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광주에서 1
풍물패 동아리 회원들이 광주에 내려온 지 하루가 지난 밤이었다. 그들은 ㅈ대의 넓은 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총련 출범식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은 운동장에 자리를 꽉 메운 채 앉아 있었다. 단상위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그동안 준비했던 공연들을 학생들한테 선보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클린턴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모욕하는 노골적인 연극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주위에는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지만 단상 위에서 이어지는 북춤에 학생들의 열기는 오히려 한층 더 타오르고 있었다.
북춤이 끝나고 새로이 한총련 의장에 뽑힌 학생이 깃대에 높이 걸려있는 성조기를 향해 불붙은 화살을 쏘아 올렸다. 화살은 그대로 성조기에 가 꽂혔고 성조기는 삽시간에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때를 같이하여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환호가 어둡고 추운 밤 속에서 일제히 터졌다. 희연이는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희연은 애초에 이런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희연은 분위기에 빠져들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전부터 일기 시작한 찬바람에 몸을 자주 떨었다.
“에취.”
희연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춥니?”
옆에 앉아있던 유진이가 희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유진의 얼굴은 흥분이 된 듯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만 들어가서 자지 그래? 너 감기 걸린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재채기 했을 뿐인데. 뭐.”
“정말 괜찮아?”
“응.”
“그럼 이거라도 입고 있어.”
유진은 자신이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서 희연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고마워.”
“그런 말은 친구 사이에 하는 게 아냐.”
유진은 말을 마치고 단상 위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상 위에서는 어느새 사물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
희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언제나 자신한테 친구라는 말만을 했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운동장에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일정이 끝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ㄱ대 풍물패 회원들도 많은 학생들이 자러 들어갔지만 유진, 재수, 민이, 희연은 일정이 끝난 새벽 3시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ㅈ대에 내려온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요를 하나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에취”
희연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재채기를 했다.
“그러길래 내가 아까 들어가서 자랬잖아? 가뜩이나 몸도 약하면서.”
유진은 걱정스런 얼굴로 희연이를 쳐다보았다.
“괜찮다니까. 그냥 감기일 뿐인데, 뭐.”
네 명의 학생은 강의실로 돌아와서 요를 깔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유진과 재수와 민이는 피곤했는지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희연은 잠이 든 유진이의 모습을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고 나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