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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축적에 영역으로 군국주의.
군국주의는 자본에 역사에서도 매우 확실한 기능들을 수행했다.
군국주의는 모든 자체에 역사적인 국면에서 축적들을 동반했다.
유럽자본에 시초로는 소위 '원시적인 축적' 시기에도 군국주의는 신세계와 향료를 생산하는
국가로부터도 인도를 정복했을 때 결정적인 역할들을 했다.
이후로 군국주의는 근대식민지에 대한 정복들, 원시사회에 대한 사회적연대로부터 파괴와 생산수단들에 점유들, 사회구조로부터 상품경제를 저해하는 국가들에서 상품무역들에 강요들,
원주민들에 폭력적인 무산계급화와 식민지에서 임금노동에 대한 강요에도 사용됐다. 그리고 유럽 외 지역에서도 유럽자본들에 세력범위형성이나 확대들, 저발전 국가들에서 철도건설면허에 대한 강요와 국제차관에서 유럽자본에 청구권 집행들에도 군국주의는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비자본주의 문명들을 가진 지역들을 둘러싼 자본주의 국가들 간 경쟁수단으로도 군국주의는 사용됐다.
이에 덧붙여서, 아주 중요한 다른 기능들도 추가된다. 군국주의는 또한 순수경제적으로도 자본에서 잉여가치들에 대한 실현을 위해서도 대단하게 중요한 수단들로, 곧 자체적으로도 하나에 축적영역들로도 나타난다. 누구든 자본화된 잉여가치에 포함된 생산물 더미에 구매자로 파악해야하는가를 연구하면서도, 우리는 거듭 국가와 국가기관들을 소비자로 지적하기를 거부했다.
이들에 소득원천들로부터도 파생된거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업종사자와 현재 사회에 다양한 기식자들, 왕, 목사, 교수, 창녀 그리고 용병들을 포함하는 잉여가치들, 부분적으로는 노동임금들에 의존해살아가는 수익자와 동일한 범주에 놓았다. 하지만 아래로 두 가지 전제조건들을 만족해야만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된다. 첫째로, 마르크스 재생산공식들에 대한 뜻에 따라서, 국가는 자본주의 잉여가치와 노동임금 외에 다른 세금원천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걸 가정하고, 둘째로는 우리는 국가와 국가기관들을 소비자로만 주시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만일 국가공무원들 따라서 '용병'들 역시나 개인적인 소비마저 문제로 된다면, 이는 만약 노동자에 대한 소비수단들로부터도 비용으로 부담되는 한에서 소비는 노동계급들에게도 자본계급들에 추종자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이전된다는 걸 뜻한다.
노동자 소비에 감소를 뜻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짜낸 간접세 총액들로부터는 국가공무원들에 봉급들을 지급하고, 상비군들에 군량들을 제공한다고 잠시 가정해본다면, 사회적총자본들에 재생산들에서는 변화마저 발생하지는 않는다. 사회에 대한 총수요나, 종류로나, 양에서나, 아무런 변화마저 발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생활수단들 부분에서도 변화마저 발생하지는 않았고, 결과적으로도 생산수단에 분야들도 이전으로 같이 유지된다. 변화된 건 그저, 단지 상품으로 노동력이라는 V와Ⅱ부문들에 대한 생산물들, 곧 생산수단들 간에 가치관계들뿐이다. 노동력들을 나타내고, 노동력으로부터도 동일한 크기로는 화폐인 V는 더 적은 양으로부터 생활수단들로도 교환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남은Ⅱ부문들에 대한 생산물들에는 무슨 일도 발생하는가.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국가공무원들이나, 상비군들에게도 바로 이동한다. 노동자에 대한 소비와 동일한 크기를 자본주의 국가기관들로부터도 소비를 대신한다. 따라서 재생산조건들로부터는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총생산물 분배에서도 변화마저 발생한다. 곧 전에는 노동계급들에 대한 소비를 위해, V와 일치했던,Ⅱ부문들에 대한 특정 생산물들에 대한 일정부분들마저도 자본계급추종자들에 대한 소비에 할당된다. 