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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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줄로 정리된 작가 소개가 인상적이다 했는데 여기저기 그런, 오뉴월 걸린 감기에 시도 때도 없이 새는 기침처럼 감탄한 문장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요란할까." 11쪽


정말 그랬다. 며칠 전, 호스피스 병원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앙금이 생각했다. 문득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들을 마치 피해자인 양 아버지에게 분노와 서운함 같은 것들을 쏟아 내고 말았던 일들이 스쳤다. 말은 확실히 감정에 따라 예리하게 벼른 칼이 된다.


타인에게 관심이 적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가사조사관'이란 직업은 드라마 <굿파트너>를 보고 알았더랬다. 이혼전문 변호사인 차은경이 정작 이혼 당사자가 된 후 맞닥뜨린 남편과 아이를 둘러싼 관계의 변화가 많이 공감됐던. 어른들의 일로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당황스러웠다. 드라마 속 아이를 둘러싼 그 세심한 공감을 보여주는 그들의 일과 다르게 소설 속 도연의 고단한 일상이 당최 매칭되지 않아서.


조사실에서 고함을 치는 조폭 남자 이야기를 보면서, 그 휘몰이치는 폭언 속에 있는 도연의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복지관에서 상대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자신의 화만 쏟아내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빌런 혹은 진상이라며 피하기 급급했던 시간들이 공감되면서. 마치 내 영혼을 깎아서 그들의 결핍을 채워야 사명감으로 보상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언니는 작은 불씨에도 쉽게 폭발하는 폭탄 같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도연은 작은 불씨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104쪽


또, 시재의 이야기를 보다가 명치 게가 찌릿해졌다. 나는 관계 맺기가 서툴러진 게 확실한가 보다. 며칠 전 동생과 밥을 먹다가 "이제는 친구 만나는 것도 힘겹다"라고 했더니 형은 원래 엄청난 E였는데 왜 이렇게 됐지?라는 물음 비슷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잠시 멍했던가.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서둘러 몸이 불편해져서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하고 나니 이유가 좀 구차해졌다.


"누군가의 관심조차 또 다른 호의로 돌려줘야 하는 빚 같은 거니까." 128쪽


그런 세상에서 살아서일까. 불편한 몸은 시도 때도 없이 배려로 포장된 호의에 노출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감정이 말라가다 못해 바스락거리는 일이 허다해서 마음이 한동안 가라앉았다.


128쪽


"솔직함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솔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158쪽

"큰 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사소한 건 관심이 있어야 보이니까." 185쪽


또 직장이라는 공간마저 좁게 느껴지게 만드는​ 선이의 무해한 웃음과 행동에서 일적인 관계로만 선을 긋던 도연이 점차 후회하게 된 일에 나 역시 동료는 직장을 떠나는 순간이면 지인으로 남기도 쉽지 않았던 일이 공감됐다.


207쪽


도연의 말과 생각들 속에서 감정을 무겁게 누르거나 흔들거나 하는 문장들이 자꾸 튀어 올라 과하게 위로받고 말았다면 믿을까.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 아니면 소설로 포장한 에세이 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섬세함을 느낀다. 작가의 풍부한 감정이 담긴 표현들과 날카롭게 심리를 관통하는 표현들이 읽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은 이별, 상실, 성장, 회복의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안녕"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다룬다. 관계에서의 자기 회복과 감정 정리를 위한 여정에서 아물지 않은 감정들은 어쩌면 각자의 경험과 맞닿게 한다. 책을 덮고 촉촉한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했다. 많은 위로가 됐다. 작가의 팬이 될 듯싶다. 그래! 마침내, 안녕!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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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광고 인문학 - 광고인의 시선으로 떠나는 유쾌한 인문 여행기
이지행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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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성광의 이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저자는 스스로 B급을 자처한다. 그러면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B급'이란 타이틀 아래에서 더 자유롭고 유쾌하게 생각하기를 권한다.


