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강용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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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난해한 사상을 ‘삶의 기술’이라는 언어로 다시 풀어내,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마흔이라는 시기에 꼭 필요한 통찰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젊을 때는 이상과 가능성으로 버티던 삶이 마흔을 지나며 현실의 한계와 상실, 반복되는 일상과 책임감의 무게로 다가올 때, 쇼펜하우어의 냉정한 비관주의는 의외로 묵직한 위로가 됩니다. 이 책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단편적 문장을 넘어서, 그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그 인식이 어떻게 더 성숙한 삶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이 쇼펜하우어를 단순한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환상을 걷어내고 삶을 직시하도록 돕는 현실주의자”로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젊을 때는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이 희망처럼 들리지만, 마흔 즈음에는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의 바탕에 언제나 결핍과 욕망이 있으며,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에도 곧 다른 결핍이 뒤따른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사상을 빌려,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성취와 인정, 소유를 좇다가도 채워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욕망할지, 어느 선에서 만족할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깊게 남았습니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핵심 개념인 ‘의지’에 마흔의 삶을 포개어 해석합니다.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세계를 움직이는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힘이자 고통의 원천입니다. 이 책은 이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멈추지 못하는 비교와 경쟁, 끝없는 자기증명 욕구”로 보여줍니다. 마흔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진짜 힘들어하는 부분은, 외부 환경이라기보다 멈추지 않는 내면의 의지, 즉 ‘더 잘돼야 한다’는 집착이라는 점을 짚어 줍니다. 이때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길은 의지를 완전히 끊어내는 극단이 아니라, 의지의 흐름을 낮추고, 예술·사색·관조를 통해 잠시 의지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책은 독자가 현실을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내적 거리를 연습하게 합니다.





또한 이 책은 인간관계와 타인에 대한 기대를 다루는 쇼펜하우어의 냉혹한 통찰을 마흔의 시선에서 재해석합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깊이 실망하며 상처받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기심과 한계를 직시하라고 말하며, 타인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대신 “거리 두기와 단호한 경계”를 통해 자신을 보호할 것을 권합니다. 이 책은 이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 마흔 이후의 인간관계는 불필요한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는 건강한 거리와 소수의 깊은 관계를 선택하는 시기라고 설명합니다. 타인에게서 모든 위로와 의미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를 돌보고 내면을 단단히 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조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일과 성공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명성과 부, 지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니며, 오히려 남의 시선과 비교에 우리를 더 깊게 묶어 둔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사상을 바탕으로, 마흔 이후의 커리어는 “이기는 싸움”보다 “지지 않는 삶”이 중요해지는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젊은 날처럼 무한 경쟁의 출발선에 서 있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흐르듯 살 수도 없는, 애매하고 복잡한 시점에서 ‘적당한 포기’와 ‘현명한 만족’을 배우는 것이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쇼펜하우어식 비관은 결국 ‘다 이룰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가치가 없다’는 냉소가 아니라, 욕망을 줄여 얻는 마음의 평온과 자유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총평하자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적 이론을 해설하는 책이기보다, 삶의 현실 앞에서 상처받고 지친 사람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의 평온을 찾자”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안내서였습니다. 쇼펜하우어 특유의 비관을 빌리되, 거기서 무력감이 아니라 현실을 견딜 힘과 작은 자유를 길어 올리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마흔 전후의 독자에게 특히 깊이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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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와 M&A 트렌드 2026 - 변곡점 위에 선 거인의 다음 발걸음
조세훈 외 지음 / 지음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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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사모펀드와 M&A 트렌드 2026》은 “변곡점 위에 선 거인의 다음 발걸음”이라는 부제처럼, 규제와 여론,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는 시점에서 사모펀드와 M&A 시장이 어디로 향할지 짚어보는 책입니다. 이전 시리즈가 주로 ‘거대 자본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딜과 섹터를 보여줬다면, 이번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사모펀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읽는 내내, 한때 자유롭게 커지기만 하던 사모펀드 산업이 규제·사회적 감시·산업 구조 변화라는 세 갈래 압력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을 차분히 목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의 초반부는 2025년 한 해를 정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저자들은 최근 몇 년을 “사모펀드에 지나친 자유를 준 시대의 끝자락”으로 규정합니다. 