사회적재생산들에 측면에서도 보자면, 처음부터 일정한 가치크기만큼이나, 곧 자본계급들이나, 추종자들에 대한 소비를 위해 할당된 잉여가치들에 대한 일정부분들만큼마저도 더 많은 상대적인 잉여가치들도 있듯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변화마저도 일어나지는 않았고, 처음부터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국가도구를 지탱하기 위한 자금들을 간접세 메커니즘들로부터 노동계급들에 착취에서 얻는 한, 잉여가치들에 증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잉여가치들 가운데 소비된 부분만큼만 증가를 가져온다. 잉여가치와 가변자본 간에 보완적인 분할들은 단지 사후적을도ㅗ 자본이나 노동력들 간에 교환들로부터 완성된 후에 발생한다. 하지만 소비된 잉여가치는 사후적으로도 증가한거라면, 국가기관들에 소비로는 비록 노동계급들에 희생으로 발생할지라도, 자본화된 잉여가치들에 대한 실현수단들로는 고려되지도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계급들로부터 국가공무원들이나, '용병'들을 유지하는 비용들에 대부분을 책임지지도 않는다면, 자본가들은 스스로도 비용들을 모두 책임져야만 한다. 자본가들에게는 계급지배를 위한 기관들에 유지에 필요한 몫들을 잉여가치들에서 직접 할당해야만 한다. 할당되는 잉여가치들에 부분들로는 할당된만큼 자본가들에게 소비를 축조하거나, 더 할 수 있도록, 자본화되기로 정해진 잉여가치들 가운데 일정부분들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로는 자본계급들에 대한 직접적인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잉여가치들 가운데 더 많은 부분들을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더 적은 규모에 잉여가치를 자본화할 수밖에는 없다. 자신들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생존비용들 대부분들을 노동계급들 그리고 단순재생산들에 대한 대표자로는 농부와 수공업자들에 저가함으로,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들 가운데 많은 부분들로 자본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자본화할 수 있는 건 결코 잘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곧 해방된 잉여가치는 정작 실제로는 새로운 상품들을 또 다시 제조하고, 또한,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판매시장들을 결코 만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만일 과세로는 국가에 수중들로 집중된 수단들을 전쟁물자생산에도 이용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간접세와 높은 보호관세를 토대로 군국주의에 필요한 비용들은 주로 노동계급들이나 농민들로부터 지불된다. 두 종류에 세금들로는 별개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노동계급들로부터 지불하는 세금들은 경제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임금상승을 하고, 생필품들에 가격상승들마저 상쇄하지 못한다고 가정해보면, 현재에 노동계급들 대부분에 해당되고, 노동조합들로부터 조직된 소수들조차도 카르텔이나 경영조직들로부터 압력으로 상당한 정도에 상태기 때문이다. 간접세로는 노동자구매력에 일정부분들은 국가로 이전된다는 걸 뜻한다. 일정한 크기에 화폐자본들로붜 가변자본들로는 이전처럼 여전히 이에 부합하는 양에 살아있는 노동들을 운동하게 하는데 이용된다. 곧, 가변자본들에 적합한 불변자본들을 생산하는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데 이용한다. 자본들에 순환들로부터 완성된 후에, 노동계급들이나 국가 사이에 분할들도 진행된다. 곧, 노동자들은 노동력들을 교환하면서도 받은 임금들 가운데 일부를 국가로 넘겨준다. 이전에 모든 가변자본들로는 노동력이라는 물질형태로도 자본들로부터 점유된 반면에, 가변자본들에 대한 화폐형태 강누데 일정부분들을 노동계급들도 보유하고, 다른부분들로는 국가로부터 소유된다. 거래는 자본으로부터 순환마저 종결된 뒤로, 자본이나 노동 사이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거래는 자본에 배후에서도 진행되기 때문에 자본순환들이나 잉여가치생산들에서도 본질적인 부분들을 결코 직접적으로는 침해하지도 않고, 무엇도 관련은 크게 없다. 하지만 거래로는 총자본들에 재생산에 대한 조건들로는 영향들을 미친다.
