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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수은충..음침하게 숨어서 왠지 모를 불쾌함을 휘젓고 다니는 벌레가 떠오른다. 인간의 내면 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선과 악의 대립위에서 그 어느 한 편에 서있는 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닌거 같다. 늘상 갈등의 도마위에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은 결국 나를 그 어느 한편으로 끌어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슈카와 미나토라는 작가는 처음 접해본다. 그 뒷 배경은 잠시 접어두고 단 세글자
'수은충'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속에 꿈틀거리는 탐욕이 어떤 악이 본능으로 비춰질지 궁금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소재들을 둘러봐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차가운 단면의 그림자들 뿐이라 느껴졌다. 살인, 자살, 영혼, 근친상간, 인육, 그리고 이지메, 환각의 내용들이다. 
그 첫 번째 이야의 고엽의 날은 평범하게 지내온 한 남자에게 결국 찾아온 배신의
칼날이 살인으로 이어진 피폐한 삶의 단면으로 시작한다. 오랜시간 자신의 잘못으로 쌓여진 파국을 생각치도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아내를 소리없이 지워버리고만 불행한 남편인 것이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원죄에 대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고달픈 삶의 무게를 알려주고 있다. 때 늦은 후회의 결과를 자신의 죽음으로 대신해서 그 죄는 또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 못하는 괴로움을 어떻게 끝내버릴 수 있을지는 결국 나 아닌 타인만이 알고 있을것이다. 이 이상 나를 더 지탱하는것은 죽음보다 더 힘든 세상이기에..
     
두 번째 이야기 겨울비의 날은 오누이의 금지된 사랑이 펼쳐진다.
씁쓸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두 사람이 앞으로 다가서야 할 미래가 그저 순탄해 보이지는 않기에 더욱 슬픈 시간이 연속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편견에 나서지 못한 채 차갑게 얼어버린 두 사람만 결국 남겨질 뿐이다.  

세 번째 이야기 잔설의 날은 인간이 가진 악의와 슬픔까지 모두 이용해 결국 자신의 사악한 죄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텅빈 내면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있다. 정작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 타인싀 생명을 쉽게 죽음으로 밀어버리는 모습에 정말 불쾌하고 소름이 돋을만큼 경멸스러웠다. 나 또한 이야기 속의 다카시가 되고 말 거 같은 절망감까지 들 정도니 말이다.
이야기 속 가해자 사나코가 과거 학창시절에 왕따를 가했던 친구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너무나도 무딘듯한 덤덤한 자세로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는 장면이 꽤 충격적이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럽고 추악한 행동은 피가 튀기는 살인과 엽기적인 범행이라기보단 이유없는 증오와 미움 그 자체를 분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온 영혼에 구멍이 뚤려버린 인간은 과연 존재의 가치가 필요할까? 난 이 한 마디가 결국 머리속에 남는다. 세상에는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해악을 끼치는 인간이 분명히 있다고 다카시는 말하고 잇다. 어떤 살인 조차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남고 만다.

네 번째 이야기 대울타리의 날은 어린 손자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마사에는 어느 날 손자 료헤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만다. 비참한 죽음으로 버려진 손자를 떠나 보낼 수 없어 결국 어느 날 찾아온 오랜 친구 후지코의 손자 겐토에게 료헤이의 인육을 햄버거로 만들어서 먹이고 만다. 후지코는 뒤늦게서야 인육임을 알아차리고 겐토에게 뱉어내게 하지만 이미 때가 늦고 만다. 인육을 먹으면 그 사람의 몸 속에 망자의 혼이 깃든다는 마지막 믿음을 가지게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어떻게든 죽은 손자의 영혼을 자신에게 붙잡고 싶었을까?
인육을 먹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후지코는 그렇게 알고 있다.
어두운 세계로 혼자 손자를 보낼 수 없는 후지코는 결국 자신도 지옥끝까지 손자를 따라가려고 한다. 외롭게 않게 따뜻하게 품안에 안아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결국 '원히 겐토 곁에 이 할머니가 같이 있어줄게' 라면서 말이다.  
과연 인간의 사랑과 죽음의 거리는 어디까지일까... 

다섯 번째 이야기 박빙의 날은 한 여성의 황폐한 내면과 악의를 보여주고 있다. 
중학교 시절 나오와 미하루 둘이는 한 동급생 히데미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슬픔 그 이상의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평생 그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나를 이렇게 만들 두 사람을 증오하고 벌할 것이다. 이 두 가해자는 어떤 식으로도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은채 시간을 흘러가 버린다. 결국 자신들의 다가올 운명은 모른채...비록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어도 결국 그 기회를 저버린 인간에겐 용서란게 필요없게 되버리고 만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여섯 번째 미열의 날은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폭력의 행사,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뻗쳐버린 폭력의 중독이 결코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환각에 빠져버린 두 명의 아이들이 저지른 살인은 결국 현실을 망각한채 한 생명을 비참하게 짓밟는 영원한 미궁속의 세계에 가둬두고 만다. 갑갑히 죄어오는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가 평생 이 두 아이에겐 쉽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병묘의 날은 희생적인 사랑의 지겨움과 끔찍함, 그리고 새롭게 깨어나는 사랑, 스토커와 우울증, 또 다른 반전의 결말로 이어진다. 무조건적 희생이 따르는 사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마지막 한 줄을 읽으면서도 나는 다시 이야기의 첫 페이지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나 역시도 날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 벌레가 내 온 몸을 구석구석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감촉을 빨리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다.

이 책은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고 읽기 쉽게 전해주고 있다. 인간이란 어둡고, 추한면이 존재하면서 인간이라서 가질 수 밖에 없는 잔인한 일면들을 전반적으로 펼쳐놓고 있다.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려주기보단 그 해답을 독자에게 묻고 있어 그만큼 여운이 남기도 한다.
짧은 단편속에 작가가 남기려고 했던 신선한 반전 형식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고 소재에 비해서 그렇게 무섭거나 오싹한 느낌은 상대적으로 적은편인 것 같다. 왠지 모를 묘한 흡인력을 뿜어내는 색다른 작가라는 알게 되어서 미쳐 읽지못한 다른 작품으로 계속 이어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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