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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ㅣ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민정 작가의 『호수와 암실』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힘든 소설입니다.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기억의 이야기인지, 복수극인지,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소설이 결국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됩니다.
주인공
연화는 처음에는 과거의 상처를 정리하지 못한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녀가
단순히 과거를 지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거의 잔재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마주하는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말'로 대체되어 버린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어요. 결국 연화는 자신이 직접 뱉은
말이 아닌, 타인에게 씌워진 언어로 만들어진 거짓된 자아를 걷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죠.

『호수와
암실』은 말의 힘이 얼마나 사람을 지배하고,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차분하고도 섬뜩하리만치 차분하게 보여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연화의 내면은 침묵 속에 묻힌 분노와 질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집착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연화와
로사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둘은 서로 반대편에 선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연화는
로사를 혐오하면서도 닮아 있고, 로사는 연화를 무시하면서도 의식합니다. 이 이중적 긴장은 소설의 핵심 동력입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소설이 ‘가르침’이라는 행위에 대해 아주 날카롭게 묻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은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진지한 질문이 담겨 있어요.
이
소설은 ‘가르침’을 지식의 전달이 아닌, 삶의 태도를 주고받는 과정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사유를 정의합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소유욕을 멈추고, 물려받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애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동등한 주체로 성장하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호수와 암실』은 결국,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말과 생각, 감정 속에서
무엇이 진짜 ‘나의 것’인지 묻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묻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귀신처럼 씌인 언어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체로
서는 첫걸음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