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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실험왕 37- 용해와 용액
스토리 a. 글, 홍종현 그림, 박완규.이창덕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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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실험왕 36- 태양과 행성
스토리 a. 글, 홍종현 그림, 박완규.이창덕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16년 7월
11,800원 → 10,620원(10%할인) / 마일리지 5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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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검사의 이해- 2판
김재환 외 지음 / 학지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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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작은세상의 반란
이원경 지음 / 도서출판성우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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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광주에서 1

 

 

  풍물패 동아리 회원들이 광주에 내려온 지 하루가 지난 밤이었다. 그들은 ㅈ대의 넓은 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총련 출범식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은 운동장에 자리를 꽉 메운 채 앉아 있었다. 단상위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그동안 준비했던 공연들을 학생들한테 선보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클린턴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모욕하는 노골적인 연극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주위에는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지만 단상 위에서 이어지는 북춤에 학생들의 열기는 오히려 한층 더 타오르고 있었다.

북춤이 끝나고 새로이 한총련 의장에 뽑힌 학생이 깃대에 높이 걸려있는 성조기를 향해 불붙은 화살을 쏘아 올렸다. 화살은 그대로 성조기에 가 꽂혔고 성조기는 삽시간에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때를 같이하여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환호가 어둡고 추운 밤 속에서 일제히 터졌다. 희연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희연은 애초에 이런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희연은 분위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전부터 일기 시작한 찬바람에 몸을 자주 떨었다.

“에취.”

희연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춥니?”

옆에 앉아있던 유진이가 희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유진의 얼굴은 흥분이 된 듯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만 들어가서 자지 그래? 너 감기 걸린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재채기 했을 뿐인데. 뭐.”

“정말 괜찮아?”

“응.”

“그럼 이거라도 입고 있어.”

유진은 자신이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서 희연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고마워.”

“그런 말은 친구 사이에 하는 게 아냐.”

유진은 말을 마치고 단상 위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상 위에서는 어느새 사물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

희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언제나 자신한테 친구라는 말만을 했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운동장에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일정이 끝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ㄱ대 풍물패 회원들도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유진, 재수, 민이, 희연은 일정이 끝난 새벽 3시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ㅈ대에 내려온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요를 하나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에취”

희연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재채기를 했다.

“그러길래 내가 아까 들어가서 자랬잖아? 가뜩이나 몸도 약하면서.”

유진은 걱정스런 얼굴로 희연이를 쳐다보았다.

“괜찮다니까. 그냥 감기일 뿐인데, 뭐.”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와서 요를 깔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유진과 재수와 민이는 피곤했는지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희연은 잠이 든 유진이의 모습을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고 나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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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광주로 떠나고

 

 

  ‘삐이이...’하고 신호음이 울리자 박 회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박 회장의 목소리엔 위엄이 담겨 있었다.

“회장님, 희연 아가씨께서 오셨는데요.”

“들어오라고 해.”

박 회장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졌다.

“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데스크를 보고 있는 안내원이 희연이한테 공손하게 말했다.

희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희연은 회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노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근데 무슨 일이세요? 절 갑자기 보자고 하시고.”

“일은 무슨? 저녁은 먹었니?”

“아뇨. 아직.”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얘기하자꾸나.”

박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은한 불빛 아래, 박 회장과 희연이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그 곳은 박 회장이 즐겨 찾는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그들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그 날의 스페셜 요리와 화이트 와인이 놓여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이 그들의 식사를 한껏 분위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박 회장은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말을 꺼냈다.

“내일 광주로 내려간다며?”

“예.”

“집사람이 괜한 걸 너한테 부탁했어. 이젠 별 일 없을 텐데 말야.”

“전 괜찮아요. 아버님.”

“어쨌든 못난 내 아들 놈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구나.”

“고생이라뇨? 당연히 제가 할 일인걸요.”

“그 녀석이 그렇게 좋으냐?”

