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에 빠진 고동구 샘터어린이문고 52
신채연 지음, 이윤희 그림 / 샘터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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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에 빠진 고동구』를 다 읽고 나서, 분홍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표지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몰래 본 것 같은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태연한 척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애쓰는 동구를 보고 있으면, 동구에게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나도 모르게, “동구야 힘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동구는 어떤 아이일까, 왜 행운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9 20일이 생일인 동구는 초등학생이다. 2학년이 되었다같은 반에 15초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 동이가 있는의젓한 오빠이기도 하다그리고 박지성 같은 축구 선수가 되고픈 축구 꿈나무다. 1학년 때와 달리 배울 것도 많고공부도 어려워져서 바쁜 동구에게 또 다른 고민이 있다자꾸 같은 반 채린이에게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간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자꾸 눈에 걸린다자신의 쌍둥이 동생 동이와 절친인 채린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동구의 귀를 맴돈다그중에 하나가 마법사 루루 공주에서 말하는 행운의 색이다. 9월 생인 동구의 행운의 색은 분홍이고안 좋은 색은 초록색이라고 하는데동구 주변에 행운의 색인 분홍은 보이지 않고 자꾸 초록색만 돋보여서 자꾸만 마음을 졸이게 된다왜 하필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초록색이고축구 양말에도 초록색이 있고좋아하는 멜론 맛 우유까지 초록색이다이러면 행운이 아닌 불행이 찾아오는데동구는 자신의 행운을 찾아서 고군분투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 때 행운을 생각하지요.”

 


작가의 말처럼 동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채린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행운을 찾아 분주하다채린이가 자기를 좋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니까자신도 모르게 행운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어린 시절 그랬던 적은 누구나 한번 있었을 것이다괜히 자꾸 시선이 머무는 친구괜히 더 크게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그래서 내 머릿속에 이따금씩 톡톡 등장하는 친구 말이다그런데그런 친구는 꼭 나와 친하지 않다그게 문제다

그러면 동구처럼 온갖 행운을 찾게 된다동구는 색으로만 찾았지만행운의 물건행운의 색행운의 숫자행운의 방향 등 각종 행운을 다 찾게 된다그것도 모자란지 이름과 생일로 상대와 점을 쳐보기도 하고지우개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다 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잘 맞는 혈액형 등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곤 했다그때 그 일들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했지만동시에 오랜만에 떠올린 반가운 기억이었다
.

그때 내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지동구가 하는 행동을 읽을 때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을 맞이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과연 동구는 행운의 색과 함께 자신의 행운을 찾게 될까어떻게 이야기가 끝나게 될까하고 말이다


행운은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생겼을 때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기대하는 바가 있지만그 기대하는 걸 내 힘으로 이뤄낼 자신이 없을 때 기대는 것이다어쩌면 자신감이 없을 때기대게 되는 것이다동구를 보면채린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혼자서 그걸 해낼 자신이 없어서 자꾸 채린이가 믿는 마법사 루루공주의 책 속 행운을 믿는 것이다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동구는 알게 된다책이 말하는 행운이 아니라자기 자신을 행운 자체로 만드는 법을 말이다동구의 입으로스스로 행운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법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2학년이니까.

 

초록, 다 먹어 주겠어!’

 

이 말을 하는 순간, 동구 자체가 행운이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다짐 덕분일까, 동구는 행운을 이기고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맛본다.

 

동구는 마법사 루루 공주에게 너 엉터리라고 소리치듯 아주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마법사 루루 공주를 이긴 6번 고동구가 여기 있다는 듯이 말이지요.’

 

그리고 그 당당함이 동구를 한번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행운에 빠졌던 동구지만그 행운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운을 만드는 동구를 보면 나보다 더 훌륭하게 자란 모습에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이렇게 멋진 동구를 채린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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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가게 - 제39회 샘터 동화상 당선작
김윤화 지음, 혜경 그림 / 샘터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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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냄새는 무엇인가요?