노동계급들로부터 구매력에 대한 일정부분들을 국가에 이전한다는 건, 생활수단들로부터도 소비로 지출되던 노동계급들에 대한 몫으로, 이전된만큼 한 줄어든다는 걸 뜻한다. 총자본에서 상황들로는 동일한 양들에 대한 가변자본, 화폐자본으로, 노동력으로, 동일한 양들로, 점유된 잉여가치들로부터도, 노동보존들에 필요한 더 적은 양들에 생활수단들을 생산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일치한다. 실제로는 노동계급들에 총생산물들 가운데 더 적은 양들도 할당된다. 총자본들에 대한 재생산에서 가변자본들에 대한 가치크기보다도 더 적은 양들에 대한 생활수단들도 생산된다. 왜냐하면 가변자본들에 가치와 가변자본들에 실현되는 생활수단 양들에 사이에서 가치비율 자체로는 변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정해봤듯이, 화폐로 표현된 노동력에 대한 크기로는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생활수단들에 가격상승들에 비례해서는, 곧 가격상승들을 상쇄할 정도로, 오르지는 않는 반면에, 간접세들에 대한 크기는 생활수단들에 가격상승으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무슨 방향으로 재생산들에 대한 물적관계들에서도 변화들마저 발생할까.
노동력들에 대한 갱신들에 필요한 생활수단들에 대한 양이나 상대적으로도 축소됨으로, 상응하는 불변자본들이나, 살아있는 노동들도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새로운 유효수요로는 사회에서도 발생한다면, 자유로운 불변자본들이나 살아있는 노동으로는 다른 생산들에도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데, 국가는세금제정들로부터도 창출하는 새로운 수요는 결국, 노동계급들에 구매력들로부터 일정부분들을 점유한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가는 생활수단들 이전에 '제삼자'로만 다루었었던, 역시나 세금으로 지불되는 국가공무원들에 대한 생계를 위한 생활수단들에서도 수요를 무시하기 때문으로는 아닌, 특수한 종류로 생산물들, 곧 육지와 해상에서도 군수물자를 필요로도 하기 때문이다.
위 과정에서 무슨 변화마저 사회적 재생산들에서 발생했는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다시 마르크스에 둘째 축적공식들을 예시로 들어보자.
Ⅰ. 5000C+1000V+1000M=7000. 생산수단.
Ⅱ. 1430C+285V+285V=2000. 소비수단.
이제 간접세와 이로 인해 야기된 생활수단들에 대한 가격상승들로부터 실질임금으로부터는,
곧 노동계급들에 소비로는 간접세들에 대한 총액으로 100만큼 축소된다고 가정해보자. 따라서 노동자는 여전하게 1000V+285V=1285V를 화폐로 받지만, 실제로는 1185만큼에 생활수단들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수단들에 대한 가격상승으로도 같은 크기로, '100'은 국가에 세금으로만 들어간다. 이밖에도 국가는 농민 등으로부터도, 군수장비를 위한 세금들, 이를테면, 105만큼 거두어서, 총계250으로부터 수중으로 가지게 된다. 250으로는, 새로운 수요들, 군수장비들에 대한 수요를 나타낸다. 하지만 우리에 흥미를 끄는 건, 다름아닌 노동임금들에서 유래한 '100'이다. 값어치는 '100'에 달하는 군수물자들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고자, 마르크스 공식에서도 가정했듯이, 동일한 유기적인 구성적인 평균치를 구성해보면, 불변자본, 71.5와 가변자본, 14.25로부터 요구되는 하나에 적절한 생산분야들로부터도 만들어져야만 한다.
71.5C+14.25V+14.25M=100. 군수물자.
또한 새로운 생산분야들에서도, 소비를 위해 71.5에 달하는 생산수단들로부터, 대략13, 분야에 노동자들에게도 유요한 간접세들에 대한 부과로 인해서, 대략 13분에1에 달하는 실질임금들에 대한 축소분들로부터도, 일치하는데 달하는 생활수단들로부터도, 더 제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곧바로, 새로운 판매확대에서는 발생한 자본이윤들로는, 단지 가상적인 걸로 응수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노동계급들에 대한 실질적인 소비들에 축소로는, 이에 부합하는 생활수단생산들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축소를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축소는Ⅱ부문에서, 아래와 같은 비율로 표시된다.
