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희곡은 문학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극작가를 ‘playwriter’라고 표기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playwright’로 부르죠. 작가(writer)와 장인(wright)의 차이. 이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분명 서구에서도 극작가를 연극이라는 집을 짓는 일종의 숙련공으로 인식하지만, 한국에선 이 차이가 좀 더 극명하지 않을까 해요. 신춘문예에 희곡 부문이 있지만, 희곡집을 내는 출판사는 흔치 않잖아요. 근래에 조금 생기긴 했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 아닌, 동시대에 쓰인 희곡 작품이 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활자의 형태로 ‘독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공연의 형태로 ‘관객’을 만나는 작품이니까요. 문학성이 있는 희곡은 분명 존재하지만 희곡이 문학 그 자체로 살아남는 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요.”

<고재귀, 극작가의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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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이 하루에 글을 쓰는 시간은 세 시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 근처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쓸 게 없어도, 무조건 그 세 시간 동안에는 노트북을 켜고 그 앞에 앉아 있는다.

“강연을 하면, 아이들이 글을 쓰면서 언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냐고 자주 물어요. 그럴 때 저는 세 시간 동안 글 쓰고 난 뒤에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요. 그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책이 나오고, 잘 팔리고 그런 것보다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했네’라고 느껴질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오늘 쓴 글이 책까지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김혜정, 어린이 청소년문학 작가의 마음>에서

혼이 빠질 정도로 세찬 비를 맞으면서 고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박준, 시인의 마음>에서

“한국 사회에 살면서 느끼는 거부감, 불편함 같은 거 있잖아요. 불편하고 불쾌하고 그런 거요. 제가 가장 불편한 것은… 그게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든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서로를 괴롭히는 식의 한국적인 정서예요. 저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어느 사회에든 다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약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살아가기가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게 너무 싫고 막 화가 나기도 해요. 그래서 아마도 글을 쓸 때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인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개인의 이야기 안에 당연히 그 사람이 살았던 사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걸 잘 섞어서 쓰고 싶어요.”

<최은영, 소설가의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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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개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집에도 그림책 전집이 있었다. 전집 방문판매가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했거니와 한 권, 한 권 고심하여 책을 골라주기엔 부모님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을 터. 크고 단단한 책들은 집 짓는 데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게다가 전집은 내 한 몸 들어갈 집을 짓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림이 가장 예뻤던 『아기 사슴 밤비』는 누웠을 때 바로 보이는 천장에 두었다. 내 방을 가지는 것이 요원하기만 했던 그때, 안방 한가운데에 책으로 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일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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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는 걸 좋아해요. 만화책, 그림책 등등 여러 종류를 사죠. 그리고 장난감도 굉장히 좋아해서 피규어나 재미난 물건도 많이 사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 눈에는 쓸데없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저는 그게 아깝다기보다는 그런 것들에서 감성을 키우고,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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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니까 그냥 묵묵히 해야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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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깔깔 웃는’ 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나는 안다. 그건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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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인회 이벤트를 했어요. 그때 어떤 남자아이와 어머니가 같이 와서 『눈물바다』에 사인을 받았어요. 제가 『눈물바다』에 사인할 때마다 쓰는 멘트가 있거든요. ‘슬플 때는 시원하게 펑펑 울어봐’라고요. 이 책의 주제 같은 거죠. 근데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눈물바다』는 웃기려고 만든 책이거든요. 유쾌한 농담으로…. 그래서 왜 우시냐고, 울지 마시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눈물을 그치시고는 본인이 아이한테 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부모님들은 우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잖아요.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으니까 되도록 울지 말라고 하고 그 감정을 참게끔 하는데, 오히려 그걸 터뜨려라, 감정을 표현해라, 라고 써주니까 ‘내가 너무 아이의 감정을 막았구나. 우리 애가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셨대요. 그러면서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도 너무 감사했죠.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저도 생각지 못한 제 책의 다른 면을 알게 돼요. 그때 생각했죠. ‘아, 책을 그냥 세상에 내놓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구나. 독자들을 만나 피드백을 듣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그제야 진짜 책이 완성이 되는구나.’ 저는 웃기려고 만든 책인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의미들이 생겨나는 것이 무척 신기했어요.”

<서현, 그림책 작가의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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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행위는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초상화 그리기에 가깝다. 특히 당장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볼 때가 아니라 기억을 떠올릴 때 더욱 그렇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아무리 친숙한 얼굴이라도 구체적인 사실들이 머릿속에 스냅사진처럼 상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 사항들로 합성된 이미지처럼 나타난다. 그 이미지는 선이 두드러지지 않는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회화적으로 구현된다.

(중략)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깍지‘는 어쩌면 알 수 없는 비합리적 힘에 도취된 상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섬세하게 분별한 그 사람의 미적요소들이 완전하게 통합된, 그 사람의 초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스냅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포착할 것이다. 물론 초상화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초상화 그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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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한 사회의 고민이 보이기도 하고 무의식이 보이기도 한다. 작가 요 네스뵈와 인터뷰했을 때 노르웨이에 이런 범죄가 많으냐고 물었더니 그가 웃으며 답하기를, 살인사건 보도를 볼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강력 범죄가 거의 없다고, 그의 말이 범죄소설을 즐기는 심리의 일부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피해를 입은 범죄를 장르로 소비하기란 쉽지 않다. 범죄 피해 유가족이면서 스릴러 소설 작가가 된 제임스 엘로이 같은 경우도 있지만, 범죄물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의 심리란 대체로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읽는 것이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구경꾼‘으로서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심리가 여기 없는가 묻게 된다. 범죄물의 팬은 범죄를 소비하는가, 범죄의 해결을 소비하는가? 일상 미스터리 같은, 잔인함과 거리를 둔 듯 보이는 서브장르에서조차 ‘못된‘ 심리를 전시하는 일을 종종 본다. 사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판단하는 일, 타인을 의심하고 자신의 명석함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일의 속성이 그렇다. 타인을 이리저리 재 판단하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이 장르의 독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에 대한 온갖 정보가 작품 속에 나열되기 때문이다. 의심할 만한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생각들이.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나의 스릴러 입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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