'광고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저자 이지행은 스스로 B급 인문학자라 칭한다. 영화 주간지 <씨네 버스>에서 글을 쓰고 영화열차 <씨네트레인>을 기획했다. 20년간 거치지 않은 광고가 없을 정도라는 그는 '놀고 있네'라는 아지트를 만들어 글 쓰고 기획하며 논다.


진지하게 읽지 말 것! 매뉴얼도 있는 독특한 책


시작부터 재밌다. 매뉴얼이 있고 진지하게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스낵 인문서니 진지하지 말 것,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되고 삐딱, 유쾌, 상상하고 의심하면 땡큐고 B급을 이해하고 고급진 내용을 원하면 냄비받침 정도로 사용을 권장한단다.


이쯤 되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설득되면서 읽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광고는 결국 인간을 향한다."


짜릿했던 문장 중 하나였다. 광고는 팔아야 하는 물건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한다'라는 말이 은근 짜릿하다. 어쩌면 광고의 목적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일이라는 걸 확인 시킨달까. 그런 메시지를 예술 작품에 담긴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에 비춰 풀어내는데, 그 방식이 정말 참신하다.


역사 속 광고천재들의 등장!

책에는 총 6부에 걸쳐 31개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다 흥미롭지만, 특히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된다는 매뉴얼에 충실해 보려 목차를 둘러본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가 폴폴 풍기다 못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는 프란시스코 고야와 귀스타브 쿠르베가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가 엄청 궁금하고, 상상의 끝을 보여줄 것 같은 히에로니무스 보스, 나쁜 인간의 표상인 아돌프 히틀러가 눈길을 끌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로움이 아니라 죄지은 놈은 "걸리면 다 죽이겠다"라는 잔혹한 법률에 가깝다니 좀 충격이었다. 그나저나 남편이 바람피우다 걸리면 갈라서고 아내가 걸리면 강물에 던지네? 아버지가 딸을 덮치면 추방하고 며느리를 덮치면 강물에 던지네? 함무라비 정의롭다더니​ 차별이 좀 심한 거 아님?


26, 27쪽


또 최고의 이야기 꾼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를 구라쟁이이자 인류 최초의 예능인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고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가 스페인 최고의 티저 광고라고 상상하는 데다가 이야기마다 붙어 있는 '팁 태그'는 마치 광고 기획서의 메모처럼 간결하고 재치 있다. 찾아보게 만든달까, 읽는 맛이 있다.


201~203쪽

146, 208, 265쪽


나름의 주목할 문장

"형제의 우정 예술에 대한 사랑과 낭만이 대중을 홀렸고 그들에게 감정이입했다. 대성공한다.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남는 건 기록밖에 없다. 퍼스널 브랜딩은 꾸준함, 꾸준한 기록이다. 명심하자. 우리도 고흐가 될지 모른다." 265쪽, 아를 별 밝은 밤에 압생트 옆에 차고

"광고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다.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고, 욕망을 자극하며, 가끔은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광고는 삶을 팔지만, 동시에 삶을 비춘다." 336쪽, 나가며: 망할놈의 광고, 빌어먹을 인문학


이런 유의 재치스러운 문장들이 책 전체의 분위기와 철학을 잘 보여준다. 유쾌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 미묘한 균형이 담겼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광고나 마케팅에 관심은 있지만, 이론서는 너무 딱딱하다 느끼는 사람

광고를 어렵지 않게, 인문학으로 재미있게 접해보고 싶은 사람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얻고 싶은 크리에이터, 기획자, 디자이너들도 좋겠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추천!

키워드 'B급 감성 + 인문학적 통찰 + 문화 읽기'

《카피책》 – 정철

B급 감성의 정수는 결국 '말맛'이 아닐까? 카피라이터이자 광고인 정철의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언어의 힘을 다루고 있다.

《광고 천재 이제석》 – 이제석

비주류 광고인으로서 B급 정서와 사회 비판을 광고로 구현한 인물로 그의 작업과 사고방식은 이 책과 통하였으니!