희연은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 녀석은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소꿉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좀 도와 주세요.”

“내가 도와 줄 필요는 없을 거야. 적어도 그 녀석은 나하고는 달라서 인정은 있거든. 결국 니가 원하는 대로 될 거다.”

“정말 그렇게 되겠죠?”

희연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될 거다.”

박 회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희연은 박회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도 일말의 불안감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희연이는 유진이가 자신을 떠나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것이 희연이를 더욱 불안하게 했고 그래서 희연은 언제나 유진이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다음 날, ㄱ대 학교 운동장 안에는 한 대의 버스가 서 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버스에 올라타서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버스에 시동이 걸렸을 때 버스를 향해 희연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다시 버스의 문이 열렸고 희연은 버스에 올라타더니 숨을 고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유진은 희연이가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나도 같이 갈려고 왔어.”

“피아노 연주회는 어떻게 하고?”

“피아노 연주회는 다음에도 얼마든지 있는 걸. 뭐.”

유진은 희연이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희연은 여지껏 피아노 연주회가 있는 날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그런 희연이가 피아노 연주회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것도 희연이가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유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희연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그 이유를 따져 묻진 않았다.

희연은 뒷좌석에 비어있는 민이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니가 웬 일이냐?”

민이는 희연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갈려고 왔어. 차 놓치는 줄 알고 뛰어 오느라 혼났어.”

“어쨌든 환영한다. 너도 이제 우리와 뜻을 같이 하게 됐으니 말야.”

민이가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환영하긴 아직 일러. 난 너희와 뜻을 같이 한다고 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뭣 땜에 우리들의 여행에 동참한 건데?”

“그거야 목적지가 같기 때문이지. 하지만 목적지가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는 목적이 다 같은 것은 아니잖아.”

“그럼 네 목적은 뭔데?”

“그냥 광주에 한 번 내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사과도 할 겸해서 말야.”

“사과라니?”

“우리 아버지 광주에서 사람 많이 죽였거든.”

“그래도 넌 니 아버지랑은 좀 다르구나.”

“다를 거 없어. 만약 똑같이 그런 상황이 또 일어난다면 나도 아버지처럼 행동할 테니까. 나도 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내가 얻고 싶은 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고 하거든.”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너무 신경쓰지마. 그나저나 어제 리포트를 밤새 썼더니 너무 피곤한 걸.”

희연은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 두 눈을 감았다. 민이는 그런 희연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만 보이던 희연이의 얼굴이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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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 여사의 부탁

 

 

  풍물패 회원들은 연습을 끝마친 후 달빛을 벗 삼아 동아리 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리에 다 앉은 후 오늘 했던 연습에 대한 총평을 했다. 총평이 끝나자 회장인 경철이 말을 꺼냈다.

“오늘 다들 수고 했어. 이번 주 연습은 이걸로 마치기로 하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광주에 있는 ㅈ대에서 한총련 출범식이 있는데 많이 내려갔으면 좋겠어. 우리 풍물패는 언제나 민중과 함께 하니까. 그럼 오늘은 여기서 끝내지.”

회장인 경철의 말이 끝나자 회원들은 동아리 방을 나갔다.

 

  재수, 민이, 준석,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야, 너도 다음 주에 한총련 출범식에 내려가는 게 어때?”

재수가 준석에게 물었다.

“내려 갈려면 너희들이나 가라. 난 그 날 마리하고 약속 있다고.”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지자 재수와 민이는 준석이랑 헤어지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머저리, 이제 9시밖에 안 됐는데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하는 게 어때?”

민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자 말했다.

“또 술이야? 넌 어떻게 된 여자가 밤낮 술타령만 하고 있냐? 그러니 얼굴이 그 모양 그 꼴이지.”

재수가 또 비꼬는 투로 말했다.

“니가 또 몸이 근지러운가 본데 그러다가 되게 맞는 수가 있어.”

