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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 이야기 4 - 무인정권의 몰락과 삼별초 항쟁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고려 무인 이야기.
KBS TV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비추어진 경인년 반란으로부터 약 1백년 동안 왕실을 대신하여 고려를 지배해 왔던 무인 정권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 4권은 그런 무인 정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몽항쟁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최씨 정권 이후의 김준 및 임연과 삼별초들의 이야기를 중심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고려 무인 이야기 3권은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통학하는 버스 안에서 다른 급우들이 다 자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깨어서 읽을 정도로 무척 좋아했던 내용이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책에 옮긴 정도를 벗어나, 사서를 해석하는 저자의 감각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권은 3권이 발매된 지 거의 2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아 뒷소식이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자가 4권을 쓰는 것을 잊었나, 싶어서 매우 안타까웠는데 다행히도 2005년에 나오고야 말았다. 자주 가던 동네 서점에서 이 책, 고려 무인 이야기 4권이 나온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워서 바로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사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4권은 약 28년에 걸친 고려의 대몽항쟁, 그 뒷부분을 다루고 있다. 국왕을 대신해 고려를 다스렸던 최씨 무신 정권은 강화도에 틀어박혀, 백성들이 몽골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광경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던 파렴치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최씨 무신 정권은 뜻밖에도 자신들이 종으로 부려오던 노비 출신 장군인 김준의 반란으로 무너지고 만다. 역사에 보면 군사 독재 정권은 내부 반란에 의해 붕괴되는 경우가 많은데, 고려 시대에도 예외는 없었나 보다.
상전인 최씨 가문을 멸한 김준은 국왕의 묵인 아래, 약 10년 동안 최씨 가문을 대신해 고려의 전권을 틀어 쥐었으나, 그 역시 최씨 가문처럼 고려 본토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끝까지 거부했다. 몽골과의 항전을 명분으로 내걸어 강화도에 수도를 옮겼는데, 다시 원래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간다면 무신 정권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 때문에서였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준은 자기가 상전인 최씨 가문한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부하인 임연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김준을 죽인 임연과 그 아들 임유무는 김준보다 더 수완이 없었는지, 반란을 성공시키고서도 고작 1년 만에 죽었다.
왕실을 핍박했던 무인 정권이 사라지자 고려는 다시 권력이 국왕에게 돌아오는 왕정복고를 이룬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고려의 왕정복고는 외세인 몽골제국의 힘을 빌린 결과였다는 것이다. 임연이 죽은 이유도 몽골제국의 압력을 받고 전전긍긍하다가 그랬던 것이니.
이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으니 고려 땅에는 평화가 올 법도 했지만,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지금까지 최씨 가문과 김준 및 임연을 도와 반란을 성공시켰던 군사 집단인 삼별초가 자신들은 몽골에 굴복한 왕실을 따를 수 없다면서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왜일까?
이제까지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나 혹은 흔한 대중용 인문 역사 서적에서는 이 삼별초가 일으킨 난을 가리켜 두 가지로 해석해 왔다. 1. 외세인 몽골에 대한 적개심과 고려를 지키려는 애국심에서다. 2. 몽골과의 평화가 오자, 이제까지 몽골에 맞선 항쟁을 주도해 온 자신들의 권력과 생명이 위험해질까봐.
하지만 저자는 이런 통설들을 강하게 부인하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삼별초는 무인 정권의 시녀 노릇에서 벗어나, 진정 나라와 왕실을 지키는 군대가 되고 싶었으나 고려 왕실은 몽골과 손을 잡아 그런 삼별초들의 바램을 저버렸다. 그리고 고려 왕실이 삼별초의 명단을 몽골에 제출한 것은 이제까지 알려진대로 삼별초들을 처벌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미 몽골제국에서 기획하고 있던 일본 원정에 삼별초 병사들을 동원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삼별초 병사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외국 땅(일본)으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피하고자 반란을 일으켰고, 고려 왕실마저 부정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왕을 내세워 독자적인 국가를 꿈꾸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또한 삼별초가 봉기를 일으키자, 그에 가담한 백성들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런데 삼별초에 가담한 고려 백성들 거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핍박받던 하층민들이었고, 반면 부와 권력을 누리던 상류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삼별초가 단순한 무장 군인들의 반란이 아닌, 일종의 민중 항쟁적인 성격도 띄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이런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까지 모두 밝혀내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어서 더욱 기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인 젊은 시절을 알차게 보내게 해 준 친구인 고려무인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은 첫번째 작품과 마찬가지로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이런 좋은 책들을 더욱 자주 만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