평등’,‘박애’라고 하는데 혁명이 실패로 무산 된 것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이타적인 삶, 봉사, 나눔, 사랑. 이런 해결책을 내놓는 작가의 통쾌한 혜안에 한 표를 던진다.
반론을 제시할 부분도 있다. 25장, ‘감사’에서 발렌틴이 이성애자로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 것을 불행이라고 표현했다. 그럼 동성애자가 정당하다는 것인가. 누구나 평범하게 생각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 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본다. 31장, ‘욕정’에서는 욕정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허락한다는 조건하에서 섹스를 하라고 한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섹스는 허망한 짓이 아닌가. 상대방이 허락하더라도 양심에 가책이 생기면 그것은 정당한 일로 보면 안 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감정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쁨의 감정과 함께 슬픔의 감정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불쾌한 감정이, 슬픔의 감정이 내일을 더 간절히 바라보는 척도가 되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슬픔의 감정을 승화시켜 삶의 한 부분으로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누구에게나 아픔과 기쁨이 종이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기쁨과 슬픔,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담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