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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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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이라는 그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잊기가 어렵다.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 입으로 따라 읽기에도 동글동글한 느낌을 주는 그 이름은 처음 듣는 그 순간에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일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윤대녕 작가 이외에 그와 같은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어떤 증표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익숙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이름일 뿐, 나는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거기에 거창한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 따위 있을 리가 없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읽어봐야지'라는 생각만하다가 다른 책을 집어들기를 반복. 때문에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받았을 때는 "오오!"하며 감탄했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함께했던 이의 손짓하나 대사하나, 심지어 그 순간 그곳에 존재했던 공기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그 수많은 공간과 기억들이 그의 손을 빌어 완벽하게 되살아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공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다시는 될 수 없는 그때의 '나'. 분명 단 한 권의 책으로 윤대녕이라는 사람을 다 알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을 체험해보지 못한 나는, 경기장을 찾아본 적이 없는 나는, 자동차를 소유한 적이 없는 나는 그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라는 그의 말과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의 나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사랑스러움.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들어냈으며 그 덕분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또한 앞으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며 내 이야기를 되살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을 아는 것은 그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만큼 그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윤대녕이라는 사람은 꽤나 어려운 사람이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설 수 없을 만큼 빈틈없이 '나'로 메꾸어진 사람. 그 때문에 깐깐하고 까칠하며 고집 센 느낌을 주는 사람. 한없이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그 자신이 너무 단단해서 잘못 다가갔다가는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내가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사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의 작품에 쉽게 손 내밀지 못할 이유가 진짜로 생겨 버린 것도 같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마주하고 싶을 때 그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한 명의 '어른'을 만난 것 같은 느낌. 윤대녕 작가와의 첫 만남은 그와는 다른 나라는 존재로 또 한 명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름이 주는 느낌과 그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랐지만, 느낌과는 별개로 또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는 것이 리뷰를 쓰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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