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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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위의 새


어느 날 아름다운 절에 놀러갔습니다
차 마시는 방
커다란 유리창에
앞산의 숲이 그대로 들어있었지요
진짜 숲인 줄 알고
새들이 와서 진짜 머리를 부딪치고간다는
스님의 말을 전해들으면서
사람들은 하하 호호 웃었지만
나는 문득 슬프고
가슴이 찡했지요

위장된 진실과
거짓된 행복이
하도 그럴듯해
진짜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갔다가
머리를 박고
마음을 다치는 새가
바로 나인 것 같아서요

실체와 그림자를
자주 혼동하는 새가
나인 것 같아
나는 계속 웃을 수가 없었답니다
-21-22쪽

작은 이


작은 언니 작은 누나
작은 오빠 작은 형
작은 고모 작은 이모
작은 엄마 작은 할머니

작은 ...으로 시작하는
모든 말은
아름답고 따듯하다

나는
작은 고모 작은 이모
작은 언니 작은 수녀로
불리움을 새롭게 기뻐하며
더 많이 사랑하리라

사람들의 외로움과 추위를
기도 안에 녹여주는
작은 이가 되리라
누구에게나 정겨운
작은 수녀
작은 천사가 되리라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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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이레 / 2010년 1월
구판절판


자갈의 달그락거림, 벌의 왱왱거림, 밭일을 하는 괭이와 갈퀴의 사각거림은 할아버지 댁에서 들을 수 있은 여름 소리였다. 반면에 햇볕에 달구어진 회양목에서 나는 쌉사레한 냄새와 퇴비 더비의 고린내는 할아버지 댁의 여름 냄새였고,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개 짖는 소리나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른 오후의 정막함은 여름의 정적이었다.-12쪽

장을 보고 나면 우리는 호수로 가서 백조와 오리들에게 묵은 빵을 던져 주고, 호수위를 지나거나 선착장을 오가는 배들을 구경했다. 이 호수 역시 매우 조용했다. 파도가 쩝쩝 입맛을 다시듯 물가의 벽들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유일했는데, 이 역시 이곳의 여름 소리 가운데 하나였다.

저녁과 밤의 소리도 있었다. 나는 지빠귀가 울 때까지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동차 소리든 사람 목소리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교회의 탑시계서 들려오는 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삼십 분 간격으로 집과 호수 사이를 지나는 기차 소리만 들렸다.

(중략) 막차는 자정 직후에 지나갔다. 그 뒤로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나 자갈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외에 온 세상이 침묵에 잠겼다.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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