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리더십 - 후진타오의 이노베이터, 개정판
김기수 지음 / 석탑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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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자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향후 10년 간 중국을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의 이름이다. 지난 1일 이후 돌연 종적을 감춰 차기 권력 이양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2주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진핑으로의 권력 승계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리더십>은 장차 중국을 이끌 시진핑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한국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현직 기자로 20년 가까이 취재활동을 해온 저자는 시진핑의 발자취를 쫓아 중국 전역을 답사하며 시진핑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 나선다.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탁월한 친화력

1장 '시진핑의 삶과 리더십'은 시진핑의 생애를 다룬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눈앞에 둔 시진핑이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낸 잘 나가던 관료였고, 시진핑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1962년 시중쉰이 '류즈단 사건'(마오쩌둥이 소설 <류즈단>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한 사건. 이 사건으로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숙청되었다)에 휘말려 실각하면서 시진핑의 고난도 시작됐다. 

시진핑은 9세 때 아버지의 실각으로 충격과 혼란,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고, 13세 때 문화대혁명이 시작돼 반동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뒤 집단 따돌림과 학대를 받아야 했으며, 16세 때부터 하방생활로 어려운 노동생활에 시달렸다. - <시진핑 리더십> 42p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진핑은 량자허촌의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3달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홍위병에게 붙잡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량자허촌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가 다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지만, 시진핑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농촌 여성보다 못했지만 밤낮없이 일을 했다. 처음에 노동점수는 6점으로 여자들보다 낮았지만 2년 후 건장한 노동자 노동점수인 10점을 받았다. 벼룩과 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농촌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 농민들을 이해하면서부터 농민들과 편안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 논의했다. (중략) 시진핑은 마을 사람들 신뢰를 얻었다. 지부 서기마저 무슨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와 상의했다. 시진핑 지식과 식견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량자허촌에 온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 <시진핑 리더십> 24p  

마침내 시진핑이 하방생활을 마치고 량자허를 떠날 때는 10여 명이 60리 길을 걸어 그를 배웅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다. 

시진핑의 끈기와 친화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복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입단 신청서를 낸다. 대대 지부 서기가 시진핑의 신청서를 원안역공사 공청단위원회 서기에게 전달하자 그는 버럭 화를 낸다.

"감히 부르주아 부패분자 시중쉰 아들의 입단 신청서를 전달해? 이런 눈치도 없는 놈."

그러나 시진핑은 기죽지 않고 계속 신청서를 쓴다. 자신을 "부르주아 부패분자 시중쉰 아들"이라고 비판한 서기를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절친한 친구가 됐고, 마침내 8번째 신청서를 써서 승인을 받아낸다. 말 그대로 7전8기다. 

시진핑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1978년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 아버지 시중쉰의 명성과 인맥이 크게 작용했지만, 농민들 틈에 섞여들고 반대파까지 자기편으로 만드는 친화력과 7전8기 끝에 목적을 달성하는 끈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경제는 '개방', 정치는 '보수'

시중쉰은 덩샤오핑에게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자고 처음 제안한 '개방파'이자 톈안문 사건 이후 후야오방의 편에 서서 정치개혁을 주장한 '개혁파'다. 시진핑 역시 "시중쉰의 개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시진핑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시진핑의 경험과 인식, 그리고 역할을 볼 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중국공산당 기본 방침으로 최고 통치자가 누구든 관계없이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 <시진핑 리더십> 229p

중국에 수년간 근무한 외교통상부 한 당국자도 "시진핑은 국내파라는 점에서 보면 상당한 민족주의자다,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시진핑의 행보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08헌장' 서명 파동, 2009년 중국공산당 원로의 정치개혁 촉구와 농민공 시위, 신장 위구르 폭동, 2010년 류사오보 노벨평화상 수상, 2011년 재스민 혁명 상륙 움직임 등 시진핑은 '화약고'를 떠안아 뇌관을 제거하고 적절히 관리했다. 2009년 신장 위구르 폭동에 대한 강력한 진압을 총괄 지휘해 마치 장쩌민의 톈안먼 사건에 대한 대응과 후진타오의 티베트 시위 대응과 맞먹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개혁개방에는 진보적이지만 정치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지도부의 성향과 자격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 <시진핑 리더십> 167p 

