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운명에 맡겨야 한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쓰러졌지만 다가올 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오늘 밤 8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중립 지대. 우리의 재회를 위해 내가 주장한 것이다. 그가 내 호텔에 나타나거나 내가 그의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장소는 우아한 탈출을 원할 때 어려움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총격전이든 로맨틱한 저녁 식사든 항상 계획된 탈출 경로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면에서 레스토랑은 안전한 접선 장소인 셈이다. 나는 이미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미안해요. 여기서 며칠만 머물 예정이라다시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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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을 수도. 아내가 남편을 찔렀다는 부분은 명료한 사실처럼 보이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지고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 버린 여성에 대한 슬프고 복잡한 이야기가 이 사건 전에 놓여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갇혀버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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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인턴으로 일하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한 계절동안 집에 틀어박혔다. 아주 긴 여름이었다. 9평 원룸에 누워 있으면 매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연이어서 쌔 하고 울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겨우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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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그 말들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미유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소개팅 자리를 만들면 선선히 나가서 앉아 있었다. 미유 말대로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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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질투와 열등감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다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부러움, 소외감으로 일어나는 적개심이 상대방으로 향하는 것이 질투라면, 열등감은 그 감정의 칼끝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든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가이자 파리 7대학 교수 폴로랑 아숭 Paul-Laurent Assoun은 그의 책 <질투, 사랑의 그림자》에서 질투는 "본래 자신의 것으로 전제된 이익이나 권리 등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프로이트는 질투를 "심리 생활과 영혼의 중추로 가는 탁월한 통로"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정신 분석가들은 질투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주목했다. - P195

질투와 열등감은 따로, 또 같이 찾아온다. 모두 누군가와 비교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감정의 칼날이 타자와 자아로 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질투로 인한 분노와 적대감이 타자에게 폭발한다면, 열등감은 스스로를 비난한다. 우리는 누구나 ‘가볍게‘ 혹은 ‘심각하게‘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니 이 둘 모두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누군가는 이를 성장동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와 열등감이 우리를 잠식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래 내 것이었던 무언가를 누군가가 박탈할 때 상실감이 생기고 질투가 일어나는 것과 달리, 열등감은 ‘본래 내것‘이랄 게 없다. 그러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것은 본래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나는 가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 버린다. 질투의 고통이 나의 한계치를 넘는 순간 타인에게로 화살의 시위가 당겨진다면, 열등감의 고통은 오직 나에게로만 향한다. 위험한 것은 이런 열등감의 정도가 심해지면 자기비하, 존재의 의미까지 의심하는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 P196

…그를 위해 영양소를 고루 갖춘 점심을 준비하고, 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를 위해 가볍고 소화 잘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하지만 나는 그런 조력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저녁 석양빛이 부드럽게 온 대기를 감싸 안고, 커다란 거실 창의 시폰 커튼이 바람결을 따라 조용히 흔들리는 시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그려 낸 풍경 속에 그와 함께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을 따라 수평선이 흐릿해지면 나는 글을 쓰던 책상에서 일어나 조명을 켠다. 내 책상과 그의 책상 위에 켜진 부드러운 조명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작은 섬의 등대의 불빛처럼 서로를 향해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더욱 고립된다.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또 혼자다. 육체는 그렇게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사유는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를 자유롭게 헤맨다.
피곤해진 눈이 서로 마주치면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이 원고지의 글들을 컴퓨터 파일로 입력해 줄래?" 그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내동댕이쳐진 듯했다. 그가 휘갈기듯 써내려간 원고지를 모아서 타자기로 가지런하게 글들을 모아내는 그런 조력자, 당신이 내게 원했던 게 그거였구나. - P206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원제는 ‘질투‘였다. 질투에는 세 가지가 있다. 경쟁적인 질투감은 우리 모두에게나 있는 정당한 질투다. 투사된 질투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본래 내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생각은 타자에게 투사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질투는 망상적인 질투다. 푸시킨은 이 질투의 감정을 모두 살리에리에게 투영한다. 처음엔 경쟁적인 질투심으로, 그리고 신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빼앗아 모차르트에게 주었다는 투사된 질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질투의 대상을 제거하고, 동시에 신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모차르트를 죽이리라는 망상적인 질투로. 그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후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명분에서도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망상이다. 하지만 그런 질투는 결국 스스로를 파멸할 뿐이다.

살리에리
모차르트의 명성이 커질수록 나도 유명해질 겁니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자, 살리에리." 이렇게 말이죠..

살리에르는 신이 특별히 천재를 사랑했고, 범인들에게는 자비와 친절을 베풀었음을 깨닫는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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