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여기 좋은 옥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걸 상자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파시겠습니까?”

 

팔아야지! 그러나 그에 걸맞은 값을 기다린 후 팔련다.”

 

논어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예요. 자공이 언급한 옥은 훌륭한 재능을, 상자에 보관한다는 것은 그 재능을 감추는 것을, 파는 것은 그 재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비유해요. 공자는 자공의 물음에 흑백 대답감춘다 혹은 판다 이 아닌 제3의 대답을 하고 있어요. 팔되 걸맞은 값을 기다린다는 것은 재능을 드러내되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適當(적당)한 상황과 인물을 만났을 때 드러내겠다는 것을 비유해요. 맹자는 일찍이 공자를 성인 중에서도 時中(시중)에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한 적이 있는데, 자공과의 문답에서도 그런 면을 읽을 수 있어요.

 

흔히 유가와 도가를 대립적으로 보는데, 사실 두 사상은 대립보다는 상보 관계로 보는 게 더 타당해요. 특히 유가에서 그런 면모를 많이 볼 수 있어요. 공자의 時中(시중) 태도도 도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사기에 보면 공자가 노자를 만나 ()를 물었을 때(물론 이 두 거인의 만남에 대해선 실제다, 아니다란 논란이 분분해요. 여기서는 일단 실제 있었던 일로 상정했어요), 노자는 공자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해요: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이란 모두 그 말을 한 사람의 육신의 뼈는 이미 썩어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말뿐인 존재들이요. 군자는 좋은 때를 만나면 좋은 마차를 타고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나부끼는 풀같이 될 수 있소. 내 들으니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물건일수록 깊숙이 숨겨 없는 것처럼 하고, 훌륭한 군자일수록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춰 어리석은 이처럼 행동한다고 하오. 그대는 교만과 욕심 그리고 허위적 태도와 부질없는 야망을 버리도록 하오. 이 모두는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노자는 공자에게 時中(시중)出處進退(출처진퇴)를 권하고 있어요. 공자가 上記(상기) 자공과의 문답에서 보인 시중 적인 답변은 다분히 노자의 충고를 수용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심장약허(深藏若虛)’라고 읽어요. 노자가 공자에게 충고해준 말 중에 나온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물건일수록) 깊숙이 숨겨 없는 것처럼 하고의 원문이에요. 실제 사용할 때는 훌륭한 장사꾼의 장사 방법이란 의미보다는 노자가 이 말 뒤에 한 훌륭한 군자일수록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춰 어리석은 이처럼 행동한다의 뜻으로 사용하여 지식이나 재능을 뽐내지 않고 겸손함정도의 의미로 쓰고 있어요. 어느 초등학교교장실에서 찍은 거예요.

 

두 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十十(풀 초)(숨길 장)의 합자예요. [十十]로 덮어 숨겨서[] 안 보이게 한다란 의미지요. 본래 으로만 표기했는데 후에 十十가 추가되었어요. 은 음도 담당하죠. 감출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守藏(수장), 所藏(소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언덕 구)(호피무늬 호)의 합자예요. 호피 무늬처럼 두드러져 보이는 흙더미란 의미예요. 는 뜻을, 는 뜻과 음()을 담당해요. 터 허. ‘비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빌 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廢虛(폐허, 廢墟로도 표기), 虛無(허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요즘은 자기 광고 시대라고 하죠. 입시에서도 자기소개서가 도입되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권장하고 있죠. 그런데 광고라고 하는 것이, 흔히 그렇듯, 실제보다 과장된 면모가 많죠. 입시에 자기소개서가 도입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적절한 도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칫 허위의식을 일찍부터 길러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심장약허란 문구를 보면서 드는 중늙은이의 부질없는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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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10월에 두 권의 소책자를 냈습니다. 『한시, 옷을 벗다』와 『맹자와의 대화』입니다. 『한시, 옷을 벗다』는 기존의 한시 감상서들이 표피적 감상만 실은 것에 아쉬움을 느껴 한시를 이렇게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낸 것이고, 『맹자와의 대화』는 『맹자』를 맹자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개작하여 많은 이들이 『맹자』를 부담없이 접하도록 하기 위해 낸 것입니다. 둘 다 포켓용(B6) 150쪽 내외의 소책자로 만들었으며, POD(주문 제작) 방식으로 출간했습니다.

 

 

지난 번 『길에서 만난 한자』와 마찬가지로 님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주시면 도서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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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다.

 

'나는 과연 자리에 연연하는가? 아니다! 다만 前轍(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를 봐라. 대통령을 모욕하던 검사들. 검사들은 자신이 세상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검사들의 조직을 어찌 개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제기되는 의혹에 나는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허니 이 난리가 아니겠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벌여놓은 일, 내가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힘들다. 물러서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 이게 내 生(생)에 부과된 책무 아닌가.'