《한 우물에서 한눈팔기》 – 창의융합 콘서트 콘텐츠

철학·공학·마케팅·민속학 전문가 13인의 융합 강연을 바탕으로, 분야 간 경계를 넘나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총평을 해본다면!

처음엔 저자 본인이 하도 B급이라 해서 가볍게 읽으려 했는데, 'B급' 감성과 코드로 예술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인간 심리, 문화, 시대의 흐름까지 광고와 연결 지어 흥미롭게 파고드는 책이다.


읽다 보니 진심으로 몰입된다. 게다가 읽는 순서에 상관없다더니, 시작하니까 결국 끝장을 보게 만든다. 한숨에 다 읽었다. 이런 책, 흔치 않다.


한줄평은 "B급은 무슨, 완전 A급이다!"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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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Stacy
지피 지음, 강희진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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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 본명은 지안 알폰소 파치노티.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전 세계 다양한 국제 수상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단편 영화 <지구상의 마지막 남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을 감독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최근 <에로토마니 원숭이 행성의 야만인>, <스테이시> 등 작품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습작처럼 거칠고 러프한 선이 가득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대머리 남자의 결연한 다짐은 흥미진진했다. 왜 스테이시라는 여자에 대해 발설하면 안 되는지, 그랬다간 응당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스테이시가 누구길래?


거친 선과는 다르게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순식간에 빨려 들고 말았다. 멍청한 인터뷰였을 뿐이고 게다가 꿈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지아니는 배신과 심리적 고문을 당한다.


인터뷰를 보다 지아니를 쫓던 랄라의 눈빛이 화면 가득 줌인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표정을 보고 달갑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 말은 취소다.


29쪽


“나는 너에게서 태어난 너의 분신이자 폭군이기 때문이지. 나는 너의 분노를 먹고살고 있고, 그 영양분이 고통과 환상을 키워 분노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거야. 내가 너의 생각을 읽고 그것들을 내 생각과 뒤죽박죽 섞어버릴 거거든? 그럼 너나 나나 그렇게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아무리 용을 써봤자 결국 헛수고가 될 게 뻔하고. 이제 나는 네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널 부추길 거고, 밤마다 줄곧 따라다니면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잠 한숨 못 자도록 네 옆에서 쉬지 않고 지껄여 댈 거야.”

57쪽


드디어 존재하게 되는 건가? 스테이시가? 점점 이야기가, 아니 장면인가? 아무튼 지아니가 '말' 한 번 잘못했다가(사실 잘못한 게 맞지만) '똥' 된 상황에서 마구 철학적인 인식의 문제를 넘나들고 자아의 본성이 악마이고 혹시 지아니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상 여자와 '그러고' 싶다던 마우로를 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이런 인식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지아니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스테이시, 사람들 속성이 다 그런 것 같아. 친구고 동료고 다 마찬가지야. 그들은 상대가 실패하기만을 고대하며 음흉하게 동정을 살피고 있지.”

120쪽


이 말에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그렇잖나? 우린 모두 지독한 입 냄새를 풍기니까. 어느 순간 지아니와 그의 자아(악마)가 뒤 바뀌는 장면이 우리의 인식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누구나 이성의 끈을 가끔씩 놓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연결되는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SNS 인플루언서들의 권력은 인식되는 것이고 게다가 지아니의 자아가 태어난 날도 그랬고.


128, 149쪽


정신이나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자유로워야 한다지만 정작 타인의 말과 평가로 삶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선 그게 쉽지 않고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음해와 모략 나아가 거짓과 선동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게 현실이고 대체로 그런 건 가상공간을 타고 번진다는 것을 작가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대로 꼬집는다.


'영혼은 없다'라는 지아니의 고백처럼 작가는 스스로 검열이 필요한 세상에서 각자 스테이시와의 동거는 안녕한지 묻는다. 세상은 팔로워 수로 연결되고 계급이 정해지며 말로 활자로 살인을 거침없이 하는데 그 위력이 실로 무섭고 참담하다.