“어휴, 그러셔. 어디 한 번 쳐 보지 그래?”

둘은 또 티격태격 하며 자주 가던 술집으로 걸어갔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유진이와 희연이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진아, 너 다음주에 한총련 출범식에 내려갈 거야?”

희연이가 물었다.

“응.”

유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안 내려가면 안 돼?”

희연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라, 그 날 피아노 연주회 있는데 너랑 같이 갔으면 해서.”

“그런 거라면 너 혼자 가도 되잖아? 이번 한총련 출범식은 쌀 수입 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출범식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꼭 내려가 봐야 해”

희연은 더 이상 유진이를 설득하려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유진이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곧 지하철이 들어왔고 두 학생은 지하철에 올라탔다.

 

 

  다음날 저녁 희연은 강 여사가 하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여느 때처럼 손님들은 환호의 박수를 쳐 주었고 희연은 답례의 인사를 하고 강 여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 끝났구나. 희연아, 잠깐만 저기 가서 앉아 있을래? 너하고 좀 할 얘기가 있는데.”

“저하고요?”

“그래. 저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거라.”

“예.”

희연은 강 여사가 가리키는 곳에 가서 앉아 있었다. 조금 후 강 여사가 희연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와서 앉았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는 게......”

“희연아, 너도 다음 주에 그 한총련 출범식인가 뭔가 하는 데에 내려 갈 생각이니?”

“아니요. 전 그 날 피아노 연주회에 갈 생각인데요.”

“유진이, 그 녀석도 너와 생각이 같으면 얼마나 좋겠니? 근데 그 녀석은 한사코 내려갈 거라고고집을 부리고 있거든. 너도 잘 알잖니? 그 녀석이 고집이 좀 센 거. 그래서 말인데 네가 같이 가 주었으면 하는데. 혹시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별 일은 없을 거에요, 어머님.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그래도 혹시 아니?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데모에 참가했던 녀석이라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니가 같이 가 주면 안 되겠니?”

“그렇게 할게요.”

희연은 강 여사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희연은 여지껏 강 여사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고 강 여사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맙다. 아, 그리고 이거 받아라.”

강 여사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돈 좀 넣었다. 아르바이트비라고 생각하고 받아.”

“어머님, 저 이런 거 받을 수 없어요. 아버님이 이미 저한테 넉넉하게 돈 주시는데 어떻게 어머님한테 돈을 또 받아요?”

희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지.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아니에요. 전 정말 됐어요. 아르바이트라기 보다는 좋아서 하는 건데.”

희연이 계속해서 거절하자 강 여사도 더는 어쩔 수가 없어 도로 봉투를 집어넣었다.

“그럼 저 그만 가 볼게요. 어머님. 누구 만나기로 해서요.”

“그래.”

희연은 강 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희연은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리는 이미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희연은 그 곳으로 가서 앉았다. 종업원이 오자 희연이 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갑자기 뭔 바람이 분 거야? 나한테 술을 다 사 주겠다고 하고.”

마리가 물었다.

“사실 너한테 사과할 게 있어서.”

“사과? 뭘?”

“아마 조만간에 우리 사촌 오빠가 너희 집에 찾아갈 거야.”

“니 사촌 오빠가 왜 우리 집엘 찾아와?”

“내가 사촌 오빠한테 니네 집 위치랑 전화번호 가르쳐 줬거든.”

“야! 그런 걸 왜 가르쳐 줘?”

“저 번에 내 동생하고 공연보러 갔을 때 너한테 첫 눈에 반했는지 하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는 걸 어떡하냐? 그래서 가르쳐 줄 수 밖에 없었어. 미안해.”

“넌 애가 왜 그렇게 마음이 약하냐?”

희연이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다.

“그러니까 이걸로 용서해 줘.”

“이걸로 안 돼.”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나랑 같이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가자. 보육원에서 하루 동안 요리사로 일해 주면 용서해 줄게.”