이 같은 그의 행보로 미루어볼 때,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여정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이런 것까지... 너무 딱딱하고 원론적인 책

평범한 독자로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4장 '시진핑 리더십의 과제'와 5장 '시진핑과 한반도'다. 시진핑이 어떤 정책을 펴고, 그에 맞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이 책의 핵심일 텐데 너무 딱딱하고 학술적이어서 잘 안 읽힌다.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취재도 열심히 했지만, 그것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시진핑 리더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중국의 7대 성장산업을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신에너지산업부터 첨단장비산업까지 7개의 산업을 10여 쪽에 걸쳐 각종 수치와 함께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마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다. 

그게 시진핑 리더십과 무슨 관계인지도 잘 이해가 안 된다. 7개의 성장산업을 설명하는 10여 쪽에서 시진핑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시진핑이 주도적으로 이들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이러이러한 산업을 7대 성장산업으로 선정, 육성하고 있다는 말 한 마디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의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부분도 아쉽다. 미국과 중국 양강(G2)에 맞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인도를 묶은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 '천하삼분지계'를 펴야 한다는 주장 등 참신하고 독특한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원칙을 지키는 외교가 중요하다'거나 '중국통 양성하고 인재풀 양성하라'는 제안은 너무 원론적이고 당연하다는 느낌을 준다. 

다행히 저자가 "시진핑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며, 그 결과물을 "이 책의 개정판을 통해 독자들께 선보일 것"이라니 개정판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장차 미국과 어깨를 견줄 중국의 위상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을 고려할 때, 시진핑 리더십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앞날과 직결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저자의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이 더욱 확장된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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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적 같은 일 - 바닷가 새 터를 만나고 사람의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송성영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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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최규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야기해보니까 잘 살았더라고요."

"최규석씨 집이 부자예요? 의외네요."

"아니, 집이 부자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잘 살았다'. 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바르게 살았다는 거죠."

 

예전에 어느 기자와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만화가 최규석 이야기가 나왔고, "최규석이 잘 살았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최규석씨 집이 부자예요?"란 질문을 던졌다. '잘 산다'는 말이 빚은 오해였다.

 

기자의 대답을 듣고, 별 말은 안 했지만 '잘 산다'는 말을 듣고 경제적 풍요만을 떠올린 자신이 속물 같아 부끄러웠다. 동시에 '잘살다'라는 동사가 어째서 경제적, 물질적인 풍요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건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사회가 모범으로 여기는 삶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고, 그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에게만 사회적 성공이라는 명찰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안분지족, 안빈낙도 같은 말은 고전시가에나 등장하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항상 더 많은 연봉과 더 큰 집, 남들이 부러워할 외제차와 명품을 좇는 것이 도시인들의 삶이다. 

 

그러나 물질적 욕망을 좇아 아등바등 살다가도 회의가 드는 순간이 온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일까. 행복하려고 돈을 벌려는 것인데, 돈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 그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은 그런 회의에 빠진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저자 송성영은 10여 년을 머문 정든 집을 떠나 전남 고흥에 새집을 짓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사소한 행복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먼저 욕심부터 버려라'

 

충남 공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저자는 집 뒤에 호남고속철도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선다. 몇 년간 전국을 떠돌며 새로운 터를 찾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아내와 자주 싸운다. 아내는 새 집에서 민박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는 숙박업자 노릇이 썩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의 요구대로 민박집을 차리기로 하지만, 아내의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아내는 새 집을 지은 김에 빚까지 내며 변기와 세면대를 새로 설치한다.

