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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있는 용기 - 출간 10주년 증보판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이은정 옮김 / 한문화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에서 겪게 되는 고통의 시간 한 가운데를 살았던 2000년 즈음.
그때 근무했던 학교도 그 지역에서는 가장 힘들다고 (실업고인 농림고를 제치고)손꼽혔던 J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용쓰며 악쓰며 마무리 짓던 종업식 날(로 기억됨).
수도권에서 중간에 전학 와 우리반이 되어 인연 맺은 은철, 순하고 조용했던 은철이가 수줍은 미소 지으며 건네준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와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하늘이 또 다른 하늘에게....힘내세요 처리...란 글과 함께)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치는 드센 녀석들과는 달리 담임을 조용히 격려해주었던 은철이의 마음을 그렇게 받고도 쉽게 그 책을 보지 못했다. 취미가 독서이고 특기가 독서라고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지만 왜 그랬는지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중대한 삶의 기로에 선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 같았다. 책장 한 부분을 차지하고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순했던 은철이의 눈빛이 생각났고 마음 한 켠에선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쌓였지만...쉽게 이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 이듬해 고향과 다름없는 작은 소도시를 떠나 낯선 곳에서 두려움 속에서 힘들게 적응하며 낑낑대며 살다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
그제서야 용쓰고 악썼던 나를 던졌다.
- 당신께서 해주십시요, 저는 이제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봤다.
사방이 닫혀졌다고, 출구라고는 작은 창 하나 없는 꽉 막힌 감옥이라 생각했던 곳에 열린 문이 보였고, 거기서 빛이 보였다. 그동안 닫힌(막힌) 문만 줄기차게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했던 거였다.
그 빛의 한 자락으로 만난 게 바로 [가르칠 수 있는 용기]였다.
6~7년 만에 은철이의 마음을 펼쳤다. 이 책 표지(초판)가 희한하게도 어둠 속에 조금 열린 문, 문 틈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 사진인데, 이 책을 보고(표지) 이 느낌이 들었는지 이런 느낌을 가졌을 때 이 책을 보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엄청났다.
환희랄까? 기쁨, 전율로 가슴 뛰는 무한한 에너지가 내 안에 가득찬 느낌을 받았었다.
그 때부터 파커 J. 파머 선생님을 검색해서 그 분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후 '가르칠 수 있는 용기' retreat이 우리 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을(<마음비추기 피정>의 이름으로)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힘들 때마다 이 책을 한번씩 펼쳤다.
그때마다....온전한 나를 만나며 통합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1년에 걸쳐 진행되는 피정에 참가하고 싶었으면서도 자꾸만 참가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들을 내가 대며 피정 참가를 미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몇 년을 계속 피정 소식만 보면서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이 모양과 색깔을 바꾸어 나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젠 어느 정도 털어내어서 두려움 쯤이야...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자만이었구나....
산티아고 길을 짧게 걸으며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침묵하며 만난 나와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내 안의 두려움을 다시 직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머리로 따지는 삶은 살지 않으리라 선언하고 도움 청하며(신께) 가장 먼저 가슴이 원하는 것을 했다.
'마음 비추기 피정' 신청서 작성.
고요히 나에게 침잠하여 가진 은혜로운 시간에 대한 감사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함께한 분들의 삶의 한 자락을 공유할 수 있었던 선물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피정에 참석하는 동안, 피정 참석 이전부터 떠올랐던 생각 - 중단된 책 읽기 영성모임을 다시 시작할 때가 아닌가? -에 대한 답을 얻었고 그 시작의 서막을 [가르칠 수 있는 용기]로 열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다시 또 읽게 된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15년 전에 나왔던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적인 면에서 오늘날의 교육현실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나다.
교육 부분 뿐만이 아니라 사회현실을 개혁하고자(파머 선생님은 개혁이라는 단어를 쓰시지는 않았지만. 바꾼다는 말이 좀 더 가깝다) 하는 이들에게도 그 지침과 방향을 조용히 안내해준다.
또한 단순히 학교현장에만 적용하는 교사를 위한 책만이 아니다.(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제한)
분열성을 너머 온전한 삶, 영혼과 교감하는 삶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책에 담긴 정수는 퇴색하거나 손색될 수 없는 영혼의 안내서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을 만날 즈음 삶에서 Being 과 Doing에 대한 고민을 하며 답을 구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학생에게 우주는 딱 맞는 스승을 보내주셨다.(학생이 준비가 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파머 선생님의 자명한 글, 교사(개인)의 정체성과 성실성에 대한 파머선생님의 통찰에 무릎을 치며, 환희에 젖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지금도 내 삶에서 부단히 성찰하는 부분.
무엇을 할 것인가 Doing 가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존재 Being에 그 답이 있음을 기억하며 신의 섭리 안에 만나는 선한 인연들께 두 손 모아 깊은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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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가르침은 하나의테크닉으로 격하되지 않는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으로부터 나온다.
- 가르침의 용기는, 마음이 수용 한도보다 더 수용하도록 요구당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을 열어놓는 용기이다. 그리하여 선생, 학생, 학과는 배움과 삶이 요구하는 공동체의 옷감으로 짜여지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힘이 혁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몇 가지 관련사항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하기 re-membering는 우리 자신을 재정비하여 정체성과 성실성을 회복하고 우리 삶의 온전성을 다시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정체성을 망각한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 자신을 절연 dis-member시키고 우리의 정치, 우리의 일, 우리의 마음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학자들은 때때로 이탈 dismemberment의 고통을 겪는다. 겉으로 볼 때 이것은 학자 사회에 들어왔으나 동료나 학생들과 애정 없는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학자들의 고통을 말한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보면, 이 고통은 사회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진실, 우리를 교직으로 인도한 정열, 모든 훌륭한 일의 원천인 마음으로부터 절연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다.
아! 절연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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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 습관으로 책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적기도(수첩이나 책 속표지에) 하고 밑줄을 긋기도 하는데, 이 책은 거의 모든 글에 밑 줄 쫙~~~그어져 있다. 언제 다시 이 책을 또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이번에 읽은 건 4번째다) 만남을 허락해주셨고 또 허락해주실 신께 미리 감사드리며, 인샬라~~~~
뱀 발 : 고마운 은철이를 만나고 싶어 SNS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고마운 인철이를 다시 만날 수있길 念하며~
http://blog.naver.com/innerteacher 마음비추기 피정 안내
- 훌륭한 가르침은 하나의테크닉으로 격하되지 않는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으로부터 나온다. - 가르침의 용기는, 마음이 수용 한도보다 더 수용하도록 요구당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을 열어놓는 용기이다. 그리하여 선생, 학생, 학과는 배움과 삶이 요구하는 공동체의 옷감으로 짜여지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힘이 혁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몇 가지 관련사항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하기 re-membering는 우리 자신을 재정비하여 정체성과 성실성을 회복하고 우리 삶의 온전성을 다시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정체성을 망각한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 자신을 절연 dis-member시키고 우리의 정치, 우리의 일, 우리의 마음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학자들은 때때로 이탈 dismemberment의 고통을 겪는다. 겉으로 볼 때 이것은 학자 사회에 들어왔으나 동료나 학생들과 애정 없는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학자들의 고통을 말한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보면, 이 고통은 사회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진실, 우리를 교직으로 인도한 정열, 모든 훌륭한 일의 원천인 마음으로부터 절연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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