“별 수 없군.”

“너 약속한 거야?”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난 약속은 지켜.”

희연은 마리의 비어 있는 잔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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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수께끼

 

 

  2층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연은 물을 마시려고 거실로 내려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연은 인터폰이 있는 곳으로 가서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오빠 왔어요.”

유진이 온 것을 확인한 나연은 버튼을 눌러 대문을 열어 준 후 2층에 있는 희연이의 방으로 올라갔다.

희연은 자기 방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키듯 빠르고 경쾌하고 시원스러운 손놀림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집안에 울려 퍼졌고 희연은 점점 더 연주에 몰입해 가고 있었다. 이젠 손놀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더 빨라져 가고 있었다.

“언니.”

나연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순간 희연은 연주를 멈추며 말했다.

“피아노 칠 때는 방해하지 말랬잖아.”

“누가 왔는지 알면 생각이 바뀔 걸.”

“유진이 왔어?”

희연은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하여튼 언닌 못 말린다니까.”

나연이는 말을 마치고 나서 방을 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희연도 피아노 뚜껑을 닫고 거실로 내려 왔다. 유진이 와 있었다.

“왜 연주를 멈춘 거야? 훌륭하던데.”

유진이가 물었다.

“형편없는 연주인 걸, 뭐.”

“형편없긴? 아주 훌륭하던데. 근데 무슨 곡이야?”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야.”

“뭐 마실래?”

“응, 커피.”

“언니, 나도.”

“넌 언니 부려먹을 줄 밖에 모르지.”

희연이 조금 못 마땅한 듯이 말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희연은 커피를 타 가지고 나와서는 유진과 나연이한테 주었다.

“커피 맛이 일품인데. 넌 정말 커피를 잘 탄다니까.”

희연은 유진이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나?”

“하긴. 저녁은 먹고 왔어?”

“아니. 아직.”

“뭐 하느라 여태껏 저녁도 안 먹었어? 밥은 아직 안했는데 내가 라면이라도 끓여 줄까?”

“됐어. 사실은 너랑 같이 어머니한테 갈려고 온 거야. 어머니가 널 보고 싶어하거든.”

“어머님이 나를?”

희연은 조금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그래, 우리 거기 가서 저녁 먹자. 사실 그럴려고 여지껏 저녁도 안 먹은 거야.”

“그래? 그러고 보니 어머님을 안 찾아 뵌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네. 조금만 기다려. 나 금방 옷 갈아 입고 나올게.”

희연이는 기분 좋게 말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옷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가자.”

“그렇게 보여?”

“응.”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이는 유진이의 말대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가기로 했다.

“나연이 너도 갈래?”

유진이 물었다.

“됐어요. 전 공부해야 돼요.”

유진과 희연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 차 타고 갈까?”

희연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진이에게 물어보았다.

“차는 니 아버지가 가지고 나갔을 거 아냐?”

“내 차 있어.”

희연은 차고 문을 열었다. 차고 안에는 번쩍 번쩍 빛나는 검은색 그랜저가 놓여 있었다.

“이게 니 차야?”

유진은 매우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진이 놀란 이유는 번쩍번쩍 빛나는 새 차 때문이 아니라 딸에게 이런 고급 승용차를 사 주는 아버지와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희연이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응, 면허증 따니가 아버지께서 한 대 사 주셨어. 근데 왜 그렇게 놀라?”

희연은 의아한 눈으로 유진이를 보았다.

“아냐. 아무것도. 단지 학생한테는 좀 과분한 거 같아서.”

“니 말이 맞아. 그냥 지하철 타고 가자.”

희연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180°도 바꾸며 차고 문을 닫았다. 유진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희연이를 이해할 수가 없어 잠시 멍한 눈으로 희연이를 보았다.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온 아이였는데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유진이는 그 때마다 희연이를 알다가도 모를 아이라고 생각을 했을 뿐 희연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 이상한 행동에 대해 유진은 희연이한테 묻지도 않았고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희연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였다.

