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 영어, 미국화, 세계화 사이의 숨은 그림 찾기 라면 교양 4
문강형준 지음 / 뜨인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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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한 70대 노교수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7세의 미국 아이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우리는 상식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상품을 파는 기업의 입사 조건이 영어 점수라면, 입사 후 외국인을 만난 적도 없고 영어를 쓸 일도 없는 영업사원이 승진을 위해 퇴근 후 영어회화 학원에 다녀야 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과연 경쟁력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영어 열풍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을까?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의 저자는 언어의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이 열풍의 진앙을 파악해 들어간다. 언어는 최후 사용자의 죽음이나 급격한 환경 변화 등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식민지 한국이나 남미, 아프리카의 예에서 보듯 지배국의 강제력에 의해 사라지기도 한다. 현대에 있어선 경제구조의 변화가 언어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예컨대 국가가 수렵, 채집 부족의 터전을 체벌하여 농지를 조성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을 유입시킨다면 이 부족은 생존을 위해 농부가 되어야 하고 이로써 그들은 농사짓는 이들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가깝게는 인터넷 용어나 항공 용어가 그렇다.

영어가 세계어로 군림하게 된 것은 영미 제국의 팽창 정책에 이은 미국식 경제 구조의 강제적 이입 때문이다. 힘이란 것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미국 내에 일고 있는 미국의 쇠퇴 예상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세계어란 것도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언어가 가진 권력 관계가 국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 달에 80만 원을 호가하는 국제중 대비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초등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한 한기 480여 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중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구분되는 사회에서 영어 실력으로 경쟁력을 가늠하겠다면 경쟁이란 건 해보나 마나 아닌가. 이럴 때 영어는 학식도 학문도 아닌 권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결국 소통의 편의,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표현은 미국식 경제 구조를 모방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계에는 미국식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리핀, 싱가포르, 자메이카, 인도 등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는 나라는 영미 말고도 많다. 그러나 한국인이 생각하는 영어는 미국식 생활방식을 빼고선 말할 수 없기에 밥 말리 식으로 더듬거리는 영어를 영어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드물다. 소통과 경쟁력이 영어 교육의 목표라면 백인 미국의 영어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한국식 영어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어로도 회의 진행이나 토론에 능숙한 사람을 만나 보기 어려운 현실에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논의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슬픈 외국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어로 노래를 못 하던 사람이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잘 부르게 될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못 부르는 노래라도 영어로 불러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영어가 수단이 아니라 물신이 되어 버린 사회에서 영어를 한다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일까? 저자는 영어에 제자리를 찾아 주자고 말한다. 그 첫 단계는 사회적 문제제기다. 강화도조약을 Kang-hwa island treaty라고 가르치려 한다면 교육 당국에 교육 효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이미 권력의 도구가 되어 버린 영어를 학문과 문화 소통을 위한 언어로 되돌려 놓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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