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하루키의 장편. 행복한 독서였다. 전율이 흐르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역시 최고의 이야기 꾼, 문장가이다. 


 


 그렇잖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늘어놔도 되는 상대, 그 말에 집중해서 귀기울여주는 상대가 있다니, 그런 일은 태어나서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정말이야. -p59


 공감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상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늘어놔도 되고, 그 말에 집중해서 들어주고 그런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대가 되어주고 싶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 거기 있던 게 결코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세계의 광경이었다는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지.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그럼에도 역시,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네. 그렇기에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는 셈이고." -p102  


 전쟁에서 돌아온 노인은 아름다운 여인의 망령을 본다. 계속 그 여인의 왼쪽 얼굴만 보다가 힘을 짜내서 여인의 얼굴 전체를 보게 된다. 위는 노인이 본 여인의 얼굴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노인은 무엇을 본 걸까?



  열일곱 살이고, 사랑에 빠져 있고, 그날은 5월의 청명한 일요일이니 당연히 내게 망설임 같은 건 없다. -p109


 왠지 이 문장의 울림이나 리듬이 좋았다. 기분좋은 문장이다.



 p179~180


 '나' 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벽에 둘러쌓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그녀와 함께 매일 꿈 읽기 작업을 하고 매일 밤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는 삶과 벽 바깥의 세계에서 경험한 그녀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삶. 그러나 벽 바깥에서는 그녀를 만날 수 없다. 


 당신은 두 가지 삶 중에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이 아이러니 속에 하루키 소설의 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삶이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살아나가야만 한다는 것. 과거의 삶, 가상의 삶에 머무르고 붙잡혀 있고 싶지만 우리의 깊고 깊은 본능은 우리의 그림자는 살고 싶어 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불합리할 만큼 갑자기 사라지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얼마나 격렬하게 당신의 마음을 쥐어짜고 깊숙이 찢어놓는지, 당신의 몸안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흐르게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p182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어떤 일인지 나는 안다. 하루키의 문장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동시에 내 안에는 일관된 두려움이 있었다.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듣지 못하고 영문도 모르는 채 단번에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다. (중략)

 무슨 일이 있어도 또다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고독하고 조용하게 사는 편이 나았다. -p193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는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상당히 근사한 표현이다. 

-p292


 왠지 이 부분이 하루키의 자화자찬인 거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확실히 상당히 근사한 문장이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런 애깁니다.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더욱이 그 사랑이 어떤 이유로 도중에 뚝 끊겨버린 경우라면요. 그런 사랑은 보인에게 둘도 없는 행복인 동시에, 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시겠습니까?" -p449


 


 소년은 이 현실세계와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다. 이 세계에 진정한 의미로는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다. (중략)


 나는 무심결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 지상 어딘가에 단단히 이어져 있을까?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을까? 나는 블루베리 머핀을 생각했다. 역 앞 커피숍 스티커에서 흘러나오는 폴 데즈먼즈의 알토색소폰 음색을 생각했다. 꼬리를 세우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야위고 고독한 암고양이를 생각했다. 그것들은 내 정신을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붙들어매주고 있을까? 아니면 너무도 하찮아서 논할 가치도 없는 존재들인 걸까? -p535


 소년은 현실 세계와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미련 없이 벽에 둘러쌓인 도시로 떠난다. 우리를 현실세계와 이어주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684


 소설 속 벽에 대해 말해주는 문장 같았다.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는 벽. 하지만 그 벽은 불확실하다. 애초에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건, 왜냐하면 저는 원래 당신이고, 당신은 원래 저니까요." -p720


 소년이 등장했을 때 왠지 저 소년이 하루키의 분신 혹은 소설 속 '나'의 분신일 거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하루키 소설을 많이 읽어서 눈치가 빨라진 걸까?


 


 













  

 <빠빠라기>는 소설 속에서 언급된 책이다. 사모아 어느 섬의 촌장이 20세기 초 유럽을 여행한 경험을 고향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촌장이 이야기하는 형식을 빌려 독일인 저자가 쓴 순수한 픽션이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이 방의 이 작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음으로 그렇게 원하고, 그대로 불을 끄면 돼요. -p754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간단하면서 어렵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작품을 이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 쓸 수 있어서(혹은 완성할 수 있어서)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p766 


 하루키는 40년 전에 쓴 이야기를 다시 고쳐썼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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