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위한 선언 - 백의신서 42
알랭 바디우 지음, 이종영 옮김 / 백의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철학하면,,,

철학이 뭔지도 모르고 철학 공부하는 사람 많다. 너무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수학이 뭔지 모르고 수학 잘하는 사람 많다. 단지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한다. 철학이 뭘까? 더구나 철학자가 어디 한 둘인가. 물리학은 그래도 걸출한 몇 명만 알면 맥을 잡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포스트구조주의에 속하는 사람만 5명도 넘는다. 거기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수가 만만치 않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철학자마다 하는 얘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 사람은 이게 철학이라 하고 저 사람은 .. 등등. 저마다 다르게 철학을 읊조리니 헷갈린다. 철학의 본질이 있기는 있나? 그냥 각 시대에 유명한 사람을 잘 알고 있으면 되는 건가? 또한 철학의 가치도 문제다. 철학이 과연 지식에 도움이 되나.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실제로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물론 선진국은 가르친다고 하더라만] 철학을 배우더라도 지식을 얻지는 못한다. 대체로 철학은 방법, 생각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같다. 확실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철학에 그런 냄새가 풍긴다. 반면 실제 지식은 과학이 준다. 그리고 삶의 유용성을 위해서 기술공학이 있다.

정말 곤란하게 됐다. 철학의 본질도 모호하다. 지식을 직접 주지도 않는다. 생활에 도움도 안된다. 한마디로 허무하다. 철학이 정말 이런 것인가? 폼 잡으려고 철학하나? 철학하면 멋지게 보인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듯 하다. 여기서 여러분이나 나나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철학의 본질과 사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철학적 경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우리는 지금의 철학을 평가하는 개념을 하나 얻게 된다. 철학의 사명이나 목적이 모호하게 보인다면 당신은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철학이 철학의 목적과 사명을 부정하면 당신은 그에 맞서는 철학을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세운 가정을 통해 비로소 철학을 논할 수 있다. 성서이야기를 보자. 성서는 단순한 사실이라기 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메타 담론]를 제시한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비로소 우리 자신과 역사를 이해한다. 그게 없으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철학의 개념[철학에 대한 메타담론]이 그래서 중요하다.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은 바로 철학의 개념을 위한 책이다. 사실 나도 긴가 민가 하면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나의 기본적인 확신- 철학의 본질이 있다-을 바디우의 책에서 다시 확인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작정 공부하는데 지친 사람은 꼭 [철학을 위한 선언]을 붙드시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