 

10여 년 전 공주에서 빈 시골집을 구했을 때 용감무쌍하게 들어가 헌 장판지를 끄집어내 냇물에 씻고 또 씻으며 재활용했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내부 공간 설비에 대한 눈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업자들과 흥정하며 물품과 설치비를 깎고 또 깎았습니다.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193p

 

욕심에 사로잡힌 것은 아내만이 아니다. 소박하게 농사지으며 살 땅을 찾아 앞으로 이웃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문화 사업을 벌일 건물을 어디에 짓고, 사업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따위만 이야기한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개발' '사업' 따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리산을 택했는데 '지금 내가 여기서 뭔 짓거리를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25p

 

심지어 고흥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뒤에도 마을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려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에 맞서 싸운다. 저자는 그저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지만,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짓고 싶은 아내의 욕심, 개발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의 욕심 등이 끊임없이 그의 바람을 방해한다.

 

그러나 자연은 욕심 부리지 않는 자에게 베푸는 법이다. 저자는 새로운 터전에서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배운다. 그는 봄 내내 생선을 잡으려 바다를 헤매지만 허탕만 친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정작 고기가 많이 나오는 곳은 집 앞 해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도록 헤맨 끝에 자신이 눈먼 장님이었음을 깨달은 저자는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흐릅니다.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고 생활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낮은 자세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바다는 그만큼 내줄 것입니다. 바다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큰 고기를 잡겠다고 욕심 부리자 아무것도 내주지 않던 바다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욕심부터 버려라.'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222p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풍족해지는 역설. 이것이 바로 자연이 베푸는 '기적 같은 일'이다.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은 사람들이 베푸는 인정이다. 불과 5000만 원으로 집을 지으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번듯한 목조주택을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집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고생 끝에 완성된 집을 가족들과 함께 바라보며 저자는 "이건 그냥 우리 가족들만의 집이 아닌겨"라고 말한다.

 

인건비를 적게 받으며 집짓기에 나서준 윤구씨, 목재를 대준 처가, 집 짓는 데 부족한 거금을 선뜻 내준 사람들, 10여 년 동안 아내에게 그림을 배운 수많은 아이들…. 한 달에 2만~3만 원씩 지불하며 아내에게 그림을 배운 수많은 아이들이 없었다면 집짓기는 불가능했습니다.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124p

 

사람들의 도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집 옆에 마을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책을 보내 한 달 만에 1000권이 넘는 책이 모인다. 일 주일도 안 돼 꽉 찬 책장을 보며 저자는 책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책이 들어오자마자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건네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들 책을 받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왔던 것입니다. (중략) 책을 보내기 위해 일일이 포장하고 택배비를 부담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도 헌책을 보내 미안하다며 받아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위해 많은 책을 선물하는 것이 처음이라며 이런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습니다.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234p

 

그 광경을 보며 저자는 자신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한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라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비워놨지만, 그 공간을 책으로 채워준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책을 기증함으로써 책장은 비웠지만, 그 이상의 뿌듯함으로 마음을 채운 사람들. 비우니까 채워지고, 욕심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역설은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욕심을 버릴 때 풍족해지는 '기적 같은 일'

 

저자 송성영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욕심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기적 같은 일'을 이야기한다. 욕심을 버리니 자연이 아낌없이 먹을 것을 내주고,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들이 베푸는 인정으로 새집과 작은 도서관을 완성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자연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물론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을 승리자로 우대하는 한국사회에서 혼자 마음을 비우는 일은 간단치 않다. 충남 공주에서 10여 년간 농사를 지었던 저자와 가족들도 때론 집을 더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별 필요도 없는 노트북을 순간의 편리 때문에 구입하기도 한다. 하물며 각박한 도시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이들에게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욕심이 자신을 짓누르고, 욕심 때문에 불행해지는 순간에 한번쯤 이 책을 꺼내들기 바란다. 한순간에 욕심을 버릴 수는 없어도 욕심의 실체를 응시하고,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확인한다면 욕심에 맞서 싸우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풍요로워지는 역설, 저자가 겪었던 것과 같은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기계가 아닌 풀과 흙과 인정에 둘러싸여야 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땅 위에서 한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듯이 이제 아들이 아버지를 뒤따라 걸어가는 것, 이것이 삶의 행진이다." -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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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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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 '완전히 타버리다'는 뜻의 그리스어 'holokauston'에서 나온 이 말은 본디 대참사를 일컫는 일반 명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는 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벌인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된다. 대참사를 일컫던 일반 명사를 고유 명사로 바꿀 만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유별나게 끔찍했다.

