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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ㅣ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 여백이 많은 책은 ‘가벼운 책’이라며 마음을 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의외로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메말랐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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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라이언이지만, 가장 귀엽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어피치다. 핑크 빛과 귀여움을 담당하는 어피치, 그리고 서귤 작가의 글이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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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내가 너무 많이 사랑하는건, 말랑말랑 고양이 뱃살, 반지가 잘 빠지지 않는 엄마의 굵은 손마디, 흰털이 촘촘히 돋아난 아빠의 뒷목, 빨간 치마를 입은 사진 속의 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수족관 돌고래의 눈망울, 코끼리를 콧잔등, 그리고 너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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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로봇 청소기에 상냥한 사람, 인형 탈을 쓴 알바생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수줍게 줄을 서는 사람, 개미가 줄지어 지나가면 피해서 돌아가는 사람, 송이째 떨어진 능소화를 줍기 위해 땡볕에서 허리를 구부리는 사람,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면 반사적으로 웃어버리는 사람, 그렇게 작은 것에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 내가 얻고 싶은 사람, 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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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가기 바쁘고, 경쟁해야 하고, 잘 보여야 하고, 성취해야 하는 삶을 살면서 나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삶을 사는 누군가가 위로가 필요하다면 선뜻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숨을 쉴 수 있는 틈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위트와 따뜻함,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이 함께하는 이야기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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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1.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결국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은 밤. 스탠드 옆에 아무렇게너 올려둔 삐죽 삐죽한 풀이 나를 쳐다본다.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물을 주지 않아도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여 저 혼자 잘 자란다지. 의젓하지만 조금 애달파. 쓸쓸하고 씩씩한 이 작은 식물이 오늘 밤 나의 친구. 사람이었다면 너는 사랑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크는 아이였을까. 살아남는건 우리의 찬란한 재능. 마르지 말자. 바스러지지 말자. 이 긴 밤. 이 긴 인생. 너와 나의 조촐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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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4. 일터에 자기 몫의 책상이 있거든 서랍 하나를 비워두세요. 거기에 마음을 보관해야 해요. 일하면서 가슴에 마음 넣어두는 거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의 진심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