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바람대로 독학으로 과학을 익힌 누리는 머리를 식힐 겸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을 잃고 과학의 성에 이른다. 누리가 성을 빠져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성안의 과학 고수들과 대결을 벌여 모두 이겨야만 한다. 속도의 고수 스피더스, 작용·반작용의 고수 모멘토, 빛의 고수 옵티마. 각 단계별 고수들이 문제를 내고 누리가 문제를 푼다. 고수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내는 문제는 중고등학교 수준의 공식들이다. 따라서 중고등학교를 이미 졸업한 사람에게는 벅찬 문제들이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문제가 나오는 족족 풀어 젖히는 누리가 ‘스테이지 클리어’ 뒤에 설명을 해줘야만, 아 그런가 보다 싶다.
제목에서 표방하듯 『안티 사이언스 랜드』는 진지하지 않게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게임처럼 단계별 수행을 해 가며 진행되는 방식은 친근하기도 하고 부담도 없다. 문제는 각 장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과학 문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독자층과 해당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전개 방식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독자층이 다르다는 것이다. 핵심 내용이 10대 중후반 이라면, 핵심을 도입하기 위한 이야기 설정은 10대 초반이다.
다루는 내용이 과학이되 진지하지 않은 과학 이야기라고 하니 생활 속의 과학,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엄청난 과학적 비밀이 들어 있었던 일상 습관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과학이라는 주제만 놓고 봤을 때는 10대에서 멀어질수록 읽기가 거북해질 터, 일반 성인 독자들까지 고려했다면 이 책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 접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전개 과정은 10대가 아니고선 참아줄 수 없을 정도다. 애초부터 독자층을 그렇게 상정했으니 아쉬울 것 없다고 한다면, 아무렴 그러시던지.
『안티 사이언스 랜드』가 개론서에 가깝다면『야누스의 과학』은 과학과 과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 놓이는가를 다루는 과학사 책이다. 한 과학자가 새로운 합성 가스를 만들어내고 프레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티 사이언스 랜드』라면 어떤 화학 공식에 의해 이 가스가 만들어졌고, 이 공식을 적용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또 다른 가스는 없는지 설명할 것이다. 반면 『야누스의 과학』은 이 가스가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상용화되었을 때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과학에 대해 묻는 것은 공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가 아니라, 이 공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이 공식을 왜 필요로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서 프레온 가스가 만들어지는 화학식은 중요하지 않다. 이 가스가 미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적 영향들을 대하는 사회 각계의 입장 차이, 첨예한 대립, 의견 조율과 타협 등 과학 자체보다 더 어려운 과학 저변의 문제가 이 책의 중심이다.
백군이 위성을 쏘아 올리자 이에 질세라 청군이 달에 깃발을 꼽는다. 금방이라도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소개팅이 성사될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운동회 끝났으니 체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달리기하다 삔 다리에 달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어서 배아줄기세포가 완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단한 발견이 되기 위해선 사회적 환경과 부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달 표면의 생김새나 프레온 가스가 만들어지는 공식의 순수한 가치와 별개로 그것이 내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지금의 과학이다.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이러한 일반 인식이 어떻게 굳어지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 안에는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다. 게다가 질문들 대개가 딜레마다. DDT를 사용하면 환경이 오염되어 인간에 직접적 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늘어난다. DDT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프리카 땅에서는 당장 수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것이다. 여기서 과학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인간의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고 말하는 것도 과학자고 지구온난화는 인간과 관계없이 진행된다고 말하는 것도 과학자인데 그럼 19살 이후로 과학하고 담쌓고 살아온 사람들은 대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오늘은 버스 타고 내일은 자가용 탈까, 종이는 분리수거하고 페트병은 그냥 버릴까?
사회적 조건 아래에서 과학이 과학으로 인정받거나 가설로 그치거나 하는 과학적 검증의 과정, 의료의 목적으로 복제된 동물을 생명체로 볼 것이냐 의료 도구로 볼 것이냐 하는 윤리적 선택의 과정,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갈등과 혼란으로 이야기로서의 과학은 풍성해진다. 그런 면에서 『안티 사이언스 랜드』와 『야누스의 과학』은 과학책을 읽는 두 가지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완성, 『안티 사이언스 랜드』, 함께읽는책, 값 13,800 원.
김명진, 『야누스의 과학』, 사계절, 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