20세기를 상징하는 비극적 사건으로 꼽히는 만큼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예술 작품도 적지 않다. 우리에게 친숙한 <안네의 일기>를 비롯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등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 역시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이다.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쥐>는 "나치학살을 소재로 다룬 것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잘 된 서사문학"(<월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복도를 가득 메운 시체..."이제 내 차례군"

<쥐>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히틀러 치하의 유럽에서 살아난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들려주는 2차 대전 당시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블라덱의 경험을 만화로 그리는 아들 아트 슈피겔만의 이야기다. 두 이야기 중 핵심은 유대인 블라덱이 나치 치하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에 찬 생존담이다.

블라덱이 보고 듣고 경험한 아우슈비츠(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설치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는 한 마디로 '비일상성의 공간'이었다. 평온한 일상을 박탈당하고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 앞에는 끔찍한 현실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치 독일은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유대인에게 사이즈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셔츠와 신발을 지급한다. 블라덱의 친구 만델바움은 너무 큰 바지를 지급받았는데 허리띠로 쓸 끈도 없어 늘 한 손으로 바지를 잡고 있어야 했고, 신발 한 짝은 너무 작아 들고 다녀야 했다. 운 좋게 감독관의 눈에 든 블라덱은 만델바움을 위해 그의 몸에 맞는 신발과 허리띠를 얻어 오는데, 신발을 받은 그는 감격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럴 수가…블라덱. 이건 기적이야. 신께서 자네를 통해 신발을 보낸 거야."

만델바움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보이고, 블라덱 역시 함께 눈물을 흘린다. 몸에 맞는 신발과 허리띠 같은 평범한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은 비일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일한 동료는 블라덱에게 그곳의 참상을 털어놓는다.

"우리가 갈고리로 시체를 헤쳤어. 엄청난 시체더미였는데 제일 위에 힘 센 사람이 있고 노약자나 아이들은 아래에 깔려 있었지. 두개골이 으스러진 사람도 있었어…. 벽을 기어오르다 손가락은 부러지고 거기다 팔이 탈구되어서 몸길이만큼 늘어난 것도 있었지."

아우슈비츠를 떠나 다카우에 있는 강제 수용소로 옮긴 후에도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갔다.

"밤엔 화장실을 내려가야 했어. 그런데 복도 전체가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죽은 사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단다…. 머리를 밟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끔찍했던 게 살갗이 너무 미끈거려 넘어질 것 같았거든. 그것도 밤마다였지. 이제 내가 그 티푸스에 걸렸고, 나는 화장실엘 가야만 했어. 그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어. "이제 내 차례군.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 날 밟고 가겠지!"

인용한 몇 개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쥐>는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하고도 참담한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나치 독일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몸서리치게 된다. 

유럽, 학살의 공범

그러나 이 모든 장면보다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한 유대인은 그의 집을 차지한 폴란드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히틀러가 너희를 다 끝장낸 줄 알았는데. 꺼지라고, 유대인! 여긴 이제 우리 집이야."

갈 곳이 없던 그는 집 뒤의 헛간에서 밤을 샜는데, 밤중에 폴란드인들이 들어와서 그를 때리고 목을 매단다. 혹독한 나치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한 유대인의 허망한 최후였다. 

이 에피소드는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반유대주의의 실상을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때문에 나치 독일이 반유대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반유대주의는 나치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헝가리는 1920년 유대인을 '모세 신앙을 가진 헝가리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 구분하는 법령을 공포했고, 폴란드농민당은 "유대인은 절대로 동화될 수 없으며 폴란드와는 이질적인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심지어 "유대인은 스스로 다른 민족과 동화를 거부하는 별난 공동체로 행동해 왔다"는 내용을 헌법의 한 조항으로 삽입했다. 

