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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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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추리소설을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당시 계속해서 연재되던 시리즈를 읽으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던 것이 추리소설과 관련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의 전부다. 그때는 꽤 열성적이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 부터 아예 손에서 놓아버렸다. 어떤 이유에서건(대개 절절한 이유가 있다) 살인이 일어나고, 예리한 눈을 가진 주인공이 진실을 알기 위해 애쓰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추리소설을 굉장히 가볍게(어떤 의미로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듣는다면 굉장히 분노할만한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박힌 인상이란 바뀌기 힘들다. 특히 그것이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른들은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그런 쓸데없는 것을 뭐 하러 읽어?”라고 했고, 추리소설을 읽고 있으면 “좀 더 수준 높은 걸 읽을 수 없어?”라고 눈치를 줬다. 게다가 “너도 그런거 읽어?”라고 하던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아이들 역시 어른들에 의해 학습된 상태다)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아무도 모르게 추리소설을 빌려 읽었지만, 나중에는 빌린다는 그 행위 자체도 부끄럽게 여기게 됐으니 말 다 한거다.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었던 만큼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처음 접한 것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든 책은 깔끔하지만 멋스러운 표지가 꽤 인상적일 뿐, 무지에서 오는 거리감에 쉽게 손이가지 않았다. 의무감 비슷한 것에 의해 겨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챈들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머리말을 발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한해서 결코 너그러워질 수 없는 애독가들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에 그 한 마디가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음이 편해지고 나니 책을 읽는 것은 한층 수월했다.


편지들에서 나타나는 레이먼드 챈들러는 굉장히 솔직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우아하게 분노를 표현할 줄 알고(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간결하지만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매 장마다 그만의 매력이 넘쳤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신랄한 때도 있지만, 대개 존경스러울 만큼 깊이 있는 말이 담겨있었다. 특히 1장 작품론에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작가의 스타일까지 훔칠 수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작가한테 그럴 스타일이 있다면 말이지만. 대개는 누군가의 결점만 훔칠 수 있을 뿐입니다.”(46p),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56p),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70p),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마치 내가, 나를 모방하는 이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니 그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겁니다.”(73p)

 

 등의 글쓰기에 대한 그의 말은 심도 있는 조언으로 느껴졌다. 그 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에 대한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대조해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고, 할리우드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에 괜히 내가 주눅 들었으며, 그의 소설을 읽기도 전에 주인공인 필립말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또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그리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추억에 끼어든다는 생각에 조금 꺼려지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지루할 때 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서늘한 편지(‘싸늘’이 아니다)를 읽는 것은 고인을 기리기에도, 그리고 조언이나 감동과 같은 무언가를 얻기에도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을 정도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서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것은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책을 덮는 순간 “도서관에 가볼까?”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그가 매력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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