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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크리스마스 이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는지 눈은 부잣집 마을에도 가난한 마을에도 공평하게 내리고 있었다.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구세군이 울리는 자선냄비 종소리와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혜진은 마당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있었다.

“웬 트리냐?”

일을 나갔던 순영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당에 있는 나무를 보고 물었다.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가 우리들하고 무슨 상관 있다고?”

“우리가 크리스마스 기분 좀 낸다고 나쁠 건 없잖아요.”

“응?”

“할아버지 들어오시면 우리 같이 저녁 먹어요. 제가 맛있는 닭도리탕 해 놨거든요.”

“내가 껴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희한테 아주 잘 해 주시면서.”

  크리스마스 이브여선지 상욱은 일찍 집에 들어왔다. 상욱은 손에 이쁘게 포장된 네모난 상자를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제 오세요?”

부엌에서 연탄불을 갈고 나오던 순영이 물었다.

“예.”

“그건 뭐에요?”

“크리스마스고 해서 케이크 하나 샀어요. 혜진이랑 같이 먹을라고. 아주머니도 같이 드세요.”

“전 됐어요.”

“그러지 말고 같이 드세요.”

집주인인 순영은 마지 못해서 할아버지의 청에 응했다. 세 사람은 혜진이네 방에서 케이크를 먹은 후 혜진이가 해 놓은 닭도리탕을 저녁으로 먹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밤하늘 가난한 달동네에 세워진 교회에서는 신도들의 예배소리와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1994년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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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수능 시험 2주 전

 

 

  수능 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별로 밝게 빛나는 별이 없는 가을 하늘 한 가운데서 외롭게 빛나며 가을 하늘을 지켜주던 페가수스 별 자리도 서서히 겨울철의 별자리한테 하늘을 내어주고 있었다. 민규는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고 있었다. 설레이는 가슴으로 별을 관측하던 민규는 한참 후에야 천체망원경에서 눈을 떼었다. 언제인지 모르게 누나가 올라와 있었다.

“내려가자. 혜진이 왔으니까.”

민이가 말했다.

“혜진이 누나가 벌써 왔어?”

민규는 놀라며 물었다.

“벌써라니? 지금이 몇 신데?”

민규는 천체망원경을 챙겼다.

“별을 관측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 열심히 해라. 수능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

민이가 걱정을 하며 말했다.

“걱정 마.”

민규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둘은 옥상을 내려왔다.

“누나왔어요?”

민규는 혜진이에게 인사를 했다.

“민규는 또 별을 보고 있었나 봐.”

“이 녀석이 늘 그렇잖니. 한심한 별지기인거 너도 잘 알잖아?”

민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들어가자. 공부해야지.”

혜진이와 민규는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혜진이는 준비해 온 시험지를 꺼냈다.

“중요한 문제 유형을 뽑았는데 한 번 풀어 봐.”

“예.”

민규는 정성껏 시험지를 풀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민규는 시험지를 다 풀었다. 혜진이가 시험지를 건네받아 채점을 했다. 그리고는 틀린 문제들을 민규에게 가르쳐 주었다.

“많이 좋아졌는데. 이 정도면 우수한 실력이야.”

“누나가 잘 가르쳐 줘서 그래요.”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니가 열심히 해서 그렇지.”

 

 

 혜진과 민규는 방을 나왔다.

“수업 다 끝난 거야?”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던 민이가 일어서면서 물었다.

“응.”

“그럼 내가 바래다 줘야지.”

“됐어.”

“너같은 요조숙녀는 밤에 혼자 돌아다닌다면 안 된다고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버스 정류장까지만 바래다 줄게.”

“누나, 안녕히 가세요.”

“그래. 잘 있어.”

 

 

  혜진과 민이는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수능시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니가 민규를 가르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응. 그동안 민규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조금 섭섭해.”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리고 민규 그 녀석도 우리학교 천문과에 지원할 생각이던데.”

“그래? 그럼 자주 볼 수는 있겠네.”

“그거야 붙었을 때 얘기지.”

“민규는 붙을 수 있을 거야. 성적도 좋고 열심히 하니까.”

“고마워.”

“뭐가?”

“너 때문에 민규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잖아.”

“그거야 민규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 거지. 난 해 준 거 하나도 없어.”

“넌 늘 너무 겸손해서 탈이라니까.”

둘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바래다 줘서 고마워. 그만 들어가.”

“그래.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민이는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금후 버스가 정류장에 섰고 혜진은 버스에 올라탔다. 민규를 가르칠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혜진은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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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불길한 예감

 

 

“똑똑.”

희연이 노크를 하고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희연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던 박 회장은 희연이 온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워 했다.

“니가 어쩐 일이냐?”

