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嘆(자탄)

 

一 盃 一 絶 句 (일배일절구)

雖 不 合 幽 貞 (수불합유정)

詩 可 論 懷 鬱 (시가논회울)

酒 能 解 結 愁 (주능해결수)

聞 時 潛 塞 耳 (문시잠색이)

見 俗 自 搔 頭 (견속자소두)

雅 趣 唯 閒 適 (아취유한적)

更 無 此 外 求 (갱무차외구)

   

우리 고전 문학사에서 여류 문인들의 작품은 많지 않죠. 여성의 문학 창작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일거에요. 그러다보니 교육의 기회도 없고, 교육의 기회가 없으니 창작도 어려웠겠죠. 상황이 이러니 이따금 발견되는 여류 문인들의 작품에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어요.

 

근자에 발굴된 여류 문인의 작품중에 '청취당집(淸翠堂集)'이 있어요. 해주 오씨의 작품인데, 이 분은 안성에서 22살에 서산 경주 김씨 일문에 시집와 일곱해 남짓 결혼 생활후 타계하신 분이에요. '청취당집'에는 182수의 시가 있는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아요. 특별한 것은 이 분의 문학적 성취가 고난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에요. 이 분은 6세 이전에 부모를 여의고 조모의 손에서 컸고 시집도 재취로 왔으며 자식을 둘 두었는데(타계하던 해에 아들 하나를 다시 낳음) 모두 잃었고 타계하기까지 유종(乳腫, 젖에 종기가 생겨 곪는 것)으로 고생을 했어요. 남편은 과거를 포기한 사람이었고 시집의 형편은 어려웠지요.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에요.

 

최근 제가 즐겨 찾는 팔봉산에 이 분의 시비가 세워 졌어요(이분의 무덤이 팔봉면에 있거든요). 위의 사진은 시비의 일부분이에요. 무슨 내용인지 한 번 읽어 보실까요?

 

스스로 탄식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 정숙함엔 합당치 않으나/ 시는 울적한 회포 논할 수 있고/ 술은 능히 맺힌 근심 풀어 낸다네/ 세상 일 들릴 땐 몰래 귀를 막고/ 속된 것 볼 때면 머리를 긁적이지/ 고아한 취미는 오직 한가로이 자적함일 뿐/ 이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 (문희순 역)                                               

 

 

제목과 둘째 구만 빼고 읽으면 여인의 시라기 보다는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시라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산림처사의 시는 세상사와 거리를 둔 자족적 내용이 주를 이루죠. 이 시의 내용도 그런 모습을 보여요.

 

그런데 제목과 둘째 구를 집어 넣으면 산림처사의 시와는 판이한 내용이 되요. 우선, 제목이 '스스로 탄식함'이에요. 산림처사의 자족적 내용과는 거리가 먼 제목이죠. 둘째 구는 자신이 여인임을 밝히고 있어요. 여인의 덕목에 산림처사의 작시(作詩)와 음주(飮酒)는 적합한 덕목이 아니죠.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 시의 내용은, 산림처사처럼 자신이 선택하여 세상사와 거리를 두고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으로 세상사와 거리를 두고 술과 시로 자족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산림처사의 외피를 빌어 정 반대의 내용을 담았다고 볼 수 있죠. 보통 솜씨가 아니라고 보여요.

 

시의 내용으로 견강부회하면 이 분은 대단히 자의식이 강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가졌던 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시대가 수용하기에는 그 그릇이 너무 컸던 분 같아요(이런, 시 한 편으로 너무 확대 해석을 하는 듯… ^ ^;;).

 

자, 한자를 읽어 보실까요?

 

                                                   自嘆(스스로자 탄식할탄)                                                

 

                                  一 盃 一 絶 句 (일/ 배/ 일/ 끊을절/ 글귀구)                                    

                                  雖 不 合 幽 貞 (비록수/ 아니불/ 합할합/ 그윽할유/ 곧을정)                           

                                  詩 可 論 懷 鬱 (시/ 가할가/ 논할론/ 품을회/ 막힐울)                             

                                  酒 能 解 結 愁 (주/ 능할능/ 해/ 맺을결/ 근심수)                                  

                                  聞 時 潛 塞 耳 (들을문/ 시/ 몰래잠/ 막을색/ 이)                                  

                                  見 俗 自 搔 頭 (견/ 세속속/ 스스로자/ 긁을소/ 머리두)                              

                                  雅 趣 唯 閒 適 (우아할아/ 취/ 오직유/ 한가할한/ 알맞을적)                           

                                  更 無 此 外 求 (다시갱/ 없을무/ 차/ 바깥외/ 구할                                 

 

 

생소한 한자가 많군요. 다 자세히 다루면 힘들 것 같죠? 몇 자만 간추려 살펴 보도록 하죠. ^ ^

 

은 나무가 우거져 있다란 의미에요. 林(수풀림)으로 그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막히다'란 의미는 본 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우겨져서 잘 통하지 못한다란 의미로요. 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憂鬱(우울), 鬱火(울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물속으로 들어가 이동한다란 의미에요. 氵(물수)로 그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몰래'란 의미는 본 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물 속으로 남 모르게 이동한다란 의미로요. 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潛水(잠수), 潛在(잠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扌(손수)와 蚤(벼룩조)의 합자에요. 벼룩이 기어가듯이 손으로 긁는다는 의미에요. 搔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搔癢(소양, 가려운 곳을 긁음), 搔擾(소요,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남. 騷擾와 통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走(달릴주)와 取(취할취)의 합자에요. 물건을 잽싸게 취하듯[取] 신속하게[走] 일에 임한다란 의미에요. '뜻'이란 의미는 본 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자신이 뜻하는(생각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다란 의미로요. 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趣味(취미), 趣向(취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가다'란 의미에요. 辶(쉬엄쉬엄갈착)으로 그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알맞다'란 의미는 본 뜻에서 연역된 거에요. '알맞게(적당히) 걸어간다'란 의미로요. 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適當(적당), 適合(적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에 해당하는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막힐울, 몰래잠, 긁을소, 뜻취, 알맞을적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味, (  )癢, (  )合, 憂(  ), (  )在

 

3. 여류 문인의 작품 하나를 소개해 보시오.

 

 

이 글을 읽으시는 님께서 만일 남자이고 기혼자라면 정말 아내 분한테 잘해야 합니다. 제가 6개월간, 아내가 아파서, 가사 노동을 해봤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절로 이런 말이 나왔어요. "여자로 안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너나 잘하라구요? 앗, 죄송합니다 ^ ^;;) 자의식이 강하고 진취적이었을 오청취당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이 가요.

 

아, 마지막으로 사족. 위 시에서 둘째 구의 貞은 앞의 글자 幽와 바뀐 것이 아닌가 싶어요(필사 과정에서). 운(韻)이 맞지 않거든요. 句(구) 幽(유)  愁(수) 頭(두) 求(구)로 해야 운이 맞아요.

 

내일 뵈용~~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6-01-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 때 허난설헌의 `곡자(哭子)`를 읽고 눈물을 흘린 뻔 했습니다. 다시 봐도 슬픈 시입니다.

찔레꽃 2016-01-0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애절하죠... 자식이 삶의 전부였을 옛 여인들에게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이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