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책을 다 읽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왕십리CGV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책을 빨리 읽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예전에 <1Q84>를 읽었을 때는 3권이긴 했지만 훨씬 오랜 시간을 하루키 월드에서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일찍 하루키 월드가 끝나버렸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와 <덩케르크>를 본 감상 중 공통점은 '굉장히 재밌게 잘 봤지만 예전 작품들이 더 좋았다' 라는 점입니다. 다시 언제 그들의 새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만해도 기분좋고 설렙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아마다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꽤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말이야."

 "그건 좀 위험한 생각인지도 몰라."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슨 소설에 썼지."

 아마다는 한동안 내 말을 생각했다. "그 말은 '아무리 범용할지라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는 뜻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p305

 

 저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범한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대체불가능합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유즈가 말했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데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시 말해 나는 언뜻 자유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 몰라. 임신해버린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p581

 

 공감가는 말입니다. 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선택하는 것이 나의 자유의지대로 선택하는 것인가. 지나놓고 보면 나에게 과연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라." 내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날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p584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소실된 사실은 딱히 아쉽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그 초상화에 도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보다 확고한 인간으로, 보다 큰 화가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한번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는 기분이 들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방식과 전혀 다른 각도로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의 초상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 그림은 어쩌면 나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실현된다면,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에게서 귀중한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p592

 

 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장편 소설을 쓰는 사이에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 번역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장편 소설이 쓸 준비가 되면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하루키씨가 다시 재충전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합니다. 그 작품이 그의 또다른 <기사단장 죽이기>가 되기를.

 

  그래도 나는 멘시키처럼 되지 않는다.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가 자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밸런스 위에 자신의 인생을 구축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찮은(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하기 힘든) 작업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다와라 근교의 산머리 집에서 살면서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통해 배운 점이었다. -p597

 

  이 문단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하루키가 소설의 형태를 빌려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점. 그것을 저도 믿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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