“아버님, 아직 점심 안 드셨죠? 그저께 제가 부탁드린 일 해 주신 답례로 유부초밥 좀 싸 가지고 왔어요.”

“뭘 그런 일을 가지고? 너나 나연이나 다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박 회장은 여비서를 불러 가지고는 쟈스민차 두 잔을 내 오라고 한 후 희연이랑 같이 중앙에 놓인 소파에 가서 앉았다.

“드셔 보세요.”

희연이 가방에 싸 가지고 온 유부초밥을 꺼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박 회장은 젓가락으로 유부초밥을 하나 집어 입 속에 넣었다.

“드실만 하세요?”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아마 니가 우리 집사람 옆집에 가게 차리면 우리 집사람 가게는 며칠 못 가서 망할 거다.”

“아버님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여비서가 쟈스민차를 가지고 와서 두 사람 앞에 내려 놓았다.

“이거 하나 먹어보지 그래?”

박 회장은 여비서한테 유부초밥 하나를 건네 주었고 여비서는 하나 먹어보더니 그 맛에 감탄했다.

“이거 아가씨가 한 거에요?”

“예. 어때요? 괜찮아요?”

“이렇게 맛있는 유부초밥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걸요. 아가씨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뭐에요?”

“너무 그렇게 비행기 띄우지 말아요. 저도 못하는 거 많으니까. 아버님, 저 그럼 가 볼게요. 수업 있어서요.”

희연은 박 회장한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서 회장실을 나왔다.

 

 

  풍물패 연습이 끝난 후 유진, 재수, 준석, 민이, 희연 다섯 명의 학생은 학교 앞에 있는 커피숍에 모였다. 기장인 민이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였다.

“깡패, 왜 모이자고 한 거야?”

재수가 말했다.

“넌 기장한테 그런 식으로 밖에 말 못해. 그저께 무단 땡땡이 친 것도 그냥 넘어가 주었더니만.”

“또 시작이군.”

준석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작은 뭐가 시작이야?”

“하려는 얘기가 뭐야?”

희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응, 단풍도 들고 그랬는데 우리 이번 주 일요일에 북한산에 등산 가자고.”

“난 찬성.”

유진이가 말했다.

“나도.”

유진이가 간다고 하자 희연이도 동의했다.

“나도 갈게.”

준석이 말했다.

“그럼 다 가기로 한 거지.”

“야, 난 간다고 하지 않았어.”

재수가 말했다.

“너 따윈 안 와도 상관없어.”

“내가 왜 안 가? 나도 갈 거야.”

“으이그, 진짜 저 머저리를......”

“몇 시에 만날까?”

희연이가 물었다.

“10시에 북한산 입구에서 만나자.”

다섯 명의 학생은 그렇게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한 후 커피숍을 나왔다. 거리는 이미 어두워진지 오래여서 네온싸인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진아, 나 오늘 너희 집에 가서 자면 안 되냐?”

재수가 물었다.

“어려울 거 없지.”

“넌 또 남의 집에서 잘 생각이냐?”

민이가 쏘아붙였다.

“걱정마라. 너한테 재워달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

갈림길에서 준석과 민이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고 유진, 재수, 희연은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유진, 재수, 희연 세 사람은 압구정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늦은 시간이라 주위는 어두컴컴했으며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었다. 세 학생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근데, 너흰 언제부터 사귄 거냐?”

재수가 물었다.

“사귀다니? 무슨 말이야?”

유진이가 되물었다.

“야, 시치미 뗄 걸 떼라. 너희 둘이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있다고.”

우린 친구야. 소꿉친구일 뿐이라고. 난 좋아하는 여자 따로 있어.”

유진은 가슴속에 마음에 두고 있는 혜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순간 희연이의 얼굴에 놀란 빛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유진도 재수도 그것을 눈치채진 못했다.

“그래, 그거 의외인데. 누구야? 니가 좋아하는 여자?”

“재수야, 저기 말야.”

희연이는 유진이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 재수한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응? 왜?”

“너 왜 집에 잘 안 들어 가? 집에 무슨 일 있는 거야?”

“희연이, 너 나한테 관심 있냐?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면 다친다.”

“그런 게 아니라 민이가 궁금해 해서.”

“민이?”

재수가 놀라며 물었다.

“응, 니가 자꾸 집에 안 들어가는 게 조금 걱정되나 봐.”

“하여튼 그 깡패는 왜 사사건건 남의 사생활에 간섭이야.”

세 사람이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 갈림길이 나타났다. 희연은 두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자기 집 쪽으로 걸어갔다. 아까 유진이가 한 말,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말이 자꾸 귓속에서 맴돌았다. 두려웠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유진이가 자신을 여자로 봐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유진이 집에 도착한 유진과 재수는 거실에 앉아 쥬스를 마시고 있었다. 재수는 쥬스를 마시면서도 연신 거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자꾸 보냐?”