71.5C+14.25V+14.25M=100.
Ⅰ. 4949C+989.75V+989.75M=6928.5.
Ⅱ. 1358.5C+270.75V+270.75M=1900.
이제 국가에 대한 중재로 동일한 '100'이라는 같은 크기에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하고, 부합되게 생산수단들에 대한 생산 또한 다시 소생하게하면, 첫눈에는 사회적인 생산들에 대한 물적형태들에서, 일정한 양들에 생활수단생산 대신에 일정한 양들에 군수물자생산이라는 외형적인 변화마저 발생했듯이 보인다. 자본으로는 한쪽 손으로부터도 잃어버린 바로 그걸, 다른 손으로 얻게 되었다. 또는 노동대중들에 대한 생활수단들로부터도 생산하던 많은 수에 자본가들로부터도,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적은 수로 거대자본집단들로부터, 판매시장들로, 잃어버린 상황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으로는, 단지 개별자본들에 관점들에서도 파악할 때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개별자본들에 대한 관점으로는, 생산들에 무슨 분야들에서 이뤄지더라도, 별 차이는 없다. 개별자본들에는 공식들로부터도, 구분하는 총생산들에 대한 부분들로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고, 단지 상품이나 구매자들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개별자본가들에게는 그로부터 생산수단들을 생산하건, 살인수단들을 생산하건, 고기통조림들을 생산하건, 탱크를 만드는 강판을 생산하건 전혀 문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자들로부터도, 군비는 자본들에 대한 경제적 투자로, 일단, 자본가들에 대한 이익들을 위해, 다른 자본가들로부터도 빼앗은데에 대한 논거로 사용됐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이나, 자본들에 대한 옹호자는 관점들을 노동게급들에게도 강요하고자 했다. 그들은 간접세와 국가수요로는 재생산과정들에서도, 물적형태들에 대한 변화만으로부터 유발할 뿐이라고, 노동계급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곧, 다른 상품 대신에 순양함이나 대포를 생산하고, 노동자는 같은 조건들이나 더 나은 조건들로부터 일자리와 빵들을 찾을 수 있다고도 설득했다. 설득들로부터도, 노동자들에게도 해당하는 한, 공식들을 한 번만 봐도 진실마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비교를 쉽게하고자, 이전에 생활수단생산들로부터도 고용된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동일한 크기로 노동자는 군수물자생산들에 고용되어 있다고 가정해본다면, 노동자들은 1285V에 달하는 노동들을 수행하고도 1185만큼 생활수단만, 얻는 결과들마저 나온다.
총자본들에 대한 관점에서 다르다. 총자본에서 군비에 대한 수요를 나타내는 국가수중에 있던 '100'으로는, 새로운 판매에 대한 영역으로 된다. 이 '100'으로는 원래 가변자본들이었다. 100은 자체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살아있는 노동이나 교환됨으로, 임무를 다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가변자본들에 대한 순환으로는 멈추었고, '100'으로는 순환에서 분리되어, 국가에 대한 수중에서, 새로운 구매력들로 다시 나타났다. 마치 없음에서 창조됐듯이, 구매력들로 새롭게 열린 판매영역들로도, 동일한 작용들을 한다. 물론 자본들로부터도 우선 노동자들에게 '100'만큼 더 적은 생활수단들을 판매한다. 개별자본가들에게 노동자는 자본가, 국가, 농부, 그리고 '외국' 등도 마찬가지로, 소비자이고, 상품들에 대한 구매자다. 하지만 우리는 총자본에서 노동계급들에 생계로는 잉여가치들에 생산들이나 실현이라는 생산들에 원래목적들로 가는 우회로, 곧 필요악이라는 사실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에게 같은 양들로부터, 생활수단들로부터도 공급하지는 않았고, 동일한 양들로부터도,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까지도 성공했다면, 훨씬 더 잘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생활수단가격들로부터도 상승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노동자는 수행할 작업들마저도 줄이지 않고 화폐임금들만 낮춘다면, 결과는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활수단생산들에 대한 축소로는 지속적인 임금하락들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다. 