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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제법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만 가득 찬 '나만의 서재'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지런히 정렬해놓은 책을 눈으로 음미하고, 손을 뻗어 그 촉감을 즐기며, 조금 쎄한 느낌의 종이 냄새를 들이킬 때의 그 충만감이라니. 책으로 둘러 쌓여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끼기 위해서 애써 도서관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는 일이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때가 가장 멋진 법. 그 멋진 상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에게는 남모를 괴로움이 존재했으니,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이 바로 그 증거다. 장서가인 작가가 들려주는 장서의 괴로움은 그저 글로 접하는 것이 다인 독자가 긴장될 정도로 그 스케일이 엄청나다.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천장이 삐걱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폭삭 내려앉아(2층 바닥이 1층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버리거나 책이 쌓여져있는 한쪽으로 바닥이 기울어져버리는 대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나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책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나 앉을 곳이 없는, 심지어 잠자리마저 겨우 확보하는 상태이니 그 스케일이 얼마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역시 존재한다. 책에 따르면 작가를 포함한 몇몇 장서가들은 날을 잡아 책을 대량으로 헌책방에 넘기기도 하고, 책만 따로 보관하는 트렁크룸을 빌리기도 한다. 8장에서 소개된 네기시 데쓰야씨의 경우 아예 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그러니까 '책을 위한 집'을 건축가에게 의뢰해 직접 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책을 사는데 쓰이는 돈보다 책을 보관하는데 쓰이는 돈이 더 많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으로, 이쯤되면 이야기를 듣는 쪽에서 먼저 질려버릴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색하고 "이 사람들 이상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장서가들이 가지는 자부심과 만족감이 그것이다. 장서가들은 장서로 인해 겪는 괴로움과 그에 대한 노력과 더불어 장서가로서 가지는 자부심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전자서적을 통해 장서의 괴로움에서 말끔하게 벗어나는 방법이 있음에도 꿋꿋하게 "내 신념을 밀고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괴로워'하며 살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또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이나 "트렁크 룸을 빌렸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조만간 꽉 차버린다는 것을 유념하자"와 같은 각 장의 교훈에서는 끝끝내 장서를 포기하겠다는 말이 언급되지 않는다. 즉 장서의 괴로움이란 결국 깔끔한 해결따윈 존재하지 않는 문제며, 어느 정도의 범위를 지키면서 적당히 자제해야하는, 그로인해 스스로 만족하고 즐기는 일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장서로 인한 괴로움은 결국 즐거운 괴로움이란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장서가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평범한 독자인 내가 그 모습에 이끌려 그들을 질투하게까지 만드니 말 다 한거다.
한 사람의 애독가로서 깊게 공감하면서도, 그 스케일에 당황했던 장서의 괴로움. 그러나 끝에 남은 것은 묘한 질투심과 부러움, 동경, 그리고 즐거움이란 사실에 '어쩔 수 없지 뭐'하는 초탈한 마음이 든다. 장서가가 가지는 자세를 내가 가지게 되다니. 이걸로 나도 장서가로 입문 하는게 아닌지... 뭐, 뒤늦게 후회하면 뭐하겠는가. 이미 읽은 책 인 것을.
어쨌든 가장 중요한건 이 책이 굉장히 재밌다는 것이다. 책에 관련된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진진, 스펙타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겨우 깨달은 기분이다. 아니, 책 자체가 이토록 스펙타클 할 수 있다는걸 깨달은 걸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장서의 괴로움>이건만 평범한 애독가도 장서가로 입문시킬 정도의 마력을 가진 책. 책을 다 읽은 이후는 책임지지 않지만, 한 번 읽으면 푹 빠져들 것을 확신하니 다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가까운 날에 많은 사람들이 장서의 괴로움을 연애 얘기하듯 꺼내놓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