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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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발표한 데뷔작인 "차일드 44"로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포함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맨 부커' 상 후보까지 올랐던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09년에 발표한 "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The Secret Speech)"입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구소련의 MGB 요원으로 활동하다 살인수사과를 창설한 수사관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인쇄공이 인쇄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살인수사과를 지휘하는 "레오 데미도프"는 칼에 찔려 죽은 인쇄공의 시체를 보고 살인이 아니라 자살임을 알게 됩니다.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장래가 막힌 인쇄공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상처를 낸 것이었습니다. "레오"는 그 인쇄공이 무엇인가를 인쇄하던 도중 자살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GB 신입 요원 시절 상관의 연락을 받은 "레오"는 그가 한 동안 자신이 체포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받은 사실을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 "레오" 앞으로 어떤 문서가 배달됩니다. 그것은 바로 "스탈린"이 죽은 후 서기장이 된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가 비공개 회의에서 발표한 '비밀 연설문'이었습니다.


"사실일 리가 없어."

어떻게 이게 사실일 수가 있어? 하지만 이 문서는 국가의 도장이 찍힌 편지와 함께 오직 국가만이 아는 정보, 출처, 인용문, 참조 번호를 담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믿었던 침묵의 공모가 끝난 것이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연설문은 사실이었다.


인쇄공과 직장인인 두 명의 남자가 자살을 합니다. KGB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살인수사과를 만들어 지휘하던 "레오 데미도프"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두 명 모두 전직 MGB 요원이었고 죽기 얼마 전부터 자신들이 체포한 사람들의 사진들을 배달 받았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살한 날 그들에게 보도금지가 된 '비밀 연설문'이 배달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레오"에게도 그 '비밀 연설문'이 배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는 오래전 자신이 신입 MGB 요원이었을 당시 겪었던 어떤 사건을 기억해내고 당시 총대주교였던 사람을 찾아가지만 "레오"의 눈 앞에서 살해당합니다. 일반 사회에는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비밀 연설문' 때문에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레오"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지우고 싶었지만 복수의 대상이 된 "레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체포한 수 많은 사람들이 보내졌던 57수용소로 가기 위해 죄수로 위장해서 볼셰비키 감옥선에 몸을 싣습니다.


레오는 한때 공산체제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가족에 대해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비전은 더 축소되었고, 덜 추상적이 됐다. 이제 그의 유토피아는 전 세계가 아니라 단 네 사람이 속한 가족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살인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구소련에서 연쇄살인범을 잡은 "레오 데미도프"는 KGB를 거부하고 조력자 "티무르 네스테로브"와 함께 살인수사과를 창설하여 범죄를 수사합니다. 사상에 눈이 멀고 거짓에 속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진짜 범죄를 수사하는 "레오"에게 언젠가는 찾아와야할 과거의 유령이 찾아옵니다. 그 무렵 "스탈린"이 죽고 난후 "흐루쇼프"가 발표한 '비밀 연설문'으로 소련 사회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절대 신이자 법 이었던 "스탈린"이 저지른 악행을 인정하고 비판하는 이 연설문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비밀로 부쳐져야 했지만 유출이 되어 소련을 넘어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은 이제 보복과 비판을 두려워 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궐기할 조짐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레오" 자신과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인 가족까지 위험하게 되면서 "레오"는 모스크바에서 감옥선을 타고 서태평양을 건너 콜리마에 있는 57수용소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험난한 여정에 따르는 엄청난 고통을 "레오"는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게 자신의 과오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험난한 "레오"의 고난과 활약이 중심이긴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레오"와 그가 입양한 딸들과 아내 "라이사"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첫째 딸 "조야". 전작에서 국가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눈이 멀어 명단에 적힌 사람이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사람들을 체포했던 "레오"가 그 믿음의 모순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 때문에 죽게된 부부의 두 딸들을 입양하고 절대적으로 사랑을 쏟지만 자신의 부모가 죽는걸 목격한 큰 딸 "조야" "레오"가 사랑을 쏟을수록 증오를 키웁니다. 그가 상처받아야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것처럼 잔인하게 구는 "조야"의 행동을 알면서도 "레오"는 묵묵히 큰 딸을 위해 모든 걸 견디어 내며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칩니다. 그의 행동은 "레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아내 "라이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자신이 체포한 무고한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길이기도 한 것처럼 처절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공산체제의 실체를 깨닫고 그 공허함을 사랑으로 채우려는 미련하고 헛된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세계만방에 우리가 진정한 괴물이란 걸 보여주고 있는 거지. 나도 거기서 제외될 수 없고.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든 우리 모두가 괴물인 거야. 난 지금 다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야. 난 지금 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나 암묵적으로 공모한 수백만 명을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런 면에서 유죄인 사람이 무죄인 사람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려해본 적 있나? 무죄인 사람이 소수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스탈린"의 살인,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문'이 불러들인 파장 속에 펼쳐지는 "레오"의 험난한 여정을 담은 이 작품 "시크릿 스피치"는 전작 "차일드 44"와는 다르게 미스터리 부분 보다 스릴러적인 부분이 훨씬 큰 작품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습니다. 어떤 부분은 "차일드 44"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격변하는 구소련 사회 속의 특권층이자 권력층이었던 한 개인의 변화와 속죄를 이렇게 멋지게 써낼 수가 있다니! 이건 주인공 "레오"가 구원을 받느냐 마느냐가 아닌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한 그의 힘겨운 노력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이야기를 스릴러란 틀에서 이렇게 마음껏 펼쳐내다니, 작가 "톰 롭 스미스"는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랜만에 정말 뛰어난 전작에 부족함이 없는 후속작을 만나서 즐거운 독서를 했습니다. 물론 스릴러 작품이기에 오락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하긴 합니다만 그부분에서도 전혀 부족한 부분이 없습니다. 문장, 플롯, 서스펜스 모두가 훌륭합니다. 오히려 너무 성공한 "차일드 44"의 그늘에 너무 가려져 있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레오, 우린 나라의 생존을 위해 침묵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건 스탈린이 도를 넘었는지 넘지 않았는지와는 아무 상관없어. 스탈린은 도를 넘었지. 당연히 넘었지.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거야. 그런데 우리의 권력은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거든. 우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철권통치를 해야 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시민들이 전과 같이 우릴 사랑해주길 바랄 수는 없지. 앞으로 우리가 사랑받을 가망성은 없으니까, 반드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거지."


영화 "차일드 44"가 개봉되는 시기에 맞추어 이 작품 "시크릿 스피치"와 삼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이전트 6"가 동시에 출간 되었습니다. 이 삼부작 완결되길 3년 이상은 기다린 것 같은데 영화화 되는게 이렇게 고맙기는 오랜만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삼부작 마지막 작품인 "에이전트 6"는 정말로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작품이라는고 하던데, 이 글을 마치고 바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작가 "톰 롭 스미스"가 써낸 네 작품 중 세 작품을 읽고 나니 이젠 이 친구에게 확고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출간하는 즉시 사서 읽어도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겠다는 믿음 말입니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사라진 후 격변하는 소련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일급 스릴러인 "시크릿 스피치" 추천드립니다.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이 기회에 삼부작을 연달아 읽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이제 "에이전트 6"를 읽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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