 

39회 샘터 동화상 당선작, 《킁킁 가게》는 냄새란 감각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 동화책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을 때, 어떤 생각이 피어오를지 궁금한 이야기였다. 후각이 조금 더 예민한 아이는, 냄새란 감각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담아낸 동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부모님 품에서만 나는 냄새를 맡기 위해 파고들지 않을까 싶었던 동화였다. 나에게 《킁킁 가게》는 꼭 햇볕에 바짝 말린 이불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행복이 피어오르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냄새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또 이 동화를 읽고 난 뒤에 또 다른 사람은 어떤 행복을 떠올릴지 궁금해지는 동화였다. 그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 소재도 소재이지만 아름다운 그림이 한몫했다. 한 장 한 장 주인공 기찬이와 아주머니의 생각으로 파고 들어가게 하는 그림 덕에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야기는 여느 동화와 같이 특별하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소설과 달리 동화는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줄거리보다는 각 페이지에 담긴 것들이 더 중요하다. 짧은 문장들이 어떻게 생각을 자극하는지, 이 점이 중요하다.

 

《킁킁 가게》의 주인공 기찬이는 동네 냄새 가게에서 엄마 냄새가 나오길 기다리는 소년이다. 멋진 미용사가 되기 위해서 떠난 엄마의 기억이 자꾸만 흐릿해져 가는 기찬이는 엄마 냄새가 나오길 기다린다. 냄새를 맡으면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를 것이라 굳게 믿는 기찬이는 엄마 냄새가 나오길 기다린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엄마 냄새 대신 기찬이는 엄마 손끝에서 나던 염색약 냄새를 맡는다. 엄마에게 짙게 배어있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기찬이는 엄마를 기억하고, 떠올린다.

 

냄새 가게에서 기찬이는 한 아줌마를 만난다. 아기를 잃은 엄마이기도 한 아줌마를 만난다. 긴 머리칼이 아름다운 아줌마에게 기찬이는 파마할 것을 추천한다. "머리카락이 무거우면 기분이 처진대요, 우리 엄마 가요."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다음 날 아줌마는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난다. 그다음은 모두가 예상하듯 특별한 관계가 된다.

 

 

서로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에 딱 들어맞지만, 그 결핍의 자리에 두 사람은 놓이지 않는다. 기찬이는 아줌마에게 잃어버린 아기가 아니고, 기찬이에게 아줌마는 엄마가 아니다. 서로의 결핍을 서로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준다. 이 점이 난 좋았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주는 존재가 되는 이야기라서 《킁킁 가게》의 이야기가 좋았다.

 

"엄마 냄새를 까먹을까 봐 그랬어요. 이젠 괜찮아요. 기억할 수 있으니까."
기찬이는 아줌마를 떠올리며 아저씨를 위로했어요.

엄마 냄새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기찬이가 킁킁 가게 아저씨에게 하는 이야기에서 그 관계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기찬이에게 아줌마는 엄마가 아니었다. 기찬이는 엄마가 떠나서 슬프지만 동시에 엄마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줌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기 때문에 슬프면서, 잊을 수 없다.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것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상이 있지만. 기찬이와 아줌마는 그 부족함을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된다.
기찬이에게 엄마를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 잊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 중심에 또 냄새가 있다. "밥 냄새 같기도 하고, 비누 냄새 같기도 한 냄새"가 말이다. 

 

 

알쓸신잡에서 냄새란 감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냄새가 기억을 부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킁킁 가게》를 읽으며 떠올랐다. 냄새는 기억을 피어오르게 한다.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과거 그 순간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음식 냄새, 향수 냄새, 어떤 공간에 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 등..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한순간 어떤 장면들을 피어나게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꽤 행복한 기억들과 닿아 있다. 기찬이 나이 때, 내가 가장 행복했던 그 기억을. 하루 종일 친구들과 정신없이 골목을 오가며 뛰놀다가 집에 돌아와 엄마가 햇볕에 말린 이불 안에서 잠 잘 때, 그때 난 참 행복했다. 아마 《킁킁 가게》를 읽다 보면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킁킁 가게》는 기찬이와 아줌마가 갔었던 킁킁 가게와 닮아 있다.