저금리·풍부한 유동성·규제 완화 덕분에 사모펀드 규모가 급팽창하고 M&A 시장이 활황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부실 운용·이해상충·노동·소비자 측면의 사회적 갈등이 쌓였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상법 개정, 차입매수(LBO) 규제 강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자기주식 활용 제한 등 제도 변화가 잇달아 예고·추진되면서, 사모펀드의 전통적인 레버리지·지배구조 개입 방식이 더 이상 예전처럼 작동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MBK파트너스·홈플러스 등 굵직한 사례를 통해 “먹튀 논란”과 그에 따른 여론 악화, 정책 변화의 인과관계를 짚어 주는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사모펀드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들은 사모펀드가 “단순 재무적 투자자(FI)”를 넘어, 산업 재편과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규제가 강화되고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단기 차익을 노리는 거래는 설 자리가 줄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는 ‘진짜 액티비스트’만 살아남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기술·인재·시장 접근 전략을 함께 제시하는 파트너로 변신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펀드는 LP와 사회 모두에게 신뢰를 잃을 것이라는 경고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중반부의 ‘국내외 투자 트렌드’ 파트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대규모 블라인드를 만든 크레딧 펀드, 돈 쏠 일만 남았다”는 장에서 저자들은 전통 바이아웃 펀드 외에 크레딧·세컨더리 펀드의 부상을 자세히 다룹니다. 경기 불확실성과 고금리 환경 속에서, 지분 인수보다 회수 기간이 짧고 현금 흐름이 안정적인 크레딧·세컨더리 딜에 LP들이 눈을 돌리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합니다. 기존 펀드의 LP 지분을 사들이는 세컨더리 투자는 회수 지연에 시달리는 글로벌 운용사들에겐 한숨 섞인 소식이지만, 다시 말해 “시장에 한 번 더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태계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흐름을 읽으면서 ‘사모펀드=바이아웃’이라는 단순한 인식에서 벗어나, 자본 구조 전반을 설계하는 다양한 플레이어를 한 지도 위에서 보게 됩니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 2026년 이후 유망 섹터 분석입니다. AI·데이터센터 인프라, 방산, 항공, 바이오, K-콘텐츠, 뷰티·미용기기, 폐기물·환경, 웰다잉(장례·장기요양·실버케어) 산업이 핵심 키워드로 다뤄집니다. 예를 들어 AI 섹터에서는 칩·서버를 넘어 전력·냉각·부지 등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체를 하나의 투자 타깃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합니다. K-방산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재무장 흐름 속에서 안정적인 수출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단순 제조를 넘어 서비스·정비·훈련까지 묶은 “토털 솔루션 MRO” 비즈니스에 자본이 몰리는 현상을 분석합니다. K-콘텐츠와 뷰티·미용기기는 이미 체감하고 있던 붐을 M&A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고, 폐기물·환경 인프라는 규제산업이자 동시에 “장기적으로 수요가 줄지 않는 인프라 자산”으로 설명됩니다. 웰다잉 분야는 고령화·1인 가구 증가·가족 구조 변화 속에서 급성장 중인 영역으로서, 요양·장례·디지털 추모·자산 승계 서비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사모펀드와 전략적 투자자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독자로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점은, 이 책이 ‘돈의 향방’을 좇으면서도 결국 “좋은 자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규제 강화와 비판 여론을 단순히 “장벽”으로만 보지 않고, 건강한 자본시장과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조정 과정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사모펀드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기업의 전략적 방향 전환을 도우며, ESG·노동·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진화할 때, 비로소 ‘거인’이라는 존재가 사회와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총평하자면, 《사모펀드와 M&A 트렌드 2026》은 자본시장·PE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앞으로 5~10년의 산업 구조와 직업 지형 변화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입니다. 신문 기사로는 흩어져 보이던 딜과 규제가 “변곡점 위의 한 장면”으로 묶이면서, 개별 기업과 개인의 커리어, 투자 전략까지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거대 자본의 다음 발걸음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속한 산업과 삶의 방향을 다시 그려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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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기분파 피복아크용접기능사 필기 (가스텅스텐아크용접 / 이산화탄소가스아크용접기능사 포함) - 합격비법 특별부록: 출제유형을 분석한 최신경향 빈출문제+적중률을 향상시킨 실전모의고사 2026 기분파 시리즈
㈜에듀웨이 R&D 연구소 지음 / 에듀웨이(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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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피복아크용접 기능사 필기》를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용접 원리와 기계 이름 정도만 나오겠지 했는데, 실제로는 금속재료, 전기·물리 기초, 도면과 제도, 가스절단, 안전관리까지 골고루 다뤄져 있어 처음엔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이 교재를 끝까지 따라가 보니, 단순 자격증 대비용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기 전 꼭 한 번은 통과해야 할 기본기와 안전 의식의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아크와 전류·전압, 극성 같은 기본 원리를 짚어준 장이었습니다. 기출문제에서 계속 반복되는 “피복아크용접봉의 용융속도는 전류에 비례한다”, “아크 길이가 길어지면 전압이 올라간다” 같은 문제들이 처음에는 단순 암기처럼 느껴졌는데, 교재 설명을 이해하고 나니 왜 그런지 그림처럼 떠올라서 훨씬 기억에 잘 남았습니다. 재료 파트는 외우기 제일 힘들었지만, 탄소강·주철·합금강, 용접결함과 열처리 목적까지 같이 묶어서 보니, “어떤 금속에 어떤 용접을 해야 하는지”를 감으로라도 알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도면과 제도 부분은 솔직히 시험만 보고 넘기고 싶은 영역이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실기에서 실제로 내가 따라야 할 언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선의 종류, 나사 표시, 용접기호와 목두께 선택 기준 등을 문제로 반복하다 보면, 도면을 볼 때 막막함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가스절단·안전 파트는 단순 암기를 요구하는 문제도 많지만,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면서도 “이건 진짜 현장에서 사고 나지 말라고 외우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다잡아졌습니다.