유진이가 물었다.

“역시 재벌이 좋긴 좋구나. 이렇게 넓은 데서 살고 말이야.”

“좋긴 뭐가 좋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세 사람뿐이어서 이렇게 넓은 데는 무섭기만 하다구. 내 방으로 가자.”

유진이가 쥬스를 다 마시고 나서 말했다.

두 사람은 유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재수는 유진이의 방이 너무나 넓어서 또 한 번 놀랐다. 그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책상위엔 언제나 그렇듯이 원고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건 니 방 하나가 우리 집 거실만 한데. 야, 이런데 살면서 그렇게 짠돌이 행세 할 건 또 뭐냐?”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 아버진 나한테 돈을 별로 안 주셔. 나를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거든.”

“왜?”

“우리집은 천주교 집안인데 난 성당 같은데 안 나가거든. 게다가 경영학과 가라고 했는데 소설가 되고 싶다고 영문과에 가 가지고.”

“니 아버지가 널 별로 안 좋아할 만도 하군. 이게 니가 지금 쓰는 글이야?”

재수는 책상위에 수북히 쌓인 원고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원고지 맨 첫 장에는 ‘비창’이라는 제목이 쓰여져 있었다.

“응.”

“내가 좀 봐도 돼?”

“지금은 안 돼. 다 쓰고 나면 보여줄게.”

“야, 그 때까지 언제 기다리냐?”

“어쨌든 안 돼. 난 다 쓰지 않은 글은 절대로 남한테 안 보여주는 주의거든.”

“그건 무슨 주의냐? 그런 주의는 난생 처음 들어본다. 하여튼 글 쓰는 인간들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니까.”

“늦었는데 그만 자자.”

유진은 잠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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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지은이의 절규

 

 

  성수대교가 무너져 버린 사고 후 사흘이 지났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지은은 불안했다. 왠지 모르게 두 다리가 다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의료진들과 가족들한테 물어 봤으나 다들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준석이 부모님과 준석이 병실에 들렀다. 사고 후 가족들은 매일 지은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은이는 아직도 자신이 이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 지은이한테 그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료진들한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몸은 좀 어떠니?”

애자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된 거야? 왠지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만 같아.”

“괜찮아.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마.”

하지만 지은은 어머니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본 창선은 더 이상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만 하자. 언제까지고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빠, 내 왜 이러는 거야?”

지은은 아빠한테로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잘 들어. 지은아, 그 사고로 니가 많이 다쳤어. 의사 선생님이 넌 척추가 부러져서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했어.”

시간이 멈춘 듯한 잠깐 동안의 공백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챈 지은은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창선은 그런 지은을 진정시키려고 꽉 껴 안았고 애자와 준석은 그런 모습을 보며 눈물만 한 바구니를 흘렸다.

 

 

  밤이 되었다. 가족들도 집으로 다 돌아가고 지은은 혼자 병실에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자신이 잘못한 일도 아닌 일로 자신이 이렇게 되어 버려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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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퇴원하는 소희

 

 

  소희가 퇴원을 하는 날이었다. 승훈은 소희의 퇴원을 도와주러 병실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병실을 정리한 후 병원을 나왔다. 소희의 치료비와 입원비는 승훈이 이미 지불을 했다. 병원 주차장에 승훈이 주차해 놓은 차가 있어 두 사람은 승훈의 차를 타고 승훈의 집으로 향했다.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승훈이 자취를 하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큰 방 하나에 작은 방 하나 그리고 좁은 거실과 거실에 붙어 있는 작은 주방, 욕실이 있는 집이었다.

“배 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금방 상 차릴 테니까.”

승훈은 거실에 붙어있는 조그만 주방으로 가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조금 후 김치찌개가 다 되자 승훈이 상을 차려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근데 누가 너한테 그런 거야?”

승훈이 물었다.

“.......”

“얘기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밥 먹자.”

“아버지가 그랬어요.”

소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 동안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얘기했다. 소희의 얘기를 들은 승훈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와 있다니? 의붓아버지도 의붓아버지지만 의붓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하는 친딸을 팽개치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 버린 친어머니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닌데도 자신한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그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자신이 정신병을 앓던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젠 괜찮을 거야. 내가 널 지켜 줄 테니까.”

승훈은 앞에 있는 소희가 너무 불쌍해 보여 더욱 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밥 먹고 우리 옷 사러 나가자.”

“예?”

“여긴 나 혼자 살아서 여자 옷은 하나도 없으니까. 니 옷 사러 가야지.”

소희는 물끄러미 승훈을 보았다. 소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두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물은 이전에 소희가 그렇게나 많이 흘렸던 눈물과는 너무나도 다른 성질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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