기찬이와 아줌마는 행복한 기억을 찾기 위해서 그곳에 간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떠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두 사람은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발견한다. 행복을 찾으러 간 가게에서 찾은 행복. 그 행복을 예쁘고 향긋하게 그려낸 《킁킁 가게》를 읽으며 어린 시절 내가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지금 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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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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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득도
에세이

 

 

 

 

마음껏 꿈을 펼치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평범하게 사는 것. 보통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는 요즘이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반장을 해본 적도 있고,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게 해왔다. 대학에 와서는 잘하지 못한 공부 잘해보려고 열심히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살아온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인간관계에도 시간을 많이 쏟았다. 내가 보낸 시간을 하루 단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조금 거시적으로 보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도 난 보통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정확하게 뭔가,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특히 요즘 말이다. 취업과 불투명한 미래가 눈앞에 엄습하는 순간 나는 썰물에 밀려나는 바다처럼 어두운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 느낌은,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였다. 내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 친구의 선배. 나 빼고 다 잘 사는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평범함에도 닿지 못 할 만큼 뒤로 점점 밀려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면 나는 참 별거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보통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노력해도 그 노력이 배신하는 일의 연속일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마치,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고 이야기한다. 열심히 살아도 그 '열심'이 반격하는 삶을 견뎌야 하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그럼 인생을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나만의 인생을 살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앞에 작은 수식어가 빠져 있는 책이다. "남을 위해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열정은 애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반짝 열정을 강요한다. 그 반짝이는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반짝일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유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반짝이지 않아도 된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반짝이지 않고서 버틸 수 없다고 끊임없이 말하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청춘은 없다. 그런데, 저자는 열정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고, 열정이 없는 혹은 반짝이는 열정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알고 있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외면해온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자가발전으로 때로 열정을 만들어냈던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글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어른'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할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소위 열심히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성실하게 한 어른들이 할법한 이야기는 정말 아니다. 처음 그의 글을 읽을 땐, 이 사람 말 읽어도 되는 걸까. 이러다가 이상한 헛바람만 가득 차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했다. 그 걱정과 함께 읽어나가는 데, 그의 툭툭 말하는 이야기가 이상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의 글에는 어른이 지금 이 시대의 청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함께 느껴보고 싶은 "공감"이 깃들어있다.

 

 

세상은 변했는데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읽지 못하고

과거의 가르침만을 준다.
어쩌면 그들도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노력이 잘 안 통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노력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으니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에세이가 좋은 이유는 그 글이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아서다. 에세이는 참 현실적이고 그래서 때로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가 답답한 상황을 상상으로, 희망으로 소설이라는 픽션으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 생각 자체가 흐르는 대로, 내가 느낀 느낌 그대로 표현해나간다. 그리고 그 생각과 느낌이 저자 한 사람에게 멈추어 있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푸념일 수도 있고, 속상해서 부모님께 털어놓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토로하는 것일 수 있다.  저자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어떤 의도를 담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자체를 담아낸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읽다 보면, 사회가 짓누르던 무게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된다. 어차피 모두가 갈피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방향을 잃은 사회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삽질하며 초조하고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조금 여유 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신의 속도를 찾아서 나아가는 여유라는 것을 말한다. 무조건 열심히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제대로 쏟을 수 있는 '나만의 인생'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나만의 방식은, 누군가 인생에서 참고를 얻을만한 걸 찾을 수 있을 수 있어도, 그 과정을 완성해나가는 건 오로지 나만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꿈을 꾸는 건 짝사랑과 같다.
그 사람과 연인이 될 가능성을 따져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어서 짝사랑을 하는 거다.
날 받아줄지 거부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꿈을 꾼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은 꼭 내 일기장과 닮아 있었다. 모든 감성이 나와 닮아 있는 건 아니었지만, 씁쓸한 현실을 느끼게 하는 대목에서 훅 밀고 들어오는 순간 글로 써 내려가고 싶었던 생각이 담겨있다.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먹고사는 게 뭐라고',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 하나하나는  미래, 직장, 꿈, 열정, 친구, 연인, 가족, 어른, 주변 사람들, 하루, 시간, 자존감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쓴 글들이 담겨 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들을 걸어온 저자의 글에 인생을 관통하는 듯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은 이유는 진지한 내용 중간중간에 담긴 일러스트와 확 와닿는 비유 덕분이다. 꿈과 짝사랑을 비유한 건, 아마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의 가슴에 닿는 비유가 아닐까. 가능성을 재보고 쫓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생각할 틈도 없이 꿈을 좇지 않으면 안 돼서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꿈이다. 많은 글들이 좋았지만, 이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는, 아마 한참 '꿈'이란 녀석을 짝사랑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 꼭 맞는 글들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에 담겨 있으니, 각자의 인생의 단면을 발견하며,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힌트를 얻어 가길 바란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삶이란
인생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런 시시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 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시시함을 긍정하는 (오구실)이란 드라마처럼.

