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기자냐?
정재용 지음 / 큰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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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한국 진보진영의 과거를 일별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미래를 모색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종석이 노회찬 인터뷰집인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를 평가하며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진보진영`을 `언론`으로 바꾸면 <니가 기자냐?>에 대한 평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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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 -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개정판
이태 지음 / 두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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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남부군>을 읽는 내내 니체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말은 산속에서 외롭게 죽어간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남부군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근거로 활약했던 남한 빨치산이다. 그들은 남한 빨치산 중 가장 완강했던 무력집단이었고, 그래서 가장 처참하게 스러져갔으면서도 북한정권에 의해 버림받고 마는 비운의 병단이었다. 남부군의 일원이었던 저자가 그 비운의 병단이 겪었던 운명을 기록한 책이 <남부군>이다.


그래서 <남부군>은 한마디로 몰락에 관한 서사다. 이 작품은 한때 군경을 공포에 떨게 했던 남부군이 결국은 몰락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실 남부군의 몰락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남한은 시베리아나 만주와는 달리 근거지로 삼을 공간도, 보급수단도 없었다. 고작해야 반경 15의 지리산 속에 갇혀 군경에게 포위된 채로 싸우다 죽거나 항복해야만 했던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북한의 전문가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남한 빨치산의 최대 수명을 2년으로 예상했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들의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끝내 이들을 버렸다. 휴전회담 막바지에 유엔군 측이 남한 빨치산을 데려가라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이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처절한 패배와 죽음, 그리고 몰락이었다.


그래서 <남부군>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들의 비극적 운명을 동정하게 된다. 이를테면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란 어느 빨치산의 말이나 바로 어제까지 생사를 함께 했던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서글픈 마음을 가누기는 쉽지 않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도 있었을 이들이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분단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그저 희생자로만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이 고독한 죽음과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신념,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평가하지 않고, 그들을 불쌍한 희생자들로만 보는 것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다시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남부군이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었다면 그들이 건너가던 저기 저편은 어디였을까. 그건 결국 김일성 독재로 귀결된 북한 아니었을까?


그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을지

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빨치산 활동을 통해 한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후방으로 군단 규모의 군대를 이동하게 만듦으로써 북한을 도왔다. 그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다 해도 그들의 실천은 분명 북한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남부군의 비참한 운명에 느끼는 인간적 연민과는 별개로 나는 그들을 끝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꿈꿨던 이상은 대단히 숭고하고 고귀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그들의 투쟁이 성공했을 때 나타날 결과는 지독히도 끔찍한 것이었으리라고, 그 결과는 김일성 독재 체제가 남한에서도 구현되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결론은 전형적인 보수의 논리다. 보수주의자들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좋은 의도가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를 즐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 속에 분명 어떤 진실이 담겨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적어도 남부군에는 이 말이 적용된다.


그래서 <남부군>을 읽는 일은 두 가지 의미로 착잡하다. 첫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비극적 운명을 맞아야 했던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워서이고, 두 번째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꿈이 때론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에 부정하기 힘든 진실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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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매혹 엑스쿨투라 3
장 마리니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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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 하순. 남들은 괌으로 갈지 사이판으로 갈지를 고민하고 있을 이때, 여러 이유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남들 휴가 가는 것을 배 아파하며 부러워만 하고 있을 '방콕족'들을 위해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아, '휴가철에 꼭 읽어야 할 CEO 추천도서' 같은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라 가볍고 흥미진진한 책들이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휴가 대신 '방콕족을 위한 추천 도서'를 읽으며 여름철 더위를 잠깐 잊어보는 건 어떨까.

납량특집을 그리워하는 당신에게... <뱀파이어의 매혹>

가끔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하던 납량특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예전에는 여름철이면 <전설의 고향>이나 <사탄의 인형> 같은 납량특집 프로그램이 자주 방영됐는데 최근에는 여름에도 납량특집 프로그램을 보기 힘들어졌다.

<뱀파이어의 매혹>은 과거의 납량특집 프로그램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뱀파이어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는 전설과 문학, 영화 속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통해 뱀파이어가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한다.

