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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16년 영국에서 태어난 로알드 달은 28세 때 동화책 <그렘린>을 발표하며 작가의 이력을 시작한다. 1964년 발표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두 번이나 영화화됐으며, 1988년 발표한 마틸다는 영국에서만 단기간 50만 부가 팔리면서 텔레비젼과 비디오 게임 앞의 아이들을 책 앞으로 끌고 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처녀작인 <그렘린>을 두고서도 자신의 첫 동화는 그가 아버지가 된 후 쓴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라 한 것은 그의 집필 의도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맛>은 그의 단편소설집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꽁트,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완결된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작품의 재미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보다 강렬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치가 반전이다. 반전을 위해서는 작품의 모든 재료들이 시작부터 치밀하게 계산되어 배치되어야 한다. 뒤집힌 결말과 엉뚱한 결말과는 전혀 다르다. 반전은 어디까지나 맥락 안에서의 뒤집힘인 까닭에 터무니 없는 결말을 두고 반전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개의 터무니 없는 반전 혹은 어이없는 결말은 첫째가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겠지만, 글을 쓴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이 애초부터 추리소설의 양식에 적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문학상을 거머쥔 박민규의 <카스테라>의 수록작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를 보면 알고 보니 지구가 개복치였다는 게 반전의 전부다. 그것은 단지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했을 다름이다. '지구는 고등어'가 아니라 어째서 개복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절대 불가능하다.
표제작 <맛>은 물론이고 처음에 실린 <목사의 기쁨>에서의 그 소름끼치는 뒤집힘,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가 예상하고 바라게 되기 마련인 결말에서 슬쩍 빗겨나면서, 나중에는 설마설마하며 재촉해 책장을 넘기다가 "오, 안 돼!"라고 비명을 지르게 하는 징글징한 기쁨들이 책 한가득이다. <하늘로 가는 길>의 마지막 서너줄이 주는 재미는 얼마나 잔인한지, 그러면서 통쾌하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능력은 로알드 달이 얼마나 능청스런 이야기꾼인지 가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