 


저자 자름대로 글을 휘리릭 써 내려간 걸 읽으며,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만 주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줄줄이 열정과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의 미덕을 비판하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 본질을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나'라는 존재를 찾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박한 현실은 끊임없이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냉혹함을 드러내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를 잃지 말자고 저자는 말한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라고. 행복도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말해주는 에세이일지도 모른다. 보통에도 못 미치는 것이 아니라, 홀로 독보적으로 존재하기에 소중하다고. 그 소중함을 놓치지 말자고. 위로나 힐링이 아닌, 저자의 담담한 생각만 가지고 이 메시지를 말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건 자기계발보다
중요한 자기 이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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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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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음악 한 곡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 한 사람의 존재 안에 깊이 자리 잡는다. 어떤 음악은 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개인과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 클래식이다. 클래식 음악은 음악으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준다. 말이나 글 없이 악기가 내는 소리로 (합창, 오페라와 같은 장르 제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는 곡을 만드는 작곡가는 곡을 빚는 도예가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 헨델,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말러와 같이 훌륭한 곡이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사람은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그 연주자들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지휘자다.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클래식으로 남아,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온 수많은 지휘자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곡가를 기억할 뿐, 지휘자를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한 지휘자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개성 있는 모습이다. 1935년 생이라고 하는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학생들 중엔, 연주는 확실히 잘하고 내는 소리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데 음악이란 걸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 못 하는 사람도 가끔 있어요. 자질은 있는데 깊이가 없는 거죠. 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선생들이 오디션 때 아주 고민해요. 그런 사람을 받아도 될지 말지.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을 넣고 싶거든. 소리가 그렇게 자연스럽고 훌륭하다면, 여기로 데려와서 음악이란 걸 철저하게 가르치면 그만이니까. 그럼, 그게 '잘 될' 경우에 그렇다는 뜻이지만,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어요. 천성적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사고방식이나 자세는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한마디로 음악계의 거장이다. 그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났다. 이름만으로 작가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그 역시, 문학계의 거장이다. 두 거장이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을 엮은 책이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지휘, 음악을 가르치는 것 등 클래식 음악 자체에서 그 저변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분야에서 거장의 자리로 올라서는 건 쉽지 않다. 몇 세기 전의 음악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했기에 가능했다. 그의 과거가 인터뷰 속 문장에서 툭툭 튀어 오른다. 그 순간을 섬세하게 이끌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리드미컬한 대화법에 두 사람의 대담은 책의 두께 이상의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베토벤. 브람스. 말러. 지휘자. 오페라.
단어들만 나열했는데, 어렵단 느낌이 확~ 들어온다. 클래식이란 장르를 떠올렸을 때, "교양"이란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어렵고 길고 지루한"이란 수식어도 함께 떠오른다. 고전 음악이 좋다는 건 알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오랫동안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클래식보다는 가사가 있는 음악에 더 자주 노출되어 있던 나에게 클래식을 받아들이는 건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 Anastasiya Petryshak)"라는 곡이었다. 이상하게 이 곡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첼로 독주 버전을 가장 좋아하지만, 협연을 한 버전도 좋아한다. 그 무렵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연구실에서 작업을 할 때면 꼭 클래식 음악을 LP 판으로 들려주시곤 했다. 그 이후로 클래식 음악이 점점 귀에 가까워졌다. 조금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만난 것이다. 긴 세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며, 음악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말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걱정을 했었다. 마에스트로가 말하는 음악을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음악의 깊은 심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자와 세이지라는 한 마에스트로가 느끼고 경험한 음악의 세계였다. 거대한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볼 때,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시대에서 음악이 어떤 위치였는지, 음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들려오는 음악이 어떤지.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지휘자로써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지. 오페라에 도전하게 도니 계기가 무엇인지 등. 한 개인이 경험한 음악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비추어 보는 책이었다. 만약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입문서나, 음악 평론서를 기대했다면, 잘 못 골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와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한 마에스트로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는지, 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래서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음악을 전해주길 바라는지"가 담백하게 담겨 있다.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한 책들은 정말 많이 있다. 하지만, 그 클래식 음악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것도 본인의 목소리로 말한 책을 찾아보기는 더 어렵다. 이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다른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표정이나 손놀림으로 길게 여백을 둘지, 짧게 둘지 지시하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꽤 많이 달라져요.

