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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 인생, 힘 빼고 가볍게
김서령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9월
평점 :
쿨한 제목과 쿨하기만 한 것은 아닌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귀엽지만 뾰족한, 물없이도 꽤나 오래 견딜 것 같은 표지 속 선인장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이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다.
작가 김서령은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에서
홀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경영해가는 즐거움을 얘기하다
그녀의 표현대로 '어느 날 화들짝 아기 엄마가 되었다"
그 뒤에 낸 책을 읽고 있으니,
김서령. 이라는 인간 본연의 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본인과 지인과 남을 가리지 않는 '바른 말' 향연,
모든지 흥미가 동한 것은 화르륵- 불태우듯 빠져드는 열정.
그리고 그와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는 게으름과 '그러라지 뭐' 스피릿. ^^)
사람들의 평범성에 대한 따스한 눈빛,
어쩌면 우리 모두 겪고 있을지 모를 외로움과 고단함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삶의 뽀시래기 같은 한 조각 조각들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말솜씨는
언제고 그녀의 글을 편안하게 정독하게 만든다.
찬찬히 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상상할 수 있는 내 주변의 얼굴들과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작가의 에피소드들 혹은 그것들의 결말이
한번 책을 잡으면 술술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매력이다.
("그러니까 제가 소설가입니다~"하는 작가의 모습이 또 상상된다. ㅎㅎ)
삶의 궤도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경험, 감정들이 마디인듯 매듭인듯 흔적을 남기고
당신에게도 나와 비슷한 흔적이 있진 않는지 직접적으로 묻진 않지만
독자 스스로 떠올리게 만드는 말들.
책을 읽으며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쿨쿨한 냄새가 나는 김치찌개와 무쳐 놓은지 사흘은 된 것 같은 콩나물,
찰기가 하나 없는 쌀밥에 골을 내다가도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주인 여자가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
"또 비가 와. 너는 안 오고."에
비와 그에 얽힌 추억이 스며드는 경험 (p.39) 이랄지
아끼던 반지를 끼고 오랜만의 나들이를 (무려 거제도로) 다녀온 엄마가
다이아 알갱이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망연자실, 앓아누웠을 때
옆에서 어쩔 줄 모르던 아빠가 나서 (엄마에겐 위로도 되지 않는다;)
"혹시 집에서 잃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내가 한번 뒤져 볼게" 하며
진공청소기 먼지통이며, 집안을 뒤지다, 싱크대 거름망에서 발견했을 때(p.74)
엄마와 아빠의 표정과 대사에서 그 짠한 마음이 전해지게 만드는 것이랄지.
어찌보면 시트콤처럼 깔깔거리며 웃다가
이내 찡-해지고야 마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저없이 선택하기를 권한다.
내 삶에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서 반짝-하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