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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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이 산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 고민 없이 살기란 너무도 힘겹다.왜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 이렇게 무거운 주제들이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할까? 등 고민는 다채롭고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각자가 몸 담고 있는 환경에 따라 고민의 모양은 다양하지만, 20대의 고민은 비교적 유사하다. 갓 성인이 되는 20살부터 점차 냉소적인 사회에 적응해가는 20대 중후반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게 된다.




 <고민과 소설가>는 대학생을 위한 잡지 <대학내일>에 소설가 최민석이 기고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20대의 질문을 받으면 저자는 잡지에 기고해서 이에 답하는 식으로. 질문들은 대체로 '20대스럽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많다. 과CC를 해도 되는건가요? 머리가 너무 커요. 남자친구가 가난해요. 글만 읽으면 졸려요. 등등. 거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고 이제 막 가치관을 닦아나가야 할 시기에 진지한 고민들이다. 

 


 고민들의 주제들이 남 얘기같지가 않다. 20대 초중후반에게는 너무도 보편적인 주제. 막연한 미래로 가득 찬 불안함과 걱정들이 어쩐지 내가 한 번쯤은, 아니면 지금까지도 이어 나가고 있는 생각들이다. 위처럼 가벼운 고민도 있지만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들은 무겁고 우중충하다. 하지만 소설가의 문장은 노란 표지만큼이나 가볍고 산뜻하다. 대학생을 위한 잡지답게 작가는 굉장히 젊은 감성으로 고민에 답한다. 깨알같이 자기 소설을 홍보하면서 무거운 답변을 가벼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이 정말 좋다. 



 고민의 해결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때로는 가벼운 위로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작가는 그 역할에 충실했고, 그 충실한 답변에는 조금 삶을 앞서간 사람의 허세 없는 진실함이 담겨서 방황하는 20대에게 잘 와닿았으리라. 나도 그렇게 별 거 없이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도 읽은 책이 얼마 없고 가끔 읽는 책은 게다가 무겁기까지해서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쉽게 책이름을 입에 올리기 힘들었는데, 이제 내 또래 사람들이 읽을만한 책을 물어본다면 이 책을 꼽을테다(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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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죽음 공부
최준식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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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항상 '죽음'에 마주한다. 그러니까, 뭐 내일 갑자기 안타까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고, 아니 그런 면도 없잖아 있지만, 각종 매체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에 종종 올라오는 사망 사고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같은 매체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만큼 온갖 감정을 품고 있는 단어는 없다. '어떤 사람/캐릭터'의 죽음이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제각각이다. 어떤 죽음에는 깊은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죽음에서는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죽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과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매일같이 마주 해온 죽음의 상상과 실제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니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실제로 죽음을 비교적 자주 접하게 되고 망자가 각자에게 어떤 존재였는가에 따라 이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보통은 점점 감정이 무뎌지곤 한다. 그 무뎌짐의 이유는 삶의 무게가 죽음의 것보다 무척이나 무겁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를 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는 항상 존재하는데, 첫째로는 어른들의 말마따나 '언제 갈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로는 개인의 죽음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어마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후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는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보통의 가이드북들은 죽음 이전의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것들의 지침이지만 이 책은 죽음을 바로 앞둔 이들과 그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죽는' 사건 하나만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죽음은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이어지는 대단히 긴 과정입니다.


 이 책은 유언 작성부터 시작해서 숨을 거둔 이후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공손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가슴 아픈 내용들을 던진다. 주로 임종을 앞둔 사람을 위한 정보들이 많은 편이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들이라고 본다.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제고하는 부분 역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듯싶다.


 저자는 집필 동기에서 죽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을 떨쳐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방식으로 외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어차피 다가올 것이라면 피하는 것이 아닌 맞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에게나 내 주위 사람에게나,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가 연명 치료를 반대하고 당사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심히 와닿았다.  