"본래는 별다른 매력이나 놀라운 힘이라곤 없으며 무덤과 관의 불결하고 혐오스런 이미지만 연상시켰던 '되살아난 시체'"였던 뱀파이어가 오늘날에는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처럼 "선망과 찬양의 대상이기까지 한 완전한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같은 고전을 비롯해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와 소설을 나름의 비평까지 곁들여 소개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와 소설을 감상하다보면 긴 여름휴가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의 매혹>(장 마리니 씀, 김희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12년 4월, 279쪽, 1만6000원)

'서늘함'만큼은 확실한 뜻밖의 우리 고전... <가족기담>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전을 범하다>를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다. 고전소설은 뻔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멋지게 날려준 책이었다. <가족기담> 역시 <전을 범하다>처럼 고전소설을 새롭게 읽어낸 책이다. 다만 <가족기담>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전소설 속의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주관적인 평가지만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라는 부제는 <전을 범하다>보다 <가족기담>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적어도 서늘함만큼은 확실히 <가족기담>이 앞선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멀쩡한 여자를 죽여 '열녀'로 만들고, 아무 죄 없는 여성을 악인으로 만드는 가부장의 횡포를 보면 우리가 몰랐던 고전소설의 이면에 놀라게 된다.

특히 귀신이 돼서도 말 못할 비밀을 품은 장화홍련의 이야기를 읽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고전소설 밖에 있는 현실의 가족은 어떤지도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뱀파이어 이야기만큼이나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다. 

<가족기담>(유광수 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2년 7월, 260쪽, 1만4000원)

초심자도 술술 읽는 중국 신화 입문서... <김선자의 이야기 중국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은 줄줄 외울 수 있지만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잘 모르는 사람, 중국 신화를 잘 모르지만 이제부터라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초심자도 이해하기 쉽게 중국 신화를 설명하고 있어 입문서로 안성맞춤이다.

하늘과 땅을 떠받친 우주거인 반고, 흙으로 인간을 빚은 여신 여와, 치우와 황제의 탁록 전쟁 같은 유명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다. 천제의 명령을 받고 인간을 구했으나 천제에게 버림받고, 아내와 제자에게까지 배신당한 천신 예, 부족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 늠군, 인간을 위해 천제를 배신한 곤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지만 매력적이다.

그런가 하면 만주족 신화 <우처구우러번> 속에 등장하는 천신 아부카허허와 악신 예루리의 대전쟁은 박진감 넘치고, 하백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던 풍습을 끝낸 서문표의 이야기는 웬만한 사회과학 서적보다 훨씬 예리하게 사회의 단면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신화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선자의 이야기 중국 신화 上·下>(김선자 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1년 12월, 898쪽, 3만6000원)

잔혹한 연쇄살인마, 개과천선하다... <범죄의 해부학>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책이다. '범죄 심리학의 아인슈타인'라 불리는 저자는 이 책에서 평시의 범죄를 통해 인간의 악함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한다. 다루는 내용이 범죄, 그 중에서도 주로 살인이기 때문에 연쇄살인과 고문 등 잔혹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범죄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잔혹한 사건을 통해 인간 내면의 악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가와 히피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살인자 아인혼, 변호사 친구 덕분에 스물두 번이나 체포되고도 무사히 풀려나면서 마을의 전제군주로 자리 잡았던 켄 맥엘로이 등 인상적인 악인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절도 등의 범죄를 일삼다 연쇄살인을 저질렀으나 지금은 착하게 사는 아치볼드 맥캐퍼티처럼 악인도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충격적일 만큼 잔혹한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에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범죄의 해부학>(마이클 스톤 씀, 허형은 옮김, 다산초당 펴냄, 2010년 9월, 643쪽,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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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괴 - 기후 위기는 세계 경제와 우리 삶을 어떻게 파멸시키나?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 두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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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생태학은 본디 어원이 같다. 경제(economy)는 '집 혹은 서식지'를 뜻하는 'eco'와 '학문'을 의미하는 'nomy'의 합성어고, 생태학(ecology)은 역시 '집 혹은 서식지'를 뜻하는 'eco'와 '관리하는 담론'이란 뜻의 'logy'를 합친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제와 생태학의 관계는 반의어에 가깝다. 4대강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의 가치는 자주 부딪힌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승리하는 쪽은 보통 경제 성장이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는 당장의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 부양 같은 경제논리 앞에서 무력하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환경 보호를 외쳤지만, 여전히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런 점에서 폴 길딩의 <대붕괴>는 독특하다. 그린피스에서 활동한 환경운동가 폴 길딩은 윤리적 정당성에 호소하기보다는 환경 파괴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라