 

사진은 淸澗亭(청간정, 강원도 고성에 있는 정자)에 걸려있는 액자이다. 액자의 시를 보며 문득 조국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 마음 한 편으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이런 곳 아닐까 싶었던 것. 사람이 싫어질만큼 시달리는 그가 찾을만한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청강정은 주변의 風致(풍치)가 좋아 옛 문사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도 여전히 풍치가 좋다.

 

 

 

 

사진의 시는 이 풍치를 노래했다. 한 번 읽어 보자.

 

天敎滄海無潮汐 천교창해무조석    조석 일지 않는 평온한 곳

亭似方舟在渚涯 정사방주재저애    방주처럼 물가에 고요히 서있네

紅旭欲昇先射牖 홍욱욕승선사유    붉은 해 뜰 적에 들창문 비추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요동이취의    푸른 물결 일 땐에 그 바람 옷깃에

童南樓艓遭風引 동남루접조풍인    아해들 실은 배 바람따라 왔으나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도착자지    서왕모 먹던 복상 그대까지 못가리

怊悵仙蹤不可接 초창선종불가접    선인 자취 찾으나 찾을 길 없나니

依闌空望白鷗飛 의란공망백구비    부질없이 난간 기대 갈매기만 보누나

 

청간정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쓴 시 같다. 첫 두 구에서는 청간정의 모습을,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청간정 안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이곳의 정취를 仙境(선경)에 비겨 말했고, 마지막 두 구에서는 만날 수 없는 仙人(선인)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이 시의 지은이는 문장가로 유명한 澤堂(택당) 李植(이식, 1584-1647)이다. 이 시의 결론격에 해당하는 마지막 두 구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잠시나마 부질없이 불로장생을 희구했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세 번째의 두 구에서 이미 불로장생이 불가능했던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조국은 부질없는 인생에 부질없이 나서서 부질없는 행동을 하여 부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인생은 짧은데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에 그저 충실한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물러나든, 물러나지 않든, 언젠가는 이 곳에 한 번 들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대단한 것도 자연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느낀다면, 자리에 있든 물러나든 남이 비난하든 칭찬하든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의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다섯 개만 추렸다.

 

汐은 氵(물 수)와 夕(저녁 석)의 합자이다. 저녁 때 밀려 들어왔다가 나가는 조수란 뜻이다. 석수 석. 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潮汐(조석), 海汐(해석) 등을 들 수 있겠다.

 

牖는 片(조각 편)과 戶(문 호)와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나뭇조각으로 테를 두른 벽에 나 있는 들창이란 뜻이다. 甫는 음(보→유)을 담당한다. 들창 유. 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牖下(유하, 들창 밑. 방 안, 집 안의 뜻), 牖戶(유호, 들창과 문) 등을 들 수 있겠다.

 

艓는 舟(배 주)와 枼(잎엽, 葉과 통용)의 합자이다. 거룻배란 뜻이다. 舟는 뜻을, 枼은 음(엽→접)을 담당한다. 거룻배 접. 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艓舟(접주, 거룻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蟠은 虫(벌레 충)과 番(차례 번)의 합자이다. 쥐며느리란 벌레를 지칭한다. 虫은 뜻을, 番은 음(번→반)을 담당한다. 쥐며느리 반. 일반적으로는 '서리다(웅크린 모양)'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원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서릴 반. 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蟠桃(반도, 신선 세계에 있다는 큰 복숭아. 장수를 기원하는데 사용)와 蟠龍(반룡, 땅 위에 서리고 있어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한 용) 등을 들 수 있겠다.

 

悄는 忄(마음 심)과 召(부를 소)의 합자이다. 슬퍼하다란 뜻이다. 忄은 뜻을, 召는 음(소→초)을 담당한다. 슬퍼할 초. 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怊悵(초창, 슬퍼함), 怊乎(초호, 슬퍼하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생활이 바빠 길을 떠나지 못한다. 마치 청간정에 다녀온 듯 썼지만, 사실은 인터넷에서 취재하여 쓴 것이다. 바쁜 일정이 끝나면 한 번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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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15회에 걸쳐 부족한 저와 대담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간혹 버릇없는 말투나 질문이 있었던 점도 사과 드리고요. 그러나 근본 취지는 선생님의 뜻을 조금 더 분명히 파악하고자 한 의도였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맹: 이런, 그간 그런 사과는 필요없다고 했는데, 인터뷰하는 분이 너무 자신감이 없군요. (웃음) 그나저나 벌써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니, 나로선 좀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군요. 아직 할 말이 좀 더 있는데…. 물론, 대체(큰 줄거리)는 거의 말했지만.

