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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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아래]

'나는 매일 소 한 마리를 해체하는 사람이다. 소위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생략).

정육 칼이 든 가방을 들고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찾아가 협박? 할 만큼 당찼던 그녀.

비록 가게에 돌아와서는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무서웠던 그녀였다. 이런 할머니의 밑에서 자란 손자여서 그럴까.

연명치료를 하지 말자는 가족들의 결정에도 손자 승훈이는 결사반대다. 기적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살아만이라도 계시길 바랄 뿐이다.



내가 당사자(할머니) 라면 연명을 바라지 않겠지만(지금의 마음으론), 또 내가 승훈이라면 나도 반대할 것 같다.

그만큼 승훈이에겐 엄마보다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덜 후회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걸까요?"

42p

그럼 나는?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을 향해 걸어가고만 있는 지금의 나는 의미가 있나.

42p



[오기]

며칠 전 <악플러 수용소>를 읽었는데... 여기 역시 악플러들이 존재한다.

암 같은 존재 악플러들. 조용히 숨어 있다 기막힌 타이밍에 덤벼드는 그들.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79p) 말하는 초아.

초아의 소설 출간이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타이밍과 적절했다는 것은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제자에게 그렇게 막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일까.

왜 비슷하면 일단 내 얘기가 아닐까? 란 생각만 하는 것일까.

내 기분은 상처고 남의 상처는 그냥 지나가는 일이란 말인가.

어찌 됐든 악플은 세상 못난? 사람만이 하는 짓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가출]

올해 나이 일흔둘. 아버지가 가출했다. 편지 한 장 달랑 남겨 놓은 채. 치매나 정신 질환도 없다.

아버지의 가출로 자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식들만 올 때도 있고 며느리와 손주도 같이 올 때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지만 정작 뾰족한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발 벗고 아버지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모이면서 오히려 돈독해지는 가족.

대체 아버지는 왜 가출을 하신 것일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 것일까?

그러다 어느 날부터 딸이 준 카드 명세서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아버지는 일부러 딸의 카드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뜻으로...



[미스 김은 알고 있다]

미스 김은 그러니까, 직함도, 부서도, 딱히 전담하는 업무도, 클라이언트도 없다. 정해진 일이 없는 대신 회사의 모든 일을 했다. 모든 업무를 파악하고 조율하고 진행했기에 그만큼 회사는 순조로웠다. 그래서 미스 김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버렸다. 그렇다고 승진을 시켜주는 것도 연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마지막 미스 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왜? 그녀는 복수를 한 것일까?

그녀의 복수는 타당했다!!!



"사람 손이 왜 두 갠 줄 알아? 다른 건 다 놓쳐도 정신줄이랑 밥줄은 양손으로 꼭 붙들고 살라는 뜻이야."

124p



[현남 오빠에게]

처음엔 좋은 남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런 개 또라의~

그녀의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고 자기 뜻대로만 하는 남자.

사랑을 빙자한 구속. 인간으로서 그녀를 대한 게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그녀를 길들인 남자.

그녀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남자.

정말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살면 결국엔 누구 하나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까지 들게 한 남자다.

꽃 같은 청춘을 이런 남자와 함께한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이제라도 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거에 안도와 기쁨이 일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외침! 너무 시원했다.

무엇보다 저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서른 살의 오빠가 스물다섯인 저에게 꺾였다니. 서른이 된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네요.

178p



[오로라의 밤]

쉰일곱의 그녀. 그녀는 선생님이다.

하지만 예쁜 손주가 있는 할머니이기도 하다. 남들은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준다더라, 시어머니가 봐준다더라 하는 딸의 푸념도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다. 어느 할머니가 손주가 안 이쁘겠냐마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더 늙기 전에 계획한 버킷리스트,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나 역시 늙어도 손주를 안 봐준다 못 박아놨다(그때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

이 나이 되도록 가족에게 헌신하고 양보했으면 노후는 내 삶을 살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녀의 생각과 삶에 응원이 더해졌다. 그렇게 그녀는 시어머니와 오로라를 보러 간다. 남편을 먼저 보낸 그녀는 시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둘의 알콩달콩스러운 모습이 여느 고부지간의 모습과는 달라서 참 보기 좋았다. 뭐랄까, 한편으론 참 귀엽게도 느껴졌달까.