저자는 지구 생태계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구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너무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다.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지구 1.4개가 있어야 현재와 같은 경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위기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어업 분야다. 어업의 30%는 이미 허물어졌고, 지금도 계속 붕괴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 논문을 보면 이런 추세로 어업이 계속 성장할 경우 2048년에는 어획량이 90%나 줄어든다. 어업이 붕괴하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생선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8년의 상황 역시 생태계 위기가 인간에게도 위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2008년 당시 경제 성장에 따라 석유 수요는 늘어난 반면 채유 속도가 줄어들면서 유가가 상승했다. 기후 변화로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자 농산물 수확이 줄면서 식량 가격도 상승했다. 식량 가격 상승과 유가 상승은 각국의 정치 불안을 낳았다. 이는 결국 2008년의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이런 추세가 지속할 경우 발생할 파국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전 세계적인 기근으로 10억 이상의 인류가 굶어죽고, 중동 지역이나 다른 지역에서 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여러 차례의 전쟁이 벌어지고, 식량난과 정치 체제 붕괴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문제 때문에 중국, 인도, 파키스탄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며, 폭풍우가 밀어닥치면서 지표가 낮은 섬나라와 주민들이 물에 잠기거나 익사하고, 천재지변이 빈발하면서 전 세계 보험산업이 파산상태에 빠지고, 그 여파로 담보물건이 보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은행업도 함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이런 온갖 리스크가 주식 시세에 반영되면서 세계 증권시장이 붕괴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대붕괴> 191p

폴 길딩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 대신 "덜 일하고 부채를 줄이며 물질에 덜 의존하는 대신, 즐거움과 공동체 생활, 안전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이 답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에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쇼핑을 줄이고, 빈곤을 몰아내며,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 포함돼 있다. 특히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새로운 생활방식'의 핵심 과제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은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한다. 사람마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평등이 있기에 사람들이 노력할 동기가 생기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폴 길딩은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의 <평등이 답이다>를 인용하며 심각한 불평등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설명한다.

즉 상대적 불평등은 평균수명과 비만, 교도소 수감 비율, 10대 임신, 정신 건강, 공동체 내부의 신뢰 수준, 교육 성과, 여성의 지위 등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그 차이도 하찮은 정도가 아니다. 불평등의 정도가 심한 사회에서는 지표가 대부분 3배나 10배까지 나빴다.-<대붕괴> 398p

또한 불평등은 통념과는 달리 부자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공평성이 제고될 때 상위 25%의 소득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행복까지 증진된다. "최상위 소득 그룹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보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 중독에서 벗어난 후 인류의 과제는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폴 길딩의 주장이다.

조금 더 친절한 책이었다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한 책이라는 것이다. 환경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것은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과학계 안에서도 크게 논쟁이 되는 이슈이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을 전제로 서술했기 때문에 기후변화 논쟁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기후변화 회의론'(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믿지 않는 입장)을 소개하고 그런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보여줬다면 초보자들에게도 더 유익하고, 주장의 설득력도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붕괴>는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경제와 생태학이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느꼈다. 환경, 즉 인류의 집(eco)을 파괴하는 일은 결국 경제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경제 활동의 기반인 환경을 파괴하며 경제를 성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꼭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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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의 진실 - 30년 NHK 기자 천학범의 한국 현대사 증언 역사와 이슈 2
구영식.천학범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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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많은 사실 중에서 기록된 것만이 역사로 남는다는 의미다. 기록은 어떤 사건을 때로는 역사로, 때로는 비(非)역사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셈이다.

특히 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한국사회에서 역사적 기록의 의미는 각별하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따라 박정희 시대를 둘러싼 역사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기록은 잊힌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를 드러내거나 혹은 빛을 밝혀냄으로써 역사논쟁의 새 국면을 열어젖힐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담은 귀중한 기록이 하나 나왔다. 30여 년을 NHK 기자로 활동한 천학범의 증언을 담은 <한 조각의 진실>이 그것이다. 