 친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셔서 격주로 될 수 있으면 찾아뵙곤 한다. 안타깝게도 할머니께서 총기가 떨어지셔서 내 이름이나 아버지-할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을 구분하지 못하신다. 나는 찾아뵐 때마다 나를 기억해주시나 싶어서 이렇게 여쭤보곤 했는데, 이 말은 사실 할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직 할머니가 본문의 상황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병문안을 가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와중에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의 죽음이 주위 사람에게 끼치는 여파는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사후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현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준비를 꼼꼼하게 해야 할 듯싶다. 삶의 매듭을 아름답게 맺기란 어렵지만 마냥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실은 아직 나에게 죽음은 먼 얘기 같다. 너무 늦기 전에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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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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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것은 각지고 경직되어 있으며 수정이 쉽지 않기에 폐쇄적이지만, 어떤 매체보다도 은밀하고 강력하게 출판 당시의 시대상을 품고 있다. 책에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입이 아플 정도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떤가? 책이 간접적으로 과거를 전해준다고 한다면, 역사는 좀 더 생각해볼 새도 없이 과거를 샅샅이 폭로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조선전쟁실록>은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의 전쟁들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왜구들의 침략과 임진왜란(정유재란), 병인양요, 신미양요에 대한 기록인지라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확인하고자 했다.


나는 일본의 조총에 조선이 활만 당긴 줄 알았는데, 난 무지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사실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조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알고 있었으나, 임진년 이전부터 조선은 조총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짧은 지식을 신념처럼 굳게 믿으면 안 됐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다면 짧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그 밖에도 어쭙잖은 상식을 깨부수는 내용들이 많으니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선조의 작전상 도주- 그리고 인조 의문의 1패.


 역사의 기록은 당대에 이루어지지만 역사의 해석은 후대의 몫이다. 계속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당시대의 가치관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도 역사지만, 나는 일련의 기록을 보면서, 이때나 지금이나 부조리하고 멍청한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임진왜란은 선조가 도망간 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하니-이것도 사실 몰랐다. 내 기존의 생각에 선조는 그저 제 목숨 살리고자 도망간 나쁜 놈.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그렇다 쳐도, 병자호란의 경우에는 붕당 싸움에 나라가 그대로 쇠퇴해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점은 이해가 갈 듯도 하다. 평생의 학문을 부인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조를 옹호하고 싶은건 아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구성이지만 약간 아쉬웠던 것은

1. 전쟁의 진행과정에서 지명이나 전투를 표시해둘 지도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료 위주의 전개다보니 낯선 지명이나 용어들이 꽤 등장하는데 머릿속으로 바로바로 그려지지 못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경상도부터 시작해서 어느 경로로 조선을 정복하기 시작했는지 바로 와닿지 못했다. 이순신이 전라도 방면 해안을 지켰다고 봤는데 그러면 경상도 쪽, 그러니까 부산 쪽으로 군품을 보급하면 안 됐나? 사실 이건 내가 우둔한 탓이다.