 

■ 찔: 저도 좀 섭섭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대체는 거의 말씀하신 것 같아 마무리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의도는 선생님의 말씀과 그 의미를 많은 이들이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록 하자는 취지였기에 굳이 세세한 말씀까지는 안들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맹: 그렇군요.

 

■ 찔: 오늘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마무지 짓고자 합니다.

 

■ 맹: 요임금과 순임금으로부터 탕임금에 이르기까지가 500여년인데 중간의 우임금과 고요는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탕임금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가 또한 500여년인데 이윤과 주래는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문왕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문왕으로부터 공자님에게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년인데 태공망과 산의생은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공자님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공자님으로부터 지금 나까지는 100여년 밖에 안됩니다. 성인이 사시던 세상과 지금처럼 가까운 시절이 없었고 성인이 사시던 곳(노나라)과 이토록 가까운 곳(맹자님의 고국인 추나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왕의 도를 이을 사람이 없겠습니까?

 

■ 찔: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리고 왜 선생님이 그토록 선생님 자신의 주장에 자신감을 가지고 계신지도요. 비록 현실에서 선생님의 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실제도 그러셨구요.

 

■ 맹: 그렇습니다.

 

■ 찔: 선생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후일 한유라는 이가 선생님의 도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 이의 의지는 다시 후일 송대의 후계자들로 이어집니다.

 

■ 맹: 그래요?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죠.

 

■ 찔: 외람되지만 제가 선생님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 맹: 그러시죠.

 

■ 찔: 선생님의 생각에서 가장 위대한 점은 '민(백성)의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개인적인 안분(분수에 편안함)이나 권력의 확장을 위한 민의 수단화에 매몰되어 있을 때, 선생님은 이 양자의 경향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선생님을 보수주의자요, 이상주의자라고 합니다. 저도 그런 면을 읽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보수나 이상주의는 개인의 안분이나 민의 수단화를 배제한 다수의 민을 하늘의 위치에 올려 파악한 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수나 이상주의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면 대단히 혁신적인 주장을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제도의 입론 등은 말씀하시지 않고 주나라 제도를 복원하는 선에서 말씀하셨기에 다소 아쉬운 감은 없잖아 있지만, '민의 발견'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 맹: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군요.

 

■ 찔: 저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것도 어쩌면 이런 선생님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싶은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요. (웃음)

 

■ 맹: 옳은 것은 저절로 드러나게 돼있지요. (웃음)

 

■ 찔: 선생님, 모쪼록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 맹: 하하. 그건 인터뷰하시는 분한테 해주고 싶은 얘긴데…. 어쨌든 그간 즐거웠습니다.

 

■ 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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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지난 번 말씀 해주셨던 국제 관계와 관련깊은 전쟁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자 합니다. 먼저 단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선생님은 전쟁 반대론자신지요, 아니면 전쟁 찬성론자신지요?

  

: 둘 다 아닙니다. 전쟁을 반대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 불가피한 경우란 어떤 경우를 말씀하시는지요

  

: 아무런 명분없이 자국을 침략한 나라를 상대해야 할 경우나 천하의 공통된 지탄을 받고 있는 나라의 백성을 구해야 할 경우입니다.

  

: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지금의 전쟁은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 공자께서 편찬하신춘추엔 의로운 전쟁이 없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약간 명분이 더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요. 춘추 시대도 그러했는데, 지금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 그렇게 보시는군요. 선생님, 계제에 지난 번에 나왔던 제와 연나라의 전쟁에 대해 좀 자세한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이 전쟁에는 선생님도 관여돼있다는 말이 있어서요. 제의 연나라 공격에 대해 어떤 이는 선생님께서 공격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서 공격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릇된 조언을 해주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 그렇게 오해할만한 소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선왕의 측근인 심동이 내게 연나라를 정벌해도 괜찮겠냐고 묻더군요. 나는 괜찮다고 했지요. [자쾌]이란 자가 신하[자쾌]에게 자신의 자리를 무슨 물건 선물하듯이 내주어 정사를 그르치게 했으니 정벌할만 하지 않냐고 했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일개 벼슬도 함부로 대여하거나 받지 못하는 것인데 일국의 왕 자리를 함부로 대여하고 받았으니 말입니다.