 

 

  강 여사가 경영하는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빈 레스토랑은 잠실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유진과 희연은 조금 걸은 후 강 여사가 경영하는 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희연은 강 여사를 보자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희연이, 왔구나.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저기 앉아서 뭐 좀 시켜 먹고 있어. 금방 갈 테니까.”

강 여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예, 어머님.”

유진이와 희연은 가운데에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유진이와 희연이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뭐 먹을래?”

유진이가 물었다.

“너는?”

“난 안심 스테이크 먹을래.”

“난 해산물 스파게티 먹을게.”

“그거 갖고 돼?”

“응.”

웨이터가 오자 희연은 안심 스테이크와 해산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이 주문한 요리가 나왔고 강 여사가 그들의 자리로 왔다.

“어머니, 이제 소원 푸셨어요? 희연이 좀 데려 오라고 그렇게 안달이더니 말이에요.”

“그래, 이 녀석아, 자주 좀 데려오지 않고.”

“죄송해요. 어머님. 제가 자주 찾아 뵈야 하는 건데.”

“아니다. 니가 죄송하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냐? 다 이 녀석이 못나서 그렇지.”

“어머니는 또 저만 구박이에요.”

유진이는 웃음기가 가득 담긴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근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예요?”

“응. 너한테 좀 부탁이 있어서......”

“부탁이요? 무슨?”

“이 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아가씨가 며칠 전에 그만 뒀거든. 그래서 니가 좀 연주를 해 줬으면 해서.”

“제가요? 하지만 저 이 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이 아니에요.”

“무슨 소리니? 넌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피아노 콩쿨대회의 상은 다 휩쓸었잖니? 대학에서도 특기생으로 널 데려가려 했었고. 그 실력이 어디 갔을라고?”

“그래 한 번 연주해 봐. 나도 네 연주 듣고 싶어. 아까 연주한 것도 훌륭하던데.”

유진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청했다.

“그럼 한 번 해 볼게.”

희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 흰색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가서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후 두 손을 건반위에 올려 놓았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두 손이 건반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환상적인 음율이 실내를 한 순간에 사로잡았다.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도 모르게 피아노 연주자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연주가 끝나자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희연은 답례의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강 여사와 유진이가 앉아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마에는 아직도 땀이 배어 있었다. 희연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쳤다.

“거 봐라. 다들 좋아하잖니? 이렇게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난 니가 여기서 연주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내키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할게요. 어머님.”

“고맙다.”

“고맙긴요? 이런데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다니 오히려 제가 영광인걸요.”

“그럼 마저 얘기들 나누거라. 난 또 할 일이 있어서.”

강 여사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넌 정말 음악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거 같아. 근데 난 암만 생각해도 도무지 널 이해를 못 하겠어.”

“응?”

희연은 유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왜 음대에 가지를 않은 거야? 넌 어려서부터 피아니스트 되고 싶어했잖아?”

“난 또 무슨 말인가 했네. 또 그 소리야? 저번에도 말했잖아. 난 피아니스트가 될 재목이 못 된다고.”

희연이는 입가에 밝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넌 충분한 재능도 있고 노력도 남달리 하잖아.”

“그래도 난 발전할 가능성이 없어. 지금 수준에 머무르는 게 전부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디?”

“누가 한 소리가 아니라 그냥 내 판단이야. 그리고 난 지금 내가 택한 학과에 만족해. 경영학도 나름대로 재미있거든.”

자신이 택한 학과에 만족한다는 데는 유진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희연이가 피아노를 포기했다고는 하나 희연은 피아노 연주회가 있는 날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갔다. 그처럼 피아노에 열정을 가진 아이가,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꿈꿔 왔던 아이가 입시를 한 달 남기고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꾸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유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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