만일 자본들로부터 노동자들에 임금에만 바가지를 씌운다면, 노동자들로부터도 더 적은 생산수단들을 생산해야만 한다는 걸 걱정할 필요조차도 없어진다. 오히려 자본들로부터 기회는 올 때마다 즐겁게 몰두해야만한다. 임금상승들로부터도, 상쇄되지도 않는 간접세들로 인해서, 노동계급들에 생활수단들에 대한 더 적은 수요들도 마찬가지로, 역시나 자본 일반에서는 아무런 근심걱정도 끼치지는 않는다. 물론 임금 자체로는 하락할 경우, 가변자본들에 차액으로는 자본가들에 주머니들에만 머물고, 동일한 상품가격들로는 유지된다면, 상대적인 잉여가치로는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차액으로는 국고로 이동한다. 다른 한편들로, 화폐임금들에 대한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하락들로는, 특히나 노동조합 조직들도 높을 경우에는, 매우 드물게만 나타난다. 화폐에 대한 임금, 자체를 축소하려는 자본들에 헛된 소망들로는 여기서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한계에까지도 봉착한다. 이에 반해서, 간접세들로부터도 실질임금들을 하락하게 한다는 건, 즉각적으로도, 순조롭기만 하고, 보편적으로도, 관철된다. 이에 대한 저항들로는 대부분에 경우들에도, 오랜 시간들마저 경과한 뒤로부터,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결과는 없이도, 늘 정치적인 영역들에서도 나타나곤 한다. 만일 일정시간들마저 경과한 뒤로 생활수단들로부터 생산들도 축소된다면, 총자본들에 대한 관점에서는 사업으로부터도 판매들에 대한 손실뿐만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들에서도 부대비용들을 절감한다는 걸로 나타나기만 한다. 노동자들을 위한 생산수단들에 대한 생산으로는 결코 잉여가치들에 대한 실현만이 아니라, 잉여가치들에 대한 생산들에서도 필수조건들로부터, 노동력들을 재생산하기 위함이다.
우리들로부터도 든 예시로 다시 돌아가자.
Ⅰ. 5000C+1000V+1000M=7000.
Ⅱ. 1430C+285V+285M=2000.
첫눈에는Ⅱ부문들로부터도 소비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실현했듯이,
Ⅰ부문들로부터, Ⅱ부문들로부터도, 동일하게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실현했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인 총생산물들을 고려해보면, 착각마저 사라진다. 이러한 경우로, 공식들로는
아래와 같다.
6430C+1285V+1285M=9000.
노동자들에 소비로는 '100'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양부문들에 대한 축소들로부터도,
재생산공식들에 변화로는 아래와도 같다.
Ⅰ. 4949C+989.75V+989.75M=6928.5.
Ⅱ. 1358.5C+270.75V+270.75M=1900.
그리고 사회적 총생산물로는 아래와도 같다.
6307.5C+1260.5V+1260.5M=8828.5.
첫눈에는 위 공식에서 생산규모와 잉여가치들에 대한 생산들로부터도 전반적으로도,
축소된 걸 확인할 수 있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축소로는 단지 우리들에 대한 총생산물들에 대한 구성에서 추상적인 가치크기를 고려했을 경우로만 적용되지만, 물적관계를 고려하면 그렇지 않는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축소된 건 모두 노동력들에 대한 생존비용들 뿐이라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이제 더 적은 양들에 생활수단들이나, 생산수단들로부터도 제조되는데, 이는 단지 노동자를 부양하는데 이용된다. 이제 더 적은 자본들도 사용되고, 더 저근 생산물들도 제조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생산목적들로는 단순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더 큰 자본들을 사용한다는게 아닌지라, 할 수 있는 한 더 큰 잉여가치를 얻는다. 하지만 여기서 자본들에 대한 부족으로는 단지 노동자들에 대한 부양들에 더 적은 자본들로부터도 필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사회전체에서 전에는 고용된 노동자들에 총 생존비용들로는 '1285'에 달했다면, 이제는 총생산물들 가운데 축소된 양 171.5(9000-8828.5)를 생존비용들에서 공제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변화된 사회적생산물공식들을 구성할 수 있다.
