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의 달그락거림, 벌의 왱왱거림, 밭일을 하는 괭이와 갈퀴의 사각거림은 할아버지 댁에서 들을 수 있은 여름 소리였다. 반면에 햇볕에 달구어진 회양목에서 나는 쌉사레한 냄새와 퇴비 더비의 고린내는 할아버지 댁의 여름 냄새였고,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개 짖는 소리나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른 오후의 정막함은 여름의 정적이었다.-12쪽
장을 보고 나면 우리는 호수로 가서 백조와 오리들에게 묵은 빵을 던져 주고, 호수위를 지나거나 선착장을 오가는 배들을 구경했다. 이 호수 역시 매우 조용했다. 파도가 쩝쩝 입맛을 다시듯 물가의 벽들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유일했는데, 이 역시 이곳의 여름 소리 가운데 하나였다.
저녁과 밤의 소리도 있었다. 나는 지빠귀가 울 때까지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동차 소리든 사람 목소리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교회의 탑시계서 들려오는 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삼십 분 간격으로 집과 호수 사이를 지나는 기차 소리만 들렸다.
(중략) 막차는 자정 직후에 지나갔다. 그 뒤로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나 자갈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외에 온 세상이 침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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