오로라를 보면 소원을 빈다던 그녀의 소원은???

아놔~소원이 이런 것일 줄이야~순간 웃음이 터졌고 그녀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저런 얘길 한 적이 있는데~ㅎㅎㅎ

제 엄마도 아닌 나에게 어머니, 어머니, 하며 예의 바르게, 한편으로는 어린애 달래듯 말했다. 내 딸은 내게 이렇게 다정한가, 나는 내 엄마에게 이렇게 다정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만드는 말투였다.

213p

"아무렇지 않게 너무 잘 살아져서 서운해. 나는 요즘 너랑 이것저것 해 먹는 것도 다 맛있고, 평생학습관에서 보드게임 배우는 것도 시니어 영어 회화 배우는 것도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효경아, 나는 남편 없이는 살아도 아들 없이는 못 살 줄 알았다."

226p

"아니, 너 대학원 다닌다고 싫어하고만 있었던 거."

231p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준비하는 것, 완전히 절망해 버리지 않는 것, 실낱같은 운이 따라왔을 때 인정하고 감사하고 모두 내 노력인 듯 포장하지 않는 것.

250p



[여자아이는 자라서]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주하 엄마.

"남자애들이 일부러, 그러니까, 성적인 의미를 담아서 그런 게 맞아? 그냥 장난친 게 아니고? 남자애들은 원래 생각이 없어.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영웅심에 그런 걸 수도 있어."

주하 엄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을 때 나 역시 놀랐다. 상담소를 운영한 사람 맞아?

어찌 됐든 남학생들이 성희롱을 했는데 성적인 의미를 따지는 모습이란, 딸 가진 엄마조차 이런 반응이니 남자들의 반성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성적인 의미를 담든 담지 않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인식시켜 줘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지금도 꾸준히 학교든 직장에서든 일어나고 있는 성희롱.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고 부모들의 교육 또한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며 학교 역시 제대로 된 체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엄마도 똑같네."

"아니! 엄마 똑같지 않아! 너 엄마가 뭘 보고 어떻게 자랐는지 몰라? 엄마 너만 할 때부터 성교육 캠프 다니던 사람이야. 대학 때 책 모임 만든 얘기 들었지?"

"그랬겠지, 무려 20년 전에.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 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 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러는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 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293p



[첫사랑]

초등 4학년인 승민과 서연.

어느 날 승민이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한다.

"우리, 사귈까?"

아~귀여워~ㅎㅎ

그렇게 승민과 서연은 사귀게 되지만 코로나 때문에 점점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서연은 승민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코로나 때문에 잘 만나지도 못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서연이가 헤어지자고 할까, 승민은 어이도 없고 화가 났다.



"네 말대로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잖아. 근데 사귀어서 뭐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그게 나 때문이야? 너가 우리 학원 안 왔잖아! 너가 카톡도 안 되잖아!"

"나도 너네 학원 다니고 싶어. 카톡도 하고 싶어. 근데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러니까 헤어지자고 하잖아!"

"그럼 내가 준 마스크 도로 내놔!"



세상에나 코로나가 이 아이들의 사랑?까지도 갈라놓다니!!!

역시 애들은 애들인가 보다. 화가 나서 울며 외친 승민의 마지막 외침이 왜 이렇게 귀여웠던지~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몽글몽글했던지~

코로나가 참으로 미웠다. 코로나의 위력이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까지도 묵살해버린 게 많이 가슴 아팠다.

어서 빨리 종식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맘껏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승민아, 너희들이 사귀고 헤어지는 일까지 선생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고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고 할 수는 없어. 그런데. 음, 마스크 도로 내놓으라고 그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선생님도 안타깝다, 미안해."

328P



/





노년의 그녀에서 청소년의 그녀까지의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 <우리가 쓴 것>.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야기라 더욱 공감하고 잔잔히 다가왔다.