6430C+1113.5V+1285M=8828.5.
불변자본들이나 잉여가치는 변하지도 않고 유지된다. 단지 사회에 가변자본들, 지불된 노동들만이 축소되었다. 또는, 불변자본들에 크기는 변하지도 않고, 유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스러운 경우, 진행과정들이나 정확하게 일치하는, 노동자생필품들에 대한 축소에도 부합하는 불변자본들에 대한 축소를 가정한다면, 사회적인 총생산물들에 대한 공식으로는 아래와 같다.
6307.5C+1236V+1285M=8828.5.
사회적 총생산물들도 축소됐는데도, 두 경우로는 모두 잉여가치는 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유지비용만 축소됐기 때문이다.
상황들로는 다음들로 같이 묘사될 수 있다. 사회적인 총생산물들로는 가치들에 따라서만 사회적인 총불변자본들, 총가변자본들 그리고 총잉여가치를 대표하는 각각, 세부분들로부터도 비율들에 따라, 나눠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맨 처음 생산물들에 대한 티끌만큼, 노동들도 추가되지는 않았듯이,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생산물들로는 티끌만큼, 생산수단들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 수 있겠다. 생산물들 더미 자체로는, 물적인형태들에 따른다면, 모두 주어진 생산기간들에 결과이기 때문에도, 가치크기로 불변자본들로는 이전 생산기관들에 대한 결과들이고, 단지 새로운 생산물들에 이전됐음에도, 고용된 전체 노동자들 역시나, 사회들에 불변자본들만 생산하는 부분들,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생계만 돌보는 사명만 하는 부분들, 그리고, 자본계급들에 모든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부분 등 세부분들로 나뉠 수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마저 축소되면, 둘째범주로부터도 수요들에 축소에 부합되는 일정한 수들에 노동자는 해고된다. 하지만 노동자들로는 원래 자본들을 위해 잉여가치를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에 관점에서는 손실만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들에 대한 비용들로 절감함으로부터 발생하는 이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발생하는 국가들에 수요로는 잉여가치에 대한 실현들을 위한, 모두 매력적인 새로운 영역들이기 때문이다. 가변자본들로부터, 순환하는 화폐들에 일부로는 순환들에 궤도에서 벗어나, 국가들에 수중에서 새로운 수요를 나타낸다. 세금들을 징수하는 기술적인 측면들에서도 보면, 과정마저 다르다. 특히 간접세로 거두어들인 금액들로는, 실제로는 자본들에 대한 국가들로부터 선불됐었고, 국가는 상품들을 구매하면, 소비자들에 가격들로부터도 다시 자본들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과정들로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변화마저 없다. 경제적으로는 가변자본으로 기능하는 금액들로부터도 처음에는 자본이나 노동력들 사이에 교환들을 중재하고, 이후로는 소비자로 노동자와 상품판매자들로부터 자본가들 사이들에 대한 교환에서, 금액들 가운데, 일부로는 노동자들에 수중에서 세금들로 국가에 수중으로도 이중한다는 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들로부터도, 순환들로 던져진 금액들로는 국가로부터 수중들로 전혀 새로운 경력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노동력들로도 교환되는데, 교환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에 기능들을 충분하게 수행한다. 곧,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들에서도 낯설고, 외부에도 존재하는 구매력으로, 금액들로는 자본계급들이나, 노동계급들에 생계에 사용되지도 않는 특별한 생산분야들에서도 새로운 생산물들로 목적으로 둔다. 따라서 생산분야들에서 자본들로부터도 잉여가치를 만들뿐만 아니라 실현할 수도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진다. 이전에 노동자들에게서 뽑아낸 간접세들로부터도 국가공무원들에 월급들이나 군비공급들에서도 사용된 걸로 간주했을 때는, 우리는 노동계급들에 대한 소비'절약'들로부터도 경제적으로 자본계급추종자들에 개인소비와 자본가와노동자들에 대한 계급지배도구로 드는 비용들로 사용된다는 걸 밝힌다. 비용적으로는 잉여가치들에 대한 가변자본들로 이전되고, 동일한 양들로부터도 잉여가치는 자본화를 목적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군수물자를 제조하고자 노동자들로부터도 짜낸 세금들로 사용하고, 어떻게 자본들에서 축적들에 대한 새롭게 할 수 있는 제공하는가를 알게됐다.
