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 여성의 욕망에는 ‘동의’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캐서린 앤젤 지음, 조고은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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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관해 이렇게 깊은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른 욕구와 달리 그것은

상호 간의 뿌리 깊고 오래된 오해로부터 비롯된

관계에 기반한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섹스,

그것을 기반한 그 너머의 영역까지 확대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 가 펼쳐진다.

'다시 좋아질 것이다'

다시 좋아진다는 것은 좋았던 적이 있었거나

좋아질 기대가 한껏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제목부터 어딘가 발칙하다.

적어도 나에게 섹스란 개념은

숨겨져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는 분야로

사적 영역으로 '치부' 하며 애써 외면하지 않았던가?

여기 이렇게 섹스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어색해 하는 한 독자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책을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내놓고 읽기 민망하다 느낀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여성으로서, 침대에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우리 자신과 파트너에 대한 우리의 의무다. 어느 쪽 파트너든 그저 수동적인 태도로 상대방이 어디까지 갈지 가만히 지켜봐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위가

완전히 자유로운 형태로 삶 속에지 존재하지 않는 동안

그 영역은 때로는 음지의 영역으로

좀 더 원초적인 욕망으로 움직이는 남성 편향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자라왔던 것 같다.

여기서 침대에서라는 단어를 빼고 보면

어디 하나 특별할 데 없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침대에서가 들어가는 순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섹스에 관한 동의에 대한 부분은 그렇게 단순히 성희롱을 정의하듯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

동의의 여부만으로는 결론짓기 힘든 여러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락의 의미에 가까운 동의는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동의는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인가?

그 동의는 아주 즐거워야 하는 것인가?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행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 ..

적극적이다 못해 당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

그것 역시 동의라는 차원에서는 뭔가 중요한 부분의 균형이 깨어진 느낌이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균형을 잡기 전까지 좀 더 집중적으로 주장할 필요로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


서로에게 깊은 즐거움을 주는 행위로서 섹스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그 모든 복잡함 속에서도 여성의 성적 쾌락을 포용하고 활성화하며, 남성 욕망의 복잡성 또한 인정하는 문화를 목표로 삼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젠더를 떠나 경이롭고 보편적이며 민주적인 쾌락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을까? 모두를 위한 쾌락주의, 소피 루이스가 말한 "경계를 풀고, 다형적인 실험"을 모두가 추구할 수는 없을까?

어떤 차원에서건 강압적이고 폭력적 이어왔던 남성의 성관념에 대해

우리 모두는 (남, 여를 불문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JOY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하면 될까?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던 탓인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한 감정, 관계, 계급(차별)과 같은 체계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이해한다고 믿고) 알듯 모를 듯 느끼는 찝찝한 감정을 외면하면서 더 이상 이해하려 하거나, 들추어 보려 하지 않고 지내왔다. 욕망이나 흥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의나 취약성의 차원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 책은 나의 취약성을 자극한다

새삼스럽게, 부록같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책은 모르는 것을 알려준다.

책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책은 질문들을 끄집어 내고 다음책(지적 탐구)으로 나아가게 한다 .


누군가와 가장 먼저 섹스에 대해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 그 상대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섹스와 관련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다면, 그 내용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상태일 뿐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섹스라는 단어를 빼고 보면,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이며 진리이다. 세상,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계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심리학적 이해 자기와의 관계가 기반이 된다.섹스라고 뭐가 달라지겠는가?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비롯된다는 사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자기 자신을 기반으로 한 소통위에 미지의 상대방이 존재한다.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이해를 가지고 나와 관계하는지 미지수인 상태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쪽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때론 쾌락의 대상으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항상 강한 존재인가?

강한 척을 하는 저 아랫부분에는 남성들의 취약성이 존재한다.

욕망, 쾌락, 실패, 희망, 두려움, 환상, 수치, 굴욕의 위험...

"우리는 모두 취약하다."


섹스는 상호작용이며, 단언하건대 사회적이며 대인적이다. 다른 사회 현상과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훨씬 더 많다. 섹스는 다른 사회 현상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정이며 발전이고 전개다. 섹스는 대화이며, 그렇기에 여느 대화와 마찬가지로 약속을 할 수도 있고, 그 약속을 포기할 수도 있으며, 실망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심연, 놀라운 일, 새로운 길을 마주칠 수도 있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결국 삶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위해 고민하고 교육하고 소통의 스킬을 발전시켜나가듯이

정체되고 규정지어진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

몸을 통한 소통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실..

한쪽 귀퉁이로 밀쳐 놓고

그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무모함을 벌이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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