"이렇게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을 통틀어 민주주의든 권위주의 체제든 상관없이, 근대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엘리트들 사이에는 반유대주의가 자연스럽게 퍼져갔으며, 결국 이런 배경을 이용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나치 정권이 특별히 비정상적인 정권이 아니었으며, 인종 청소라는 정책을 최초로 시도한 정권도 아니었다. -<암흑의 대륙> 93p"

뿐만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을 넘겨달라는 나치 독일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대인 학살에도 간접적으로 동참했다.

"몇몇 정부들, 특히 프랑스·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 등은 독일만큼이나 반유대주의에 열광했고 유대인을 '동쪽으로' 추방할 절호의 기회를 환영했다.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운동이 잠깐 집권했던 루마니아와 헝가리에서 발생한 끔찍한 유혈 사태는 독일인 당사자들에게조차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리스나 네덜란드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들조차 독일 당국과의 다양한 협조를 통해 수많은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냈다. -<암흑의 대륙> 240p~241p"

이처럼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는데 협조했던 유럽 국가들이 유대인의 귀환을 기꺼워했을 리 없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유대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되찾으려 하면서 오히려 반유대주의가 강화됐고, 그 결과가 앞서 소개한 에피소드였다. 

히틀러와 그 일당은 악마였고, 유대인 학살은 몇몇 악마들의 소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이 에피소드는 홀로코스트에서 유럽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블라덱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이 겪었던 비극은 1차적으로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책임이지만, 2차적으로는 유대인 학살과 차별을 묵인·동조했던 유럽 국가들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 역시 참혹했던 학살의 공범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치 독일은 사악했다고,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잔혹했던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히틀러나 나치 독일의 악마성에만 돌리는 것은 학살에 동조한 유럽 국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홀로코스트가 지금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쓰이지만 본디 대참사를 일컫는 일반 명사였듯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이들 역시 나치 독일이라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유럽 국가라는 일반 명사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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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이원보 지음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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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곧 노동의 역사였다. 인간은 대지에 씨 뿌리는 노동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났다…" 


거창하지만, 원래는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첫 문장을 쓰고 보니 다음 문장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노동과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서술할 차례지만, 그럴 역량이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을 읽었다. 노동 문제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이 책을 읽은 지금도 그런 역량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면서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뚜렷한 확신이다. 

정치파업? 그래, 정치파업!

"국가경제를 볼모로 한 파업"에서 "정규직의 집단이기주의"까지, 노동운동을 향한 다양한 비판 가운데는 "명분 없는 정치파업"이라는 것도 있다. 순수하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띈 불순한 파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노동운동 탄압이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이었으며, 노동운동의 정치성이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임금노동자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라는 정치 상황은 이들이 겪었던 일상적 노동탄압에 민족 차별까지 더해 한국의 노동운동이 민족해방운동과 결합하게 만들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를 통치한 미군정 역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노동자 자주관리를 불법화하고, 전평에 대항하기 위해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을 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대한노총은 이승만 정권에서도 명맥을 이어가 어용노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한노총은 이승만 개인의 권력유지 및 연장을 위해 '개헌반대궐기대회'(1950.2.19.)를 개최하는가 하면 1955년 12월에는 사사오입 개헌에 따른 이승만의 대통령 출마 지지를 위해 우마차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유당의 기간단체가 되기도 하죠.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149p

4.19 혁명 이후의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대한노총계와 개혁적인 노동계 인사가 함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련)을 만들기도 했으나 박정희 정권은 이를 해산시키고, 자신들이 지명한 간부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만듦으로써 노동운동의 혁신은 좌절됐다. 그 외에도 박정희 정권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정부의 개입은 노동자들의 체포, 연행, 구속, 시위 저지, 긴급조정권 발동, 노동쟁의 조정에의 비공식적인 개입 등 다양했습니다. 국가권력은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였지만 노동쟁의나 시위에 대해서는 극히 엄격했죠.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198p~199p

물론 이런 식의 통제는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정권은 임금인상 가이드 라인을 설정하여 임금인상을 억제했고, 중앙과 지방에 '노동대책회의'를 설치 운영하여 노동자 저항을 봉쇄했습니다. 이와 함께 활동가들을 현장에서 분리해내는 방법으로 '블랙리스트'가 활용됐죠. 블랙리스트는 1978년에 나온 것인데 거기에 더해 전두환 군사정권은 1980년 5‧17 이후 1천여 명의 해고 노동자 명단을 각 사업장과 노동부, 정보기관에 두고 취업을 차단했어요.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272p~273p