수험생의 입장에서 이 교재의 장점은, 기출과 연계된 정리와 요약이 잘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이론을 한 번 훑고, 이후에는 기출·CBT 문제를 병행하면서 헷갈리는 부분만 이론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공부하니 효율이 훨씬 좋았습니다. 같은 유형이 다른 숫자나 보기로 다시 나오기 때문에, “원리만 이해하면 돌려 나오는 문제는 다 맞출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안전과 기본을 강조하는 설명을 읽으면서, 단순히 자격증 한 장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도 부끄럽지 않을 최소한의 토대를 쌓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부에 더 진심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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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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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집단 망상》(조 피에르)는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세상을 뒤흔드나?”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려는 책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인지심리학 연구자인 저자는, 음모론자나 극단주의자를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밀어내지 않고, 우리의 뇌 구조와 진화과정을 따라가며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책을 읽는 동안, 집단 망상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과 동시에, 그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마음가짐을 배워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집단 망상의 출발점을 “불확실성과 불안”에서 찾는 대목이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때, 우리의 뇌는 불안을 줄여 줄 “깔끔한 이야기”를 갈망한다고 말합니다. 경제위기, 팬데믹, 정치 혼란, 기후위기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잇따르면, 우리는 ‘우연과 구조적 복합 요인’이라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배후’가 모든 걸 조종하고 있다는 서사를 더 편안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음모론은 일종의 심리적 진통제 역할을 하며, 세상을 쉽게 설명해 주는 대신,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집단적 망상의 문을 엽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여러 인지 편향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확증편향은 내가 이미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보게 만들고, 가용성 편향은 뉴스나 SNS에서 자주 보는 극단적인 사례를 세상 전체의 평균처럼 느끼게 합니다. 비례 편향은 “큰 사건에는 반드시 큰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게 만들어, 우발적이고 복합적인 사건도 “거대한 음모”로 과장하게 합니다. 여기에 ‘동기화된 추론’이 더해져, 우리의 뇌가 과학자가 아니라 변호사처럼, 이미 좋아하는 결론을 옹호하는 증거만 모으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설명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음모론이 단지 일부 극단적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기본 설정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납득되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집단 망상이 개인의 두뇌를 넘어 사회적·기술적 환경과 만나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메커니즘입니다. 저자는 “믿음은 전염성이 있다”고 말하며,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증거처럼 느껴지는 과정을 다양한 실험과 사례로 보여줍니다. 친구와 가족, 같은 커뮤니티,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의 동조가 더해질수록, 어떤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우리 편”임을 입증하는 행위가 됩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분노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더 멀리, 더 빠르게 퍼뜨리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지적은 소름 끼칠 정도였습니다. 인터넷은 진실을 가려내지 않고, 참여도·조회수·공유 수만 측정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강렬한 서사”가 이기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분석이 날카롭게 다가왔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독제’는 의외로 냉소나 비웃음이 아니라 “인지적 겸손과 안전장치가 있는 호기심”입니다. 그는 “만약 아무 것도 내 믿음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문장으로 독자를 멈춰 세웁니다. 자신의 믿음을 바꿀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다른 증거와 관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남겨 두라는 제안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조언은,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다른 정보원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체성과 아이디어를 분리해 “모든 것을 똑같이 믿지 않아도 같은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양극화와 집단 망상에 맞서는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깊게 남은 메시지는, 집단 망상에 빠진 사람들을 ‘망상 환자’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태도야말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는 경고였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뇌가 진화적으로 패턴을 찾고, 집단을 보호하고, 두려움을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취약성이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특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조롱과 단절이 아니라, “연민과 상호 존중, 공동체 