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쑥꽃」 외 5편으로 등단하여 한국 농민시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던 홍일선 시인의 신작 시집 『흙의 경전』이 출간되었다. 1992년 두 번째 시집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를 출간하고 16년만의 일이다.
홍일선 시인은 데뷔 이래 일관되게 우리 농업과 흙, 자연에 대한 애정을 시에 담아 왔으며 <대운하 반대 문화예술인공동연대> 공동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실천해 왔다. 현재 경기도 여주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홍일선 시인은 이번 시집에 농업과 농민, 흙과 대지, 인간과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고 있다.
삶은 대자대비한 땅
홀로 찾아가는 외로운 농업
그믐달이 강물의 영혼을 더 푸르게 해주어
별빛이 먼 길 인도하여 주시면
그대 근원을 향한 발걸음
아무데서 함부로 멈출 수 없으리니 (「흙의 경전」 일부)
농사를 짓고 사는 외로운 이들이 끝내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육체의 가난이 인간 내면의 근원을 향하는 걸음이 될 것이라 시인은 확신한다. 따라서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영혼을 맑게 하며 살아간다. 어머니 대지로 돌아가고 있는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순수하고 순박하다.
홍일선 시인이 보여주는 시 정신과 흙, 농민에 대한 사랑은 흙이 단지 흙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의 모태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볍씨가 품은 생명의 싹은 어두운 시대 시인이 감당해야 할 소명에 대한 내적고민이기도 하다.
홍일선, 『흙의 경전』, 화남, 값 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