이처럼 한국 노동운동사는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해 왔으며,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어떻게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봐도 정치는 본디 한정된 재화를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행위이며, 노동운동의 주요과제 역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몫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파업은 잘못된 것" 운운하는 말들이야말로 노동운동을 억압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대단히 정치적이고 기만적인 수사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문제는 정치파업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한정된 재화가 온전히 자본의 몫으로 돌아가고, 분배 과정에서 노동이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정치가 한정된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데 실패해 자본의 독점을 초래한 점, 한국 정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정착된 점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노동 없는 민주주의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화됐다. 그러나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은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민주노조를 향한 열망을 모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설립하고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맞선 총파업을 하는 등 부분적 성과가 있었지만, 소위 민주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은 IMF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켰다.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의한 노동조합의 양보, 즉 노동의 유연화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어요.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합법화 외에는 합의된 사회개혁을 실천해 내지 못했죠. 더욱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의 희생은 막대했습니다. 이에 노동조합은 김대중 정권을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격렬히 대항하였고, 김대중 정권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가차 없이 노동자들을 억압했습니다. 그 결과로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 훨씬 많은 구속‧수배‧해고 노동자가 생겨났어요.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 329p~330p 

김대중 정권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역시 억압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크레인에서 300일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노무현 정권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중에서

그래서 이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착잡했다. 민주정부에서 왜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잘리고, 구속되고,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귀결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문 가운데 하나인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를 진정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가. 그런 한계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여러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장 정치적인 죽음'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노동자는 비국민?

이 책에 담긴 노동운동의 역사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2004년 즈음에서 멈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여전히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의 의회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많은 기대와 가능성을 낳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좋다고 보기 어렵다. 노동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벌어지는 정리해고는 더욱 일상화됐고,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의 상징이 된 쌍용자동차에서는 3년 동안 22명의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떠났지만, 정치권은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총선 정국에서 발생한 22번째 희생자 고 이윤형 씨의 죽음, 자본과 이명박 정부의 공모 속에서 발생한 이 "가장 정치적인 죽음"은 선거 의제가 되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1일 저녁, 평택에서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텐트 4차 집중 포위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고, 트위터에는 그에 대한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3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연행됐다는 트윗, 쏟아지는 비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트윗. 그 중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jomosamo)의 트윗이 눈에 띈다. 

정치권에서 선거 전후 쌍차 노동자 죽음이나 해고 비정규직 문제가 의제화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봅니다 2008촛불 때나 최근까지 시민의 이름으로 열린 광장에 적극 참여했던 정치인들은 왜 쌍차 현장엔 잘 오지 않는 걸까. 노동자는 비국민인가 하는…

그의 짧은 글을 읽으며 아픈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아직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정치적인 노동운동이다. 노동유연성이라는 미명 하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와 억압적 노동정책에 맞서는 운동, 자본의 독점을 깨고 노동이 온당한 몫을 되찾는 운동.

"가장 정치적인 죽음"을 막기 위한 '가장 정치적인 노동운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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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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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언젠가 이런 평범한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다.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문학작품을 읽은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서적의 저자도 작가일 수 있지만, 역시 작가라는 호칭에는 소설가나 시인이 어울리는 것 같아 잠깐 고민했다. 고민 끝에 "좋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는 작가"로 김영하와 박민규, 박현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김영하 작품을 가장 오랫동안, 많이 읽어왔다. 소설은 물론이고 산문집 <포스트잇>, 영화 에세이 <굴비낚시>, 미니홈피의 글을 묶은 <랄랄라 하우스>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의 글을 읽었다. 