특히나 <오로라의 밤>에서 보여준 고부간의 모습이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마지막을 초등학생들의 첫사랑으로 마무리한 것에 뭐랄까, 다소 웃음을 머금은 채 책을 덮을 수 있어서 좋았다랄까? ㅎㅎ

<우리가 쓴 것>은 8편의 단편 속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란 것에 조남주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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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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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존재하는 한 비리와 부패는 늘 우리 주위에 독버섯처럼 자라왔다. 이 지구촌에 비리와 부패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부패 공직자를 응징하고 처단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아마 우리나라만큼 그들에게 국민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생략) 대안이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철저한 감시자가 되고 집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직무다. - 본문-

예나 지금이나 비리와 부패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인간들을 좀먹는 암 같은 존재로 공존하고 있다. 아무리 잘라 내도 암이 전이하듯 슬금슬금 다시 기어 나온다. 특히나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것까지 우리는 보고 있다. 또한 부패한 고위 공직자들 역시 법망을 자기들 손바닥 보듯 잘도 빠져나간다. 법을 유린하고 농락하기까지 한다. 일개 시민에겐 법은 평등하지 않지만 이들에겐 법은 평등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비리와 부패의 기삿거리가 쏟아진다.
한동안 코로나에 한몫했던 한 교회 집단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다. 철저히 조사해 응징하겠다던 정부의 말이 더 분노를 샀다. 그들 모두가 법의 응징이 아닌 무제로 나왔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법을 무서워 나 할까??.

​법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우리는 이런 인간들을 처단해 주는 사람이 있길 바란 적이 있지 않은가.
법이 그들을 응징하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는 마음. 여기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통쾌하게 해줄 그들이 나타났다. 일명 '집행관들'.

​모두가 아픈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 상처로 모인 사람들. 오히려 상처가 팀을 결집시키고 같은 목표를 갖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 이들은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친일파,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 등 법망을 잘도 빠져나가며 법을 농락하고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될 쓰레기들만 골라 집행을 실행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하는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엄연히 이들이 하는 짓은 살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죄를 묻기도 애매한, 또 어디에도 그들을 비난하는 글도 없다. 오히려 '대리만족'으로 옹호하기 바쁘다. 나역시 책을 읽으면서도 시원하고 통쾌하게 느껴야 함은 물론이지만 한편으론 씁쓸함마져 들었다.

​나도 가끔은 생각한다. 이런 버러지 같은 인간들을 처단할 땐 따뜻한 삼시 세끼 꼬박 먹는 감방 생활이 아닌 당한만큼 그대로 갚아주는 형벌이 제격이라고. 그러나 책 속 그들의 집행이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너무나 버거웠다. 그리고 무거웠다.
법이 제대로만 실행 됐더라면, 법이 법다웠더라면...

​이들은 자기들의 집행으로 세상이 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수천만 명 중에 자기들로 인해 이 사회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자기들이 가진 분노를 인간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부로 표출하기만 하면 되었다. 사적인 복수는 있을 수 없다. 그랬다간 자신들 역시 집행될 것이기에......

​공정한 법 집행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집행은 극단적으로 몰고 갔음에도 왠지 공감이 되는 느낌이랄까. 이유야 어떻든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책 속에서만큼은 적폐들과의 전쟁으로 조금은 위로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이젠 기사 거리들이 쏟아져도 덤덤하다. 세상에 그렇게 놀라지도 않다. 이 책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읽었으면 바라지만 그들이 이런 책을 어디 읽기나 할까,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챙겨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겠지.

​문득 책에서도 거론했듯이 마누법전과 함무라비 법전이 생각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먼저 가네. 더 강력한 심판관을 기다리고 있겠네.'
후속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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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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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구보의 콤비가 캐미었던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장식할 <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가 출간되었다.

전편을 재밌게 봤던 터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마지막 작품이다. 이젠 이상과 구보의 캐미를 볼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동안 그들 콤비와 떠나면서 다양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한동안 이상과 구보, 둘의 만남이 뜸했던 차, 어느 날 이상이 구보를 찾아왔다. 구보는 이상의 모습이 어딘가 초췌해 보이고 평소 이상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였지만 간만의 사건 의뢰 때문이라 여기고 내심 모른척 한다.



인천의 작은 섬 교동도.

