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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작품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전후로 나온 것들, 이를테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외에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녀 배달부 키키, 모노노케 히메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고백하자면, 이 책을 처음 받아들어서 펼칠 때만 하더라도 크게 기대하는 마음은 없었다. 어린이를 위한 책에 대한 것이어서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동화류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워낙 세상에 다양한 유명 인사들의 책 추천글이 범람하는 시대인지라 나도 모르게 회의감을 가졌던 건지도 모른다. 그게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것을 책을 절반 가량 읽으면서 깨달았다. 과연 대작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제작해낸 노련한 그랄까, 경험과 연륜이 이런 가벼운 책 한 권에조차 문득문득 녹아들어 있었다. 


어린이문학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 교훈을 담으려 합니다. 그러다 점점 문학적 감동을 담은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나아가지요. 98P


어쩐지 자꾸 이 책에서 벗어나 애니메이션 얘기를 끌어들이는 것 같긴 하지만, 문학적 감동이라는 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는 억지로 도덕적 규범이나 윤리적 교훈 따위를 자신의 애니메이션에 끼워넣으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신에 어른이든 아이든 할 것 없이 온갖 감정을 자유로이 느끼며 푹 빠져들 수 있는 스토리와 여운을 선물한다. 이는 그의 작품을 몇 개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어떻게 보면 어른을 매료시키기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여러 차례 해낼 수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있었다. 


의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의 세계를 이해했다 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100P
아리에티라는 소인 여자아이는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자아이가 "너희들은 사라질 거다, 여긴 인간의 세계다" 하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 잔혹함이 바로 아이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 남자아이도 인간 세계에서 잔혹한 일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 점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106P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혹은 일반적으로 미처 캐치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진실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쉬이 납득할 수 있게 풀어서 이야기해준다. 그만큼 그가 아이들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뜻일 테다. 그는 분명 순수한 아이들, 자립적인 아이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의 면면을 다각도로 보면서, 아이들의 조금 부족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 하는 뜻입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평소에 니힐리즘이나 데카당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눈앞에서 아이의 존재를 본다면 "이 아이들이 태어난 걸 쓸데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하는 마음이 강하게 작동되는 것입니다. 155P


여기에 진심이 담겨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옳은 말을 해주기보다는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나도 그렇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 말을 듣는다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너희에게는 이런 면이 있지 않니? 무서운 것을 보면 놀라고, 놀라운 것을 보면 압도당하고, 작은 것에 감탄하고, 불의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맞서고. 그렇지 않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렇게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을 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읽으면 아이가 읽지 않는다거나 오빠가 열심히 읽으면 여동생이 읽지 않거나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141P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보자면, 이 부분을 읽고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요즘 들어 책을 읽으면서 목적이라고 하면 좋을까, 책 자체보다는 그 책을 읽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이를테면 지식이라거나 내적인 성숙 따위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과 대조해 보며 은연중에 뿌듯함 따위를 느끼고 있었는데. 아이가 생긴다면 꼭 책을 가까이 두게 하겠다고 생각도 했는데. 그런 내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이렇게 말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애니메이션을 위해서 다양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추천평 곳곳에서 그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어떻게 보면 참 일관적인 관점으로 책을 읽는구나 싶기도 했지만. 


가벼운 종이 무게에 비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여기에 추천된 동화책들을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그 자체로 읽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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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10-22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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