  

: 그렇군요. 선생님의 가치관에서 봤을 때 연나라는 정벌을 당할만한 소지가 분명히 있었군요. 그래서 정벌을 해도 무방하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연나라를 공격한 이후 각 제후들이 준동을 하고 연나라 백성도 처음엔 제군을 환영하다가 나중엔 반기를 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결국 전쟁을 할 명분은 충분히 있었으나 명분만큼 올바른 뒷처리를 하지 않았기에 생긴 결과로 보입니다. 이런 사태가 생기니 자연 정벌을 권했던 선생님께 불만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나는 전쟁의 명분은 분명히 연나라가 제공하고 있지만 제에게 연나라를 치라고 권유한 적은 없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 연나라가 분명히 타국의 정벌을 받을만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정벌을 제가 해야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심동이 그 질문 후에 "그럼 누가 연나라를 정벌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면 나는 '천리(하늘이 정벌을 명한 자)'라야 할 수 있다고 말했을 거거든요. 정벌이란 '(바르게 함)'으로 하늘의 명을 받은 자라야 할 수 있는 것이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연나라나 제는 거기가 거기인 나라인데 어떻게 제가 연나라를 칠 수 있겠습니까?

  

: 선생님의 말씀은, 외람되지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구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제선왕의 측근인 심동이 연나를 정벌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는 당연히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도 되겠느냐는 것을 전제하고 질문한 것이지, 어떻게 그 전제를 배제하고 질문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같이 현명하신 분이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셨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타인의 말 속에 담긴 의중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시지 않습니까! 누가 연나라를 쳐야 하냐고 질문하지 않았기에 제가 연나라를 치도록 말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구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 그런가요?

  

: !

  

: 굳이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군요. 인터뷰하시는 분이 그렇게 평가하신다면 어쩔수 없지요. 평가는 나의 몫이 아니고 타인의 몫이니까요.

  

: 각국의 제후들이 준동하고 연나라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제선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선왕과 이와 관련하여 대화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 있지요. 제선왕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제후들이 저희 나라를 치려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말했지요. "사방 70리 되는 땅으로도 천하를 호령하는 정치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탕임금입니다. 저는 사방 1,000리나 되는 거대한 땅을 가진 자가 다른 이를 두려워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탕이 정벌을 갈땅에서 시작하자 천하가 그를 믿었다. 동쪽을 정벌할 때는 서이가 왜 자신들은 늦게 치냐며 원망했고, 남쪽을 정벌할 때는 북적이 왜 자신들은 늦게 치냐며 원망했다. 백성들은 그의 정벌을 가뭄 끝의 무지개처럼 기뻐했다.' 이랬기 때문에 시장에 가는 자는 아무런 걱정없이 시장에 갔고, 밭 가는 자 역시 아무런 걱정없이 밭을 갈았습니다. 자신들의 군주를 죽이고 그 백성을 위로하자, 그 일을 오랜 가뭄 끝의 단비처럼 여기며 기뻐했지요. 서는 당시 상황을 '당신을 기다렸는데 당신이 왔군요. 이제 살게 됐네요'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나라가 그 백성을 포학하게 하여 왕께서 정벌하시니 연나라 백성들이 자신들을 홍수와 거센 불길 속에서 구해준 것 처럼 여겨 음식을 대접하며 왕의 군대를 반겼습니다. 그런데 왕의 군사들이 저들의 부형을 살해하고 그 자제들을 포로로 끌어오며 왕실의 사당을 허물고 보기(소중한 물건)들을 실어 온다면 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습니까! 천하는 제의 강대함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제 또 다시 땅을 배로 늘리면서 인정(어진 정치)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불러들이는 자충수입니다. 왕께선 속히 명을 내리사 인질로 잡아온 노인과 어린 애들을 돌려 보내시고 보기 가져오는 일을 중지시키며 연나라 백성과 상의하여 임금을 제자리에 앉힌 뒤 물러나십시오. 그러면 제후들의 준동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앞서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춘추 시대도 의전(의로운 전쟁)이 없었는데 오늘 날 어떻게 의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제선왕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명분은 의(의리)였는지 모르지만 실제는 이(이익)를 위해서 전쟁을 한 것인데 아우런 이익없이 과연 철군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조언은 제선왕에게 그다지 현실감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 그랬던 것 같아요. 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지요. 그러나 후일, 인터뷰하시는 분도 알겠지만, 제는 연나라 정벌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지요.

  

: 연나라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거의 멸망 직전까지 이르렀지요. 물론 선왕 당시는 아니고 민왕 때 였습니다만

  

: 전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고, 첫째도 명분 둘째도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전쟁은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선생님, 오늘은 이만 줄였으면 합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왠지 피냄새가 나는 느낌입니다. (웃음)

  

: 그래요? (웃음)

  

: 다소 제가 격하게 말씀드린 점이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선생님 내일 뵙겠습니다.

  

: 별 말씀을. 그럼,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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