263쪽, 옮긴이의 말


생소한 단어였지만 섬뜩했다. '취소 문화' 혹은 '제거 문화'라는 뜻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배척하는 현상이라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어쩌면 인터넷으로 양산되는 이 시대의 반목과 혐오의 배설물이 아닐까.


이 책은 각종 SNS와 메신저, 유튜브 같은 현시대의 온라인 플랫폼의 폐해를 꼬집음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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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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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지식인, 초상화가, 철학자, 기자, 정치가, 문학비평가, 에세이스트로 존재했던 저자 윌리엄 해즐릿은 사회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졌고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않았다고 하며, <원탁>, <셰익스피어 극의 등장인물론>, <시대정신> 등을 출간했다.


해즐릿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가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빈곤, 관념, 삶의 가치, 교만, 성공, 우월 등 인간이 가진 본성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대한 통찰이자 깨달음을 준달까.


해즐릿은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에서 초상 조각가 조지프 놀레켄스, 노스코트, 퓨젤리 등 자신이 연모하거나 존경하는 당대의 미술가들을 통해 당시 미술계의 인사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성취감(무언가 이뤄냈다는 인식)은 죽음을 앞둔 초조와 공포를 제거한다고 표현하면서, 당시 유명 미술가들은 장수했는데 비결이 바로 이런 성취감이라는 것이다.


성취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죽음이 “좀 더 기다렸다가 와야 하겠다”라거나 사그라드는 노년의 모습을 “마음속에 있는 죽음이 살아 움직이는 유령 같은 그들을 덮친다”라는데 표현하는데 참 감각적이다.


솔직히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뭐랄까, 죽음에 대한 그의 사유의 방식이었던 것 같달까. 시대를 풍미하던 당대 미술계의 인사들이 죽거나 앞둔 시점에서 그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감정들, '대다수 미술가들이 죽음보다는 가난을 두려워' 했다는 현실적 딜레마를 당시 권력층인 왕립 예술원 회원들 통해 노년의 모습을 비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는 인간의 시각이 어떻게 상상력을 자극해 관념을 만들고, 어떤 가면을 쓰게 만드는지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눈에 너무 가까이 들이대지지 않은 먼 것에 어렴풋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색을 입힌다."55쪽_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해즐릿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보다 인간이 경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렴풋한 것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흐리멍덩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말년에 가서야 과거를 회상하고, 그제야 삶이 확대되고 풍요롭고 흥미로워진다고 한탄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들은 자신이 상상하던 사람이 될 수 없음을 한탄하고 심지어 그런 사람을 상상하다가 인생을 다시 살고 싶어 하기까지 한다고 지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한탄하는 건 비슷한가 보다.


"눈에 보이는 물체보다 소리와 냄새, 때로는 맛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어쩌면 연상의 사슬에 더 좋은 고리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64쪽


한데 멀어야 좋은 장소나 사물과는 다르게 사람은 가까워야 좋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비방이라고 한다. 즉 상상으로 만든 비방은 사람의 결점을 실제보다 과장하므로 평범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소문은 관념으로 굳어져 무자비한 증오와 혐오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까워야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75쪽


또, [삶을 사랑하는 것은]에서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념을 말하는데 인간은 불사의 삶을 쫓느라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유한한 삶에 대한 즐거움이 끝나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고, 그런 유한함으로 인한 희망이 끝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 꼬집는다.


그래서 인간은 삶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여기는 통에 일상의 즐거움이나 불행 등 평범한 삶을 무시한다고 말이다. 역시 소확행이 중요한 것은 18세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어 패션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몸을 치장하고 꾸며 과시하려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향한 질타와 성공을 위해서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지적하면서 '지나친 겸손은 뻔뻔한 자만심보다 더 해롭다'면서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등 인간 본성에 대한 신랄한 통찰을 담는다.


157쪽


개인적으로는 문체가 궁서체처럼 느껴져서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이라서 의미 있다. 부가적으로 당시 시대상의 일러스트도 재밌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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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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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살아가는�인간이라면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생각이�많아지게�하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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