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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평점 :
놓지 않는 사랑의 무게
윤서,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한겨레출판, 2025)
퍼즐을 맞추는 삶에서 조금 어긋나도
앞으로 나아가는 보폭으로 걷기
한겨레출판에서 윤서 작가의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가 출간되었다. 열세 살에 조현병을 진단받은 아들 ‘나무’의 엄마이자, 공무원인 저자가 나무와 함께 가족으로서 삶의 퍼즐을 맞춘 18년을 기록한 에세이다.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일부 글이 함께 수록된 이 책에서 저자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는 만성 정신질환과 함께한 세월을 고백한다.
코로나19가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했던 2021년, 2022년쯤 대학에서 운영하는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었다. 아주 푸르고 청아했던 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자취방의 부엌 창을 열면 파랗고 짙은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나는 그 풍경을 너무 좋아했다. 그때도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로 환한 나무들, 그 모습을 보면서 빨리 죽으려고 식칼을 꺼냈다. 그걸 들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다시 내려놓았다. 죽으려면 작은 칼로 빠르게 찔러야 하는데, 나는 김치를 써는 아주 큰 칼을 꺼낸 것이다. 칼을 들고 주저앉아 그 풍경을 오래 보았다. 아주 맑은 봄에 울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냄비를 잡고 막 내려치고 그랬나. 빨리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병원을 찾아보니 진료비와 약 값이 20만 원이었다. 한 달 생활비가 40만 원인데 어떻게 그걸 구하나. 이리 찾고 저리 찾다가 학교에 심리 상담 센터가 있다는 걸 듣고 바로 찾아갔다. 죽으려 했다고, 약을 먹으면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우선 얘기를 좀 들어보자고 했다. 왜 그러냐길래 이야기했다. 대화는 열 번을 넘게 이어졌고, 겨울이 되었고, 나는 바닥에 엎드린 목숨을 일으켜 지금도 살고 있다.
지금도 가끔 우울할 때가 있다. 제어가 되지 않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방법을 어렴풋이 아는 듯해서 스스로 감당하곤 한다. 이렇듯 정신질환은 완치될 수 없다. 다만 방법을 아는 자는 병과 함께 살 수 있다. 증세가 심할수록 방법을 찾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는 자그마치 18년간 방법을 찾아 노력한 부모와 아들 ‘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현병이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던 시절, 보호병동 생활부터 서른 살 청년이 된 ‘나무’의 현재까지, 질환·돌봄·자립의 키워드를 통해 정실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현실적인 고민과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현병 치료에는 완치도, 정답도 없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환자를 지지하고, 치료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면서, 환자의 일상이 유지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인삼각 경기를 뛰는 것이 조현병 치료다.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이 인생에서 만나는 생각보다 흔한 병이라고 한다. 그리고 치료 약을 제대로 복용하고, 몸에 맞는 약을 찾으면 일상생활도 할 수 있다. ‘나무’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작가는 3년 6개월을 썼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학교를 통학하며 인내의 시간을 견뎠다. ‘나무’의 가장 큰 증상은 ‘망상’이고 망상하며 불안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작가는 “이 청년의 불안을 알지 못한다. 세상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을 짐작조차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말해야 한다. 이런 증상으로 힘든 사람도 있다고, 이 불안에 사로잡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겉보기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이런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가 있다고. (중략) 이 불안 안에서도 이 사람은 생을 꾸리고 자신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작가의 세계를 짐작할 수도 없으나, 그가 말하는 세계가 어렴풋이 보인다. 읽을 때마다 내가 보는 그 세계가 조금 더 나아질 순 없을까, 생각하고 머뭇거리다가 조금 슬프기도 했다.
계속 생각하지만, 병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손이 필요하다. 개인이 혼자서 자신 혹은 타인의 병을 견디기란 정말 어렵다. 물론 누군가는 ‘왜 내 세금을 그런 곳에’ 쓰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테다. 다만 국가의 헌법을 조금이라도 보면 지원하는 이유가 있다. 국가란 국민을 도울 의무가 있다. 조각난 세계를 일으킬 수 있도록 양옆에서 손을 잡고 일으켜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환자의 세계에 부는 파도가 이 책으로 조금 더 잔잔해지기를, 긴 여정에 잠시 쉬어 원동력을 얻는 벤치가 되기를.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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