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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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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설게 - 영화의 소설화 




 하지만……'시절'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비가 내리는 밤의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친구들과 보낸 그 시절의 이미지가 스냅사진처럼 유리창에 비치곤 했다. 그것이 감상일 뿐이라는 건 알고 있다. 재구성된 과거, 기억과 감정이 조한 과거. 하지만 그건 우리가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 가난한 방편이기도 하다. 나는 차라리 그 환각을 즐기기로 했다.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63p 중


  이 소설을 즐기는 방법 자체가 나와있는 구문인 듯 하여 발췌했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은 그런 소설이다. 모든 문구는 단편화된 스냅사진의 중첩이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스냅사진을 넘기듯,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한적이다. 유명한 영화 제목을 딴 열 세 개의 챕터, 국도를 달리는 승용차 안이라는 제한된 세트, 역시 제한된 등장인물 세 명과 그들이 공유하는 '한 시절'. 


  이 소설에 직접 등장하는 인물 김, 정, 최는 각자 닳고 닳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비록 김과 정은 부부 관계지만 그들의 기억은 독립되어 있다. 같은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지금 한 명의 친구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들의 기억은 다 별개로 흩어져 있다. A의 죽음은 그들의 기억이 산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준 장치에 불과하다. 나뭇가지 세 개를 묶어 봤자 나뭇가지는 각자 별개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달까. 하지만 그렇게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이들을 실은 차는 A의 장례식이 열리는 K시를 향해 달리고, 이들의 기억은 갈수록 역주행한다. 자잘한 나뭇가지며 돌맹이가 호수에 파문을 그리듯 온갖 상념이 이어진다. 그리고 계속 언급되는 영화명. A에 대한 기억. 조금씩 엇나가는 그들의 대화. 반복되는 교통사고와 A의 영화, 김-정-최의 장례식행은 결국 동질성을 띠게 된다. 동화 작가 정, 속물적인 증권거래사 김, 사회학 강사를 하며 현학적인 세계에 빠져 있는 최의 상념은 결국 비슷하다. 모두 서로의 환각이며 서로의 뇌에서 재구성된 결과물인 것이다. 결국 이들을 여기에 모아놓은 주최자, 이 소설의 진짜 화자는 A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A는 괴 문자만을 남겨놓은 채 자신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장욱의 이 소설은 현대인의 존재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의미화하는지 그 방식 자체를 글로 굳혀 놓았달까. 우리는 각자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우리를 여기에 앉혀놓고 한 밤 중 국도를 달리게 한 '그 존재'는 이미 없다. 우리는 그의 부재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 가지만 끝내 종착역에 닿지 못한다. 작가의 스냅사진 속 현대인은 어두운 밤 캄캄한 터널을 끝없이 달리는 중인 모양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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