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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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 고’

그 대단한 삶을 아무일 없음으로 어찌 정리가 되는가?...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의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버지가 울었다고 한다.’

그 울음으로 어마어마한 간극을 진공상태로 압축시켜 온몸으로 살아냄을 하고 계셨던거구나..

아버지도 우는 구나..

내 경험에는 없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울음은 감정적인 울음이 아닌, 몸이 우는 울음.

울컥울컥 하는 마음을 참았다가 풀었다가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단숨에 읽어나갔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나는 으엉으엉 한참을 울었다.

어느새 책속의 아버지의 사랑을 나도 받고 있었다.

그 묵묵한 보살핌을 나도 느끼고 있었다.

열네살에 일시에 부모를 잃고 아버지는 살아내었다.

해방을 겪고 전쟁을 겪고 배고픈 시대를 겪어 내었다.

마누라도 지켜야 했고, 누이도 지켜야 했고, 오글오글 자라는 아이들은 지켜내야만 했다.

그 퍽퍽한 삶속에 그것들을 한켠에 미뤄둘만큼의 사랑도 잠시 찾아왔다.

세상사람들이 뭐라할 관계였는지 어쨌는지,

그렇지만 글 속에서는 그 고통이 너무 지난( 至難) 하여,

잠시라도 쉬어가야 하지 않을가 하는 연민마저 느껴졌다.

그래 인생에서 ‘쾌’하나는 누려도 되지 않나… 그게 그리도 나쁜일인가 싶었다.

나빠 보이지 않을 만큼 그는 잠시 머물렀고 다시 가족의 울타리로 돌아왔다.

어떤 물건은 그렇게 사라진다. 버리지도 없애지도 누구에게 준 적도 부숴버린 적이 없어도 어느시간 속에서 놓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고 희미해진다. 그랬었지, 그랬었는데라는 여운을 남겨놓고.

살아냄의 현장속에 증거물 같은 궤짝이 사라졌다가 어느날 아버지 마지막길 블랙박스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나타나 아버지인생을 한참을 무성영화 처럼 재생하지만,

끝끝내 숨기고 싶었던 비밀만큼은 끝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한채로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여 불속으로 사라진다.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결박당한 송아지의 코청에 코뚜레의 날카로운 끝을 박고 힘을 주었다. 코뚜레가 송아지의 코청을 뚫고 나올 때 손이 떨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송아지가 내뿜는 더운 입김 속에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눈을 떠보니 송아지의 코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송아지의 몸부림에 핏방울이 아버지의 얼굴에 튀었다 아버지는 누나가 가져다놓은 양푼 속의 흰 소금을 한움큼 집어 외조부가 일러준 대로 송아지의 코에 뿌렸다. 뚫린 코에 소금이 닿자 쓰라린지 송아지는 두발로 땅을 치고 일어서려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는 뚫린 코청에 다래나무 코뚜레를 걸고 목대를 송아지의 귀 뒤로 넘긴 뒤에 우넘기로 단단하게 묶었다. 소에게 코뚜레를 걸었던 얘기를 하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나지막해졌다. 말 못하는 짐승한티 내가 그리했고나

그 거친 세월 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내면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을 살게되는 아버지의 삶이었기에 눈을 감는 마지막까지 한줄기 바람처럼 살아냈어야. 하고 떠날수 있는걸까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가슴을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끙..하고 한숨도 한탄도 아닌 소리를 뱉어내었다

글, 을 읽고 마음이 내려앉는 일

단 한줄의 문장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에너지로 변화하여 내 삶의 영향력으로 들어오는 일

삶이란 참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잡히지 않는 서로의 등을 남매가 쫓고 쫓으면 닭장 앞의 닭들이 놀라서 퍼덕이고 울타리에 앉아 있던 개가 몸을 일으켜 헛간쪽으로 자리를 바꾸고 흙담을 타고 뻗어가든 호박넝쿨 속 애호박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돼지막에 갇혀 있는 돼지가 까만 눈으로 마당의 분란을 살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세밀하고 농밀한 묘사는 분주히 움직이는 장면을 옛날영화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듯 가만히 눈을 감게 만든다.

지난밤에 뭔일이 있었건 간에 날은 밝아오는 것잉게...... 그것은 틀림이 없당

사투리가 섞여진 대화가 시를 읽는 듯 들썩들썩 정겹다.

마음속으로 스멀스멀 시시하다는 생각이 번져갔다. 살아간다는게 이런 것인가, 이게 다인가..... 몇날이고 몇년이고 그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버지의 네번째 딸, 작가, 글을 쓰는이 헌...

바로 눈앞에서 분신같은 딸을 잃고 꾸역꾸역 '살아냄'을 하느라

아버지에게 곁을 주지 못하였다.

그런 헌이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대비하는 일은

그녀의 딸을 보내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양친을 앗아간 전염병과 전쟁을 두고 '난리'라는 단어를 썼다.

'난리'가 났고 그 난리를 겪고도 살아남은 것이 일생의 의문이라고.

난리 통을 겪은 후에는 살아가는 것이 덤으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두렵고 무섭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는지

그 난리를 겪으며, 본인 몸 하나 추스리기도 어려웠을 그 상황을

어떻게든..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버젓한 교육을 시켜내려는 아버지로 존재하기 위해 도데체 얼마나 많은 애를 쓰신걸까

그 어떤 기적이 있다면 ... 그것이 기적이리라.

아버지에게 장남, 둘째, 세째, 헌, 이삐, 막내는 그들의 인생에서 각각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숨쉬고

또 그들이 나은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로 존재하기까지

아버지에게도 각각의 역할을 주기 위해 살아야할 이유가 아니었을까

몇년전 상영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대사이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그 위로 나즈막히 '살아냈어야...." 라는 말이 포게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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