2. 책이 갑자기 끝난다. 신미양요까지의 서술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러고 갑자기 끝나버렸다. 맺는말 같은 저자의 요약이나 마무리 단락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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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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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의 가치는 어마무시하다. 설사 책을 가까이 하지 않거나 일본 문학을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상실의 시대>, <1Q84>라는 제목은 귀에 익숙할 것이다. 장편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여전히 서점 베스트 셀러 한 편에 자리잡고 있다. 아무튼 그의 네임밸류에 대해서는 멀리갈 것도 없다. 5년 전, 모 출판사가 하루키에게 지불했던 어마어마한 선인세의 양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버스데이 걸>은 그런 하루키의 신작 아닌 신작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 자체는 2002년 <버스데이 스토리스>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하루키의 단편으로, 단편집 중 한 편으로 존재하는만큼 이야기가 짧은 편이다.  <버스데이 걸>은 독일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의 그림을 수록한 것으로, 이 두 예술가의 콜라보는 2013년부터 시작해서 <잠>, <이상한 도서관>, <빵가게를 습격하다>에 이어 <버스데이 걸>이 네 번째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맞은 화자가 생일 날 겪은 매우 짤막한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콩트는 일러스트를 포함해서 64페이지니, 하나의 '이야기'보다는 '하루키 문장 맛보기'가 맞지 않을까 싶다. 분량을 제쳐두고 굉장히 술술 읽히는 편이다. 어렵지 않은 문체와 난해한 스토리로 유명한 하루키의 글에서, 스토리가 전개될 틈도 없이 끝나버리니 난해함은 사라지고 열린 결말과 더불어 여운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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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 부쩍 '가성비'보다도 '가심비'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가성비가 가격대비 성능, 객관적인 효용에 무게를 두었다면 가심비는 주관적인 효용이다. 가격이 얼마나 나가는지-는 소비자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두 예술가 간의 콜라보의 산물이었던 이전의 세 작품도 <버스데이 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가상승률은 깔끔하게 제쳐둔, 13,000원의 가격으로 64~100p 분량의 일러스트와 결합된 아트북이다. 물론 출판사라고해서 하루키를 향한 팬심만으로 출판을 기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 년 전에 처음 시작했던 콜라보가 최근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기획자들이 그 아트북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에게 가심비의 시대의 경종을 울렸다. 책값에는 제본비나 담당자들의 임금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더해진 결과며 이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값 보다도 더 한 감동과 감성과 이런저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심장을 울렸으리라. 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도 많은 감동과 감성과 기타 등등의 것들을 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가심비 앞에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떨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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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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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신조어 중에 'TMI'라는 게 있다. Too Much Information, 그러니까 쓸데없이 과한 정보라는 말이다. 신조어 하나 알았다고 어려진 기분이 드는 것보니 갑자기 하루하루 나이먹는 것이 무서워진다. 각설하고, 고등학생 때인가, '정보사회와 컴퓨터'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지겹게 듣던 게 정보의 홍수 혹은 범람이다. 넘쳐도 너무 넘친다. 가공하지 않은 정보들이, 중요하지 않으면서도 투머치한 정보들이 넘쳐 흐르다 못해 발밑까지 차올랐다. 


 정보가 넘치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은 아니다. 정보를 잘 가공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거르고 나머지는 버릴 수 있다면 많은 표본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고갈되었다는 점이다. 중요하지 않은 곳에 열을 올리고 필요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게 됐다. 개인의 가치관은 집단의 것에 묻혀버리고 엉뚱한 곳에 각자의 화를 내뿜는다. 구조적인 문제조차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정작 개인의 잘못으로 봐야할 일은 집단의 것으로 확대해석한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분노와 혐오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버렸다. 가장 지적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하고 불필요한 지성들이 팽배한다.


 이런 시대에 최근에 읽은 <공감의 시대>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감동이 북받쳐서 평소 귀찮아서 하지도 않는 카드뉴스까지 만들었다.


 사실 나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아동센터에서 잠시 일하면서 어린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들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애들이 저런 악독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순자는 수양과 교육을 통해-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악했던 성질을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악역으로 사는 것은 예술작품에서도 '너무 평면적인 캐릭터'라고 까일만한 설정이다.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모든 설의 방점은 선을 지향하며 찍힌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아니라 이미 다 자란 어른들이지 않은가? 간혹 어린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면 그 아이와 더불어 그 아이의 부모를 비판하듯,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어른들이고 어느 정도까지 책임 역시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 탐욕스럽고 이기심으로 가득찼다-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성인이 되었다면 그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분노들, Too Much Rage를 제대로 된 방향에 내뱉을 수 있고,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의 이타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으며, 문제가 발생한다면 교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책의 역자인 최재천 씨가 서문에서 밝힌 문장이 내 마음에 깊히 박힌다.

저는 이 책을 번역하며 깨달았습니다.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는 걸.


 아무리 무뎌지고 묻혀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고 사라져야 할 것도 아니다. 세상 살기가 박박하다지만 우리들의 인성까지도 박박해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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