사실 김영하의 글이 늘 좋지는 않았다. 특히 <퀴즈쇼>는 무척 실망스러워서 그의 책을 굳이 읽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도 결국 그의 초기 단편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집었다. 김영하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글이 늘 만족스러운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그의 글을 읽는 걸까. 책장을 넘기며 새삼스레 그 이유를 생각했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빛의 제국>이 보여준 냉소... "이념 따윈 아무것도 아냐"

김영하 작품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내 주변에서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 점 때문에 김영하를 꺼렸다. 김영하의 냉소주의가 잘 드러난 작품이 <빛의 제국>이다.

<빛의 제국>은 남파간첩 김기영이 갑작스레 평양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기영을 비롯한 남파 간첩들은 이미 남한에 너무 잘 적응해 지금의 삶을 유지하려 발버둥 친다. 기영은 "제3세계 인민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뫼르소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극우파 게이 미시마 유키오의 미문에 밑줄을 긋는 사람"이 되어 있다. 130연락소에서 함께 있었던 이필은 심지어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

"혹시 날 매수할 생각이야? 그럴 거라면 난 생각 있어. 돈, 그래 돈에라면 씨팔, 나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어. 진심이야."
                                                              
그런가 하면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기영의 아내 마리와 대학후배 소지현 역시 모두 과거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간다. 마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만약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그녀는 너무 빨리 떠오른 결론에 조금 놀랐다. 학생운동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야." - <빛의 제국> 172p

이처럼 <빛의 제국>에서 주인공 기영을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이념 - 이념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 에 헌신했던 과거를 부정하거나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빛의 제국>을 읽는 내내 누군가 귀에 대고 "현실 앞에서 이념 따윈 아무 것도 아냐"라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빛의 제국>이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486세대도 상당수가 나이를 먹으며 현실과 타협하고 기득권이 됐다. 진보적인 학부모도 자기 자식에게는 명문대를 가라고 하는 것처럼 현실 앞에서 이념이 자주 무너져 내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김영하의 냉소주의는 그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냉소주의에 묘하게 끌리는 것은 그것이 진실의 조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냉소 뒤에 숨은 나약함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사진관 살인사건'이다. 6년 전 처음 접한 김영하의 작품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진관 살인사건' 역시 김영하의 작품답게 냉소적이다. '사진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주인공은 형사로서 세상의 수많은 더러운 사건을 접하며 냉소주의에 빠져든다.

"이곳은 세상의 밑바닥이다. 쓰레기 하치장이다. 이곳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쓰레기로 변한다. 나는 그 쓰레기들을 치우며 산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모든 게 쓰레기로 보인다. 아름다운 사랑? 그런 건 없다. 정액으로 칠갑한 치정 사건이거나 그도 아니면 여고생의 일기장에나 들어 있을 치기 어린 사랑이다."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17p

'흡혈귀'에 등장하는 한 시인 역시 냉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생을 철저히 부정한다. 흡혈귀로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을 그에게 삶이란 "원심 분리돼야 마땅할 불순물"에 불과하다. 그는 "인생을 흉내 내는 영화는 인생보다 더 지겹다"며 괴이한 컬트영화를 고집하고, "당신의 시는 왜 그리 죽음을 찬미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따스한 체온을 갈구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한다. 흡혈귀 시인은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읊조린다. 

형사는 지금은 강간, 살인 사건의 조서를 쓰고 있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와서는 사치스러운 생각이라 느끼면서도 그는 여전히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래서 그들의 냉소는 생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 차갑고 냉혹한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한 것이며, 김영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냉소 뒤에는 연약함이 숨겨져 있다. 

냉소주의와 나약함, 두 개의 축 

오랫동안 김영하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냉소주의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보면서 새삼스레 그 뒤에 숨은 나약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김영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왜 계속 읽고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냉소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약한, 이중적인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냉소적으로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나는 내 모습을 봤다. 물론 김영하의 작품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 어딘가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냉소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처럼 허세로 나타나기도 하고, <퀴즈쇼>처럼 적잖은 실망을 안길 때도 있지만 그의 작품을 계속 읽은 것이다.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 앞에 냉소적인 척하면서도 사실은 나약한 마음 때문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숨기려 더욱 냉소적인 척 하는 모습. 좋아하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그래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는 작가"의 목록에서 김영하란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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