지휘자는 어떻게 하자는 판단을 그때그때 즉석에서 하는 겁니까?

음, 뭐, 그렇죠. 계산해서 한다기보다, 어느 정도 지휘 경험을 쌓다 보면 여백 두는 법을 알게 돼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 게 어떻게 해도 안되는 지휘자가 의외로 있거든. 그런 사람은 아무리 오래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요.

눈빛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물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지휘자는 연주자한테 사랑받죠. 연주자 입장에서도 편하거든.

 

지휘자가 어떤 일을 하고, 일을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듣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 심정을 대변한 말을 한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요. 혼자서 소설 쓰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오케스트라는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이끌어 조율하는 지휘자는  곡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이 각각 연주를 할 때,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곡과 곡 사이에 어떻게 여백들 넣을 줄 알고. 이 여백에 따로 곡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차이를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대신 '음악을 끌고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음악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의 음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이야기하는 단위가 굉장히 작은 부분이어서 좋았다. 어떤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의 몇 번째 악장의 브리지 부분이 아쉬웠다고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정말 세밀한 단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휘자의 눈빛과 손끝에서 다른 음악이 피어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일상을 넘어 삶 속에 깊게 음악과 일치되어 있는 오자와 세이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어떤 한 곡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곡이 만들었을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과정 중에 연주된 한 곡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먼 듯 가까운 듯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대담을 정리하고, 자신과 오자와 세이지의 공통점을 다음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우리 둘 다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는 점이다. 음악과 문학, 영역은 달라도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자기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 일을 통해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잊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상이다.


둘째는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굶주린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더 깊이 추구하고 싶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는 게 일하는 데 있어, 또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모티프다. 오자와 씨의 언동을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의미에서(말하자면) 탐욕스러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납득은 한다.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족하지는 않는다. 좀 더 훌륭한, 좀 더 심오한 것을 할 수 있을 터다 하는 감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시간이며 체력 같은 제약과 싸우며, 이뤄내겠다는 결의가 있다.


셋째는 ...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끈기가 있고, 터프하고, 그리고 고집스럽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닥쳐도, 설령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받는 한이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 원래부터 꾸밈없는 성격에 늘 농담을 입에 달고 살고, 그런 한편으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지만, 그런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매우 확고하다. 일관되고, 흔들림이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밝힌 이 세 가지는 쌓여가는 글의 양과 들어온 클래식 음악에 따라 공감을 할 수도 있고,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다시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베토벤에 대해 또다시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음악은 혼자서 감상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감상의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전체적으로 오자와 세이지가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단한 작은 질문들이 탄탄하고 촘촘하게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세계를 여는 데 기여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문외한이라고 고백한 뒤, 그의 말과 그가 들려준 음악을 듣는 내내 그가 집중하고 있다는 게 글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말이 겸손한 것이란 걸 오자와 세이지가 확인해준다. 자신도 몰랐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엄청난 양의 추억이 되살아나게 만들고, 아주 정직하게 말이 나오도록 이끌어낸" 그는 훌륭한 기자 혹은, 대담자였다.

 

길게 감상을 밝혔지만, 한마디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독특하고 재미있게 음악을 적은 책이다. 그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읽으면 더 훌륭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말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그가 말한 곡을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버전으로) 들었다. 그 곡과 함께 음악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 클래식 음악의 담장이 조금 더 낮아진 것 같다. 음악과 함께 할 때 더 좋은 책이 바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다.

 

귀와 생각이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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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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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려운
슬픔에 서툰
혼자가 힘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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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할 때 굳게 믿는다. 이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헤어지는 일은 오지 않을 거라고. 만약 이 확신 없이 사랑을 시작한다면, 그건 유효 기간이 정말 정말 짧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굳게 믿었던 사랑도 안타깝게 마지막의 순간이 온다. 사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 보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별의 순간에 이 사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별을 말하는 당사자도, 이별을 듣는 당사자도. 모두에게 말이다. 사랑은 함께 있어 더 행복하고, 좋았는데. 이별은 나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 감당하기 힘들고, 그래서 회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유예를 선택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제대로 헤어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을 끝내는 건 차 힘들다.