정신으로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대목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말 그대로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취급하는 현재의 인터넷 문화와 정치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집단 망상》을 통해 인간의 인지적 취약성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앞으로 뉴스를 접하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왜 이렇게 완벽하게 느껴질까?”, “이게 틀렸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고 한 번 더 질문해 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잘못된 믿음을 단번에 없애는 마법 같은 해법은 없지만, 집단 망상을 ‘남의 병’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중요한 첫걸음을 뗀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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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친절한 유럽사 - 세계사의 퍼즐을 맞추는 3천 년 유럽사 여행
아서 제임스 그랜트 지음, 박일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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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친절한 유럽사》는 거대한 유럽사의 흐름을 ‘세계사의 퍼즐을 맞추는 여행’처럼 엮어, 고대 그리스에서 근현대 유럽까지 3,000년에 이르는 역사를 한 호흡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친절한’ 유럽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저자 아서 제임스 그랜트는 복잡한 왕조·전쟁·조약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냅니다. 읽는 내내 단편적인 사건 지식이 아니라, 역사 전체의 큰 흐름 속에서 현재의 유럽과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가 조금씩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강점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흐름’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민주정, 철학의 탄생에서 출발해, 로마 제국의 팽창과 관용 정치, 그 이후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중세 봉건제 사회로 이어지는 변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단순히 “언제 누가 무엇을 했다”는 식의 암기용 서술이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나뉘고, 종교와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얽히며, 제국과 민족이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기에, 각 장면이 머릿속에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그 덕분에 그리스·로마 신화나 단편적인 세계사 만화로 알고 있던 조각 지식들이 하나의 큰 지도 위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교와 정치, 사상이 서로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세 시대 교황권과 황제권의 갈등, 십자군 전쟁, 르네상스가 불러온 인간 중심적 사고의 부활, 이어지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계몽주의와 근대 시민혁명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따로따로 배워 온 사건들이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 신앙과 권력을 놓고 긴 시간 동안 씨름해 온 과정”으로 묶입니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와 같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논쟁,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조금씩 다듬어진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과거 유럽의 갈등이 지금의 정치·사회 문제와도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결코 내용을 얕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 시대의 구조와 핵심 개념을 놓치지 않으면서, 어려운 단어를 줄이고 비유와 사례를 통해 이해를 돕습니다. “왕과 전쟁의 연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철학자·상인·농민·군인·성직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구성 때문에, 읽는 동안 ‘나라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실사 사진과 지도, 도판 자료들이 풍부해 글만 읽을 때보다 몰입도가 높고,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공간과 시간의 이동이 또렷이 느껴집니다.



독후감으로서 이 책이 준 가장 큰 울림은 “역사를 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데 있습니다. 단지 시험을 위해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세상의 복잡한 뉴스를 이해하는 배경지식이자,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돌아보는 거울이라는 점입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탄생했고 왜 무너질 수 있는지, 제국은 왜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의 모순에 짓눌려 붕괴하는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흔들렸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제도와 가치 역시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경고를 읽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럽사를 가르치는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다른 시대 사람들은 이런 위기를 어떻게 버텼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 교양서라고 느껴졌습니다.





총평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친절한 유럽사》는 학습만화나 단편 지식으로 세계사를 접해 온 청소년들이, 조각난 정보들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정리해 보고 싶을 때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동시에,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유럽사 전체를 다시 큰 틀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과거의 유럽을 찬양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인간이 반복해 온 선택과 실수, 그리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노력의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친절한’ 유럽사 여행이 충분히 그 기대에 부응해 줄 것이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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