간접세에 기초하고 있는 군국주의는 실제로는 두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곧, 군국주의는 노동계급들에 표준생활조건들로 희생해서는, 자본지배도구들로부터도,
상비군들로 유지하게 하고, 매우 훌륭한 자본들에 축적분야를 확보해준다.
우리들로부터도 든 예시들에서 총액250가운데 군수장비들에 투자된 150들로부터도
차지하는 국가구매력들에 대한 둘째원천들로는 관심들을 돌려보자. 150으로는 지금까지 고찰된 100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150으로는 노동자만 아니라, 소시민계층들로부터도 수공업자와 농부들로부터 세금들로 거두어들인다. 여기서 상대적으로는 작은부분들로는 자본계급 자신들에 세금으로는 무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무산계급들로부터는 아닌 소비자들에 대표로 간주하려는 농민대중들에게는 세금들에 형태로도 국가에 납부한 금액으로는 원래 자본들로부터도 미리 지불한 건 아니고, 순환하고 있던 자본에서 떨어져나오지도 않았다. 150으로는 농민들에 수중에 있는 판매된 상품들에 대한 등가물들, 곧 단순상품생산들에 가치는 구현된다. 이들 가운데 일정부분들, 곧 자본들로부터는 처음부터 축적들을 위한 잉여가치 실현들로 이용하는 구매력들이다. 이제 계층들에 구매력들로는 군사적인 목적들로 국가로 이전된다는 건 자본들에도 경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그렇다면 무슨 종류로 변화마저 발생하는지 하는 문제마저 발생한다. 첫눈에는 역시나 재생산에 물적형태들에 변화마저 문제된다. 자본들로는 농민소비자들로는 생산수단들이나 생활수단들로 생산하는 대신에, 동일한 가치만큼 군수물자를, 국가를 위해 생산한다. 실제로 발생하는 변화로는 심오하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세금징수메커니즘들로부터도 이용해 양적으로도 비자본주의적인 소비자들로부터 가지고 있던 실제 구매력들보다도 훨씬 큰 구매력들로 만들어낸다.
실제로 상당한 정도로 농민들에게 상품경제를 처음 강요한 건 현대적인 조세제도 자체다. 세금들을 꼭 납부해야만 한다는 압력으로도 농민들로는 지속적으로 생산물들 가운데 점점 더 많던 부분들로 상품을로 변환해야 했고, 동시에 점점 더 많은 걸 구매해야만 했다. 조세제도는 농업들로부터도 유통과정들로 편입하게했고, 농민들로부터는 자본생산물들에 대한 구매자로 되도록 강요했다. 더 나아가 조세제도는 농촌상품생산들에 대한 전제조건들 속에서도 역시나 농업경제들로부터도 조세제도 없이 나타나는거보다도 더 커다란 구매력들로 끄집어냈다.