이곳에 자리한 슈하트 학교는 서양의 선진문화와 신식교육으로 학생들을 교화하여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시킨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이다. 기괴한 소문이 난무하고, 학생들을 체벌하기 위해 쓰인다는 일명 '거울방',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기이한 학교. 이곳에서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실종, 사라진다.



이상과 구보는 실종된 여학생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슈하트 학교로 향하던 중 기차에서 이상은 같은 목적지로 가는 배우 소유미와 그의 경호원 주안나를 만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상의 후배라며 나타난 한 남자. 그리고 벌어진 한 남자의 살해. 기차안을 전부 수색했지만 범인은 알 수 없고 거기다 이상의 후배라는 남자역시 사라진 상태.



마침내 이상과 구보는 섬에 도착하고 실종된 학생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교사들. 교사들은 여학생의 실종을 단순 가출로 여기고 소문 역시 뜬소문이라며 회피한다.

그러다 학생들을 가둬 체벌한다는 방이 있다는 걸 알아내고 상과 구보는 몰래 탐문을 시작하는데......



거울방, 참회를 위한 징벌방,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학교의 모순된 행태의 부조리, 그리고 악의적인 소녀들, 헛소문, 음흉한 방법으로 남에게 해를 가하고, 집단 생활의 분열, 서로에게 공격적인 모습들이 왠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실제로도 있을 것 같은 학교의 모습에 더 흉흉하게 느껴졌달까.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명분하에 엄한 교칙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섬뜩한 이야기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내달리게 만든다. 학교라는 명분뒤에 감춰진 엄청난 사건과 음모를 꾸미는 테러 조직과 맞서는 상과 구보. 이번에도 상과 구보의 승리를 맞볼 수 있을 것인가.



금홍이가 떠난 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정신착란까지 일으키는 이상을 보았을 때 내심 걱정이 먼저 앞섰다.

왜? 마지막이라는 것에 이상까지 합류 시키려는 걸까??

아니되지, 그럼 독자들이 가만 안 있을 텐데?? ㅎㅎㅎ

언제나 이상과 구보는 하나여야 한다. 언제나 흔들리는 이상을 잡아 주는 이는 구보였다. 그런 그들의 우정을 볼 때가 좋았다.

그래야 그들은 완성되는 것이다.



마지막이란 걸 알아서 일까.

책은 단숨에 읽어 갔고, 그만큼 스토리 또한 흥미로웠으며 단편들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장편이다 보니 흐름을 끊을 수 없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 그러니 결말이 궁금해 어찌 중간에 내려 놓겠는가. 아쉬운 만큼 더 빠져들었고 재밌게 읽었다.



예전보다야 많이 나아졌지만 학교 권력에 굴복하고 희생당하는 학생과 교사는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런 과정을 외부의 도움과 내부자의 조력과 연대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여실히,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슈하트의 학교가 더 씁쓸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마지막 시리즈지만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엔 이상과 구보의 모험은 계속될 거라 믿으며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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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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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 하면 일단, 나의 모든 활동 영역이 있는 곳, 마음과 몸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나만의 공간 등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곳을 여행하고 와도 '역시 집이 최고구나'라고 할 만큼 편안하게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집이다.​



나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의 제목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어서 다소 당황도 했다. 각 장마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풀어내고 있는데, 뭐랄까, 마을이 산들로 둘러싸여 온전한 태양을 받지 못하는 지역인 데다,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기도 하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장소인 작은 마을이다.

​이곳엔 주인공이 신비스럽게 생각하는 마르타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이 지역의 역사와 인물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독일 정착민에 대한 전후 이야기, 인물들의 꿈,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 등 많은 것을 엮어 보여준다.





다소 신비롭고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나이 든 여인이 있고, 술에 취하면 때리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병든 가족이 있고, 결국 아들조차 바닥으로 내몰리기까지. 꿈을 통해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고, 여성성의 비밀을 탐구하는 사람이 있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스럽지만 놓지 못한 채 삶을 지탱하고 있는 교사가 있고, 한때는 행복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삶을 사는 아이 없는 부부가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성녀의 이야기가 있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기록한 수도사가 있다. 뭐랄까, 이야기의 폭이 너무 넓다 보니 전체적이 분위기를 느끼고 따라집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에게 집은 방과 가구로 가득 찬 네 개의 벽을 가진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고 죽는 곳,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거나 절망에 빠지게 되는 공간이다.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장소로서의 집, 그들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집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꿈속에서 가능하다.]