"박정희도 18년 집권했는데 왜 우리가 못하냐"

천학범은 국내 언론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외신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정치권의 막후를 들여다본다. 이 책이 전하는 군사독재정권 시기의 분위기는 자못 살벌하다. 정권의 탄압을 가장 자주, 직접적으로 받았던 것은 김대중과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야당 정치인들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제일 탄압을 많이 받아 연금을 당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만 외신 기자들과 각국 대사들에게는 이들의 자택 출입이 허용됐다. 나는 두 사람과 아주 친한 편이었다. 김영삼은 중정(중앙정보부-기자주) 등에서 잡아간다고 협박하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라고 했다. 외신 기자가 집에 있으면 잡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한 조각의 진실> 48~49p 

여당 정치인 또한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3선 개헌을 추진했을 때의 일이다. 김종필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 30여 명이 3선 개헌에 반대했지만, 김종필은 강압에 못 이겨 3선 개헌 지지로 돌아선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김종필에게 가서 권총을 들이대고 3선 개헌 지지를 강요했다. 김종필이 자기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결국 찬성으로 돌아섰다. - <한 조각의 진실> 90p

거물급 정치인들이 잡혀가지 않기 위해 일개 외신기자의 힘을 빌리고, 정권의 뜻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는 두 에피소드는 박정희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전두환 정권의 권력욕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했을 무렵 천학범 기자가 보안사 정치과장과 만나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라"고 충고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박정희가 18년 통치했는데 왜 우리가 못하냐? 우리가 박정희보다 더 젊다. 육사 출신으로 지식도 있고 능력도 갖추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못하냐? 우리도 영구 집권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전두환 정권이 영구집권을 획책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게 박정희의 지시나 승인 하에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973년 발생한 'DJ 납치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일국의 거물급 정치인을 외국에서 납치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두고 천학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고, 이를 지시 내지는 승인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중앙정보부 판단기획국장을 지낸 김아무개씨의 증언이다. 

중정 판단기획국장을 지낸 김○○이 나에게 직접 '김대중 납치 사건 뒤에 박정희가 이후락과 나(김○○)를 비롯 중정 간부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면서 칭찬했다'고 얘기했다. - <한 조각의 진실> 74p

두 번째는 김홍래 당시 국무총리실 수석 정보비서관의 증언이다. 그는 천학범에게 김대중이 납치돼 배에 실리는 것을 봤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내가 직접 들은 바로는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오사카 안가에 가서 김대중이 납치돼 배에 실리는 것까지 봤다는 얘기까지만 들었다. - <한 조각의 진실> 78p

천학범은 이 두 가지 증언을 연결해 'DJ 납치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혹은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린다. 

"김○○은 박정희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박정희가 김대중 납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김홍래는 자신이 일본에 파견됐다고 증언했는데 김종필은 이를 부인하고 있으니 박정희가 파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가 김홍래를 파견할 때 김종필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모든 게 박정희의 지시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

좀 더 검증될 필요는 있으나 DJ 납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요긴하게 쓰일 만한 귀중한 증언이다. 

한국 현대사의 빈 곳을 채우는 '한 조각의 진실'

책 제목이 <한 조각의 진실>인 이유는 '저자 서문'에 나와 있다. 천학범의 구술을 정리한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천학범의 증언을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빈 곳을 채우는 '한 조각의 진실'"에 비유한다.

역사의 진실이 한 사람의 증언으로 다 채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학범 선생의 현대사 증언은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빈 곳을 채우는 '한 조각의 진실'일 수도 있겠다. 증언의 불완전성을 알지만, 어쩌면 남겨지지 않았을 그 한 조각의 진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참 다행스럽고도 기쁘다. - <한 조각의 진실> 6~7p

이 대목을 읽으며 이집트 신화의 한 자락을 떠올렸다. 이집트의 첫 번째 왕 오시리스는 형제인 세트에게 죽음을 당하고, 14개의 조각으로 찢겨 세상 곳곳으로 흩어진다. 오시리스의 부인 이시스는 흩어진 오시리스의 시신을 모아 마침내 오시리스를 지하세계의 신으로 부활시킨다.  

어쩌면 진실도 그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온전한 형태의 진실에 닿는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부서진 진실의 조각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 조각 하나하나는 너무나도 작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지만 그럼에도 그 조각들 없이는 결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이시스가 그랬듯이 그 작고도 불완전한 '한 조각의 진실'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천학범의 증언은, 작고 불완전하지만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할 수 있는 '한 조각의 진실'이다. 이 얇고 작은 책이 귀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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