전에는 마을금고나 은행에서 투자처를 찾는 자본들로 확대하고자 쌓여있던, 농부와 저소득중산층들에 대한 저축들로부터 국가들로부터 소유로 자본들을 위한 수요와 투자할 수 있는 데나, 곳으로 찾는다. 더 나아가 단순상품생산들로도 충족될 수 있는, 따라서 자본축적들에 고려되지 않는 작게 분열됐고, 시간적으로도 분리된 수 많은 상품수요를 동질들에, 상품들에 대한 국가들로부터도, 거대하고, 포괄적인 수요마저 대신한다. 이를 만족하게하고자, 처음부터 높은 생산력수준들로 가진 거대산업들, 곧 잉여가치에 대한 생산들이나, 축적들에도 유리한 조건들도 필요하다. 분산된 소비자들에 대한 구매력들로는 군수물자들에 대한 국가주문형태들에서도 엄청난 크기로 집중되어, 개인소비마저 가지는 임의적인 변화나, 주관적인 동요들도 사라진다. 이는 매번 자동적인 규칙성들이나, 율동적인 성장들로 꼭 가져온다. 결국에는 이러한 군수물자생산들에 대한 자동적인 규칙성들이나 율동적인 성장들에 대한 지렛대로는 입법부라는 장치와 소위 여론형성들에 결정적인 언론들로부터도, 자본, 자신들에 대한 수중으로 놓이게 된다. 따라서 군수물자생산이라는 자본축적들에 대한 특수한 영역들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대될 수 있는 능력들로 가진듯이만 보인다. 그러나 모든 다른 판매영역들에 대한 확대와 자본들에 대한 작전기지들로는 자본들에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하는 세력범위를 벗어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로부터도 상당하게 의존하는 반면에,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영역들로부터 나타내는 군국주의를 위한 생산들로는 우선 자본들에 의지들로부터도 결정되는듯이 보인다.
따라서 세계차원들에서 축적조건들로부터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본 간에 경쟁이라는 심화라는 역사적 필연들로는 자본자신들로부터도 최상에 축적영역들로 전환됐다. 비자본주의 국가들이나 사회들에 대한 생산수단들이나, 노동력들로는 세계저책들이나 식민지정책들부터도 동화하게하고자, 자본들로부터는 점점 더 많은 군국주의를 필요로할수록, 동일한 군국주의는 더 정열적으로도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비자본주의 계층들로는 단순상품생산들에 대한 대표자들이나, 노동계급들로부터도, 지속적으로도, 노동력들로부터도 빼앗으려고만 작동한다. 곧, 전자들로부터는 지속적으로도 더 많은 생산력들도 약탈하고, 후자에 생활수준들마저도 저하하게한다. 이들에 희생들로부터 기반해서는 자본축적들로는 폭발적으로도 증가한다. 하지만 국내나 국외양쪽들에서도 축적들에 조건들로는 일정한 수준에서는 자본몰락들에 대한 조건들로도 돌변한다.
자본들로부터는 군국주의를 이용해서 국내와 국외에서 비자본주의적인 계층들에 대한 존재를 더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모든 노동하는 계층들에 대한 생존조건들로 저하하게할수록, 세계무대에서도 진행되는 자본축적들에 대한 일상사로는 지속적으로도 연결된 일련들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재앙들이나, 격동들로 변화한다. 재앙들이나, 격동들로는, 공황들에 대한 형태로 나타나는 주기적이고, 경제적인 재앙들로부터도, 함께, 축적들로는 지속된다는 건 할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자본, 스스로들로부터도 만들어 낸 자연적인 경제적인 한계들에 부딪히기도 전에, 국제노동계급들에 대한 자본지배들에 대한 투쟁들로부터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선동능력들로 가진 첫째로는 경제형태들이다. 자본주의는 전지구적인차원들로도 확산되고, 모든 다른 경제형태를 몰아내고, 자신들 말고는 다른 경제형태를 허용하지도 않는 경향들도 가진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는 주변 여건들이나, 모체들로, 기능하는 다른 경제형태들 없이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모든 세계들에도 보편적으로 퍼진 형태들로부터도 되려는 경향들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생산들도 보편적인 형태마저 될 수 없는 내재적인 무능력들에 부딪쳐부서진다. 자본주의는 자체로부터는 생생한 역사적인 모순들이고, 자본들에 축적운동들로는 이러한 모순들로는 해결하는 동시에 심화하게한다. 일정한 발전수준들에 도달하면, 자본들에 모순으로는 사회주의원칙들로 적용해 해결하는 방식들 외로는 다른 해결책들마저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라는 목적에 축적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전지구적인 차원들에서도 생산력들에 대한 발전들로부터도 노동하는 인류들, 자신들에 삶에 욕구충족들로부터도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는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세계차원들에, 경제형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