소설은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자신을 꿈을 기록하고 분석하며 인터넷에 기록한 꿈과 비교한다. 꿈은 그녀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한다. 어떤 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죽은 유령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환상, 환영을 삶 그 자체로 여긴다.



광산 사고로 죽다 살아난 남자는 예언자가 되었다. 별점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하는 법을 배웠으며, 유명한 영적 주의자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세계의 종말을 예측한다.



["홍수도 없고, 불의 비도 없고, 오시비엥침도 없고, 혜성도 없다. 하느님이 누구든, 하느님이 버리고 떠난 세상은 이렇게 보일 것이다. 집은 버려지고. 모든 것이 우주 먼지로 덮이고, 탁한 공기와 고요함에 젖는다."]



사실 읽다 보면 여기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나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하는데 나의 이해의 폭이 좁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혹 여기 소설 속 사람들도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 마지막으로 꿈을 꾸는 장소를 집이라 했듯이 아마도 꿈이란 모티브로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책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았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에 나의 이해력이 따라가기엔 벅찼다고나 할까. 환상과 현실, 인물들의 꿈, 비현실적인 장소, 주민들의 역사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결합하여 보여지는 방대한 상상력이 낳은 작품 <낮의 집, 밤의 집>.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한 번으론 부족한 작품이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이란 걸 책을 덮으며 느꼈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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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타자기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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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겉으론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처럼 사는 서영. 하지만 서영은 시집에서는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살아간다. 수시로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창고에 갇히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친정이 보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딸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친정 식구들. 친정에서는 돈의 미끼로, 시집에서는 분풀이 대상으로 살아가는 서영. 아이들 때문에라도 죽지 못해 살아가지만 이젠 기력마저 없다.



청각장애가 있는 지하.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지하는 더욱더 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지하가 유일하게 도피할 수 있는 것은 백일몽을 꿀 때다. 그곳에선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고, 그래서 견디고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오히려 백일몽이 지하와 엄마를 살리는 세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리를 못 들어도, 선생님의 무시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용기 내여 한 고백이 조롱거리가 돼버렸어도, 소설 공모전에서 몇 번이나 떨어져도, 지하는 놓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단단해져 갔다. 그렇게 지하는 자신의 꿈인 작가의 길을 묵묵히 가면서 자기가 설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을 다져갔다.



엄마에게 냉혹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지하.

지하는 나약한 엄마는 죽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하는 삶을 쟁취하는 강한 엄마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살게 하고 싶었으리라.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으리라. 살리고 싶었으리라.

지하가 기특하면서도 불쌍했다. 안쓰러웠다. 짠-했다.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어찌나 실감 나게 다가오던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아닌 실제로 내 주변의 인물들처럼 느껴져서 재미를 고조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의 할머니, 아버지, 현실에도 아주 똑같은 부류들이 있다. 지하 엄마 역시. 소설 속의 소설은 또 어떻고(오히려 '조용한 세상'에 더 빨려 들어가더라는~).



내가 황희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환상, SF, 판타지가 섞여도 과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취약한 난데 작가님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흥미를 주고 빨려 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기존의 책들도 환상, 판타지가 곁들여 있는데도 아주 재밌게 읽었으니 말이다.



깊은 울림이 있는 <기린의 타자기>.

가정폭력의 희생자란 멍울을 가지고도 자기의 꿈을 위해 한 발 한 발 다져가는 어린 아이의 성장기로도 볼 수 있는 작품. 책 속 지하의 말들이 가슴에 콕콕 와 닿아서 더욱 아프게만 느껴졌지만 나역시 지하의 말들이 허투로 들리지 않아 가슴에 새겨 넣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읽으면 참 좋을 책일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지하, 우탁과 예지, 모두 모두의 앞날에 꽃길만 펼쳐지길~^^

지하는 이든을 만났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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