『사랑이 끝나고 더 좋아졌다』는 모두가 어려운 이별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들려주는' 책이다. 이별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저자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렵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 이별이다. 시작할 때는 필연적이지 않았던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자꾸 다른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저자  아오이 씨는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들려준다'. 이 책의 핵심은 들려주듯이 한다는 데 있다. 알려주거나, 가르치거나 하는 것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의 이별 상담을 해온 작가가 이별과 가까워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이별 앞에선 사람들의 감성에 파고드는 이야기가 많은 지도 모르겠다.

 

 


쉽게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에 대하여 by.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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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협박의 도구가 아닙니다.
단 한 장밖에 없는 마지막 카드예요.
이별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만남도 가볍게 여길 거예요.
계속 참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만남을 지속할 이유는 더더욱 없어요.

때로 행복이란 헤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거예요.


 

 

자신을 굽히고 낮춰야만 지속할 수 있는 연애 따위 과감히 버리는 게 나아요.
이런 사람이 꼭 있다. "이럴 거면 우리 헤어져!"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 물론 그 말에 진심 100%를 담았을 때도 있지만, 사랑을 확인하고픈 마음에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만나면 정말 힘들다. (더 솔직한 표현을 쓰고 싶지만..) 저자의 말처럼 헤어지는 것이 최선이란 걸 알지만, 자꾸 차선도 아닌 최악을 잡는 사람들이 꼭 이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사람을 잊는 방법에 대하여 by.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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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했던 사람을 잊으려면 그에게서 눈을 돌릴 게 아니라 그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또렷하게 잘 보이는 거리까지 물러나서요.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사랑이 정말 끝났을 때에 생각보다 씁쓸했던 그 감정이 떠올랐다. 좋아했던 사람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못해서 그 주위를 한참 맴돌았던 적이 있다. 어느 순간, 가까이서 다시 그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았을 때 알았다. 이제 이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미련을 가진 사람도 아니구나. 이제 정말 좋아했었던 사람이 되었구나 싶은 감정을 받았다. 제대로 이별을 하기도 전에 멀어지면 이상하게 더 내려놓을 수가 없다. 차라리 제대로 딱 보고, 과거형으로 두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서 by.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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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때우기 위한 연애는 외로움의 원인인
전 애인의 환상을 쫓기 마련인지라
무의식중에 전 애인과 비슷한 타입을 고르게 됩니다.

반면 전 애인과 비슷한 이상형을 또다시 찾는 사람은
사랑에 조건을 걸고 있는 셈이에요.

 

 

 

이 말이 쉽게 동의가 되지 않지만, 이상형이 계속 비슷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도 예전 사람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건 정말 좋지 않다. 그건 그 사람과 함께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감정에 빠져있지만 그 대상은 이미 예전에 좋아했지만, 이제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랑을 위하여 by.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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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고
혼자서도 잘 생활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비로소 연애로부터 진정한 홀로서기가 가능해집니다.


 

 

이별을 한 사람에게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홀로서기 하는 방법. 제대로 된 이별! 이별의 정석은 이런 것이다. 지나간 사랑을 훌훌 털 때, 그다음 연애가 온다. 잊으려고, 외로워서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그런 연애 말이다 물론 그 연애를 할지 말지를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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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조언을 잘 듣는 사람을 난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사실 나도 그렇다. 원래도 다른 사람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닌 내가 더 말 안 듣는 게 연애 관련된 모든 것이다. 부모님 조언, 친구 조언, 언니 오빠, 동생들의 조언 모두 다 안 듣는 데, 책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래서, 연애 조언을 하는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난 말을 참 말 안 듣는 걸 아니까. 아무것도 없는 지금이라서, 『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를 조금 한발 떨어져서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 좋아하고 있었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제대로. 토를 달며 책장을 대충대충 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별'을 말하는 책을 제대로 보고 나니. '이별' 역시 또 다른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할 때 종종 놓치게 되는 '나를 사랑하는 것'. 놓치지 말아야 할 이걸, 